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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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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나치를 닮아간 이유

한국인을 ‘유대인’에 빗대는 이들이여, 보라 <유대인, 발명된 신화>
등록 2023-01-09 13:33 수정 2023-01-10 04:41

201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이스라엘로 출장을 가는 길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이스라엘 항공사인 엘알항공을 예약했는데, 이 비행기를 타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수색당하고 심문받으며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백인이거나 유대인인 대부분의 탑승객은 이런 고초를 겪지 않았지만, 동양인인 취재진은 잠재적 테러 용의자 취급을 받았다. 어릴 적 교회 성경학교를 다니며 쌓았던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이 산산이 부서져내렸다. ‘인종혐오’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대학살)까지 겪었던 이들은 왜 다른 사람들마저 혐오의 감정을 느끼게 만들까.

<유대인, 발명된 신화>(정의길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는 “차별과 배제, 박해를 당한 유대인이 자신들의 고난과는 아무 상관이 없던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찾았다는 게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문제의 본질이자 모순”이라고 설명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건국의 정당성을 찾으려다가, 자신들을 박해한 나치 독일의 인종주의와 민족주의를 닮아갔다는 것이다.

<한겨레> 국제부 선임기자로 오랫동안 국제 분야를 취재한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럽과 미국·러시아·팔레스타인을 넘나들며 유대인 문제를 분석했다. 먼저 유대인의 배타적 자결권의 근거가 되는 추방과 유배, 이산, 귀환 등으로 요약되는 ‘유대인 신화’가 사실은 존재가 의심스러운 역사임을 탐구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을 발굴한 결과 다윗과 솔로몬은 이스라엘 통일왕조의 대왕이 아니라, 기껏해야 내륙 산악지대에 있는 작은 부족국가의 군장 정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추방됐다는 신화도 당시 로마가 이들을 대량 추방할 이유도 없고 역사적 근거도 없다.

문제는 서구 기독교 문명세계의 유대인 문제가 빚어낸 이스라엘의 건국과 유대인의 민족화, 인종화가 가져온 결과라고 책은 지적한다. 기독교 세계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유대인 문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차별받고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신화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해 팔레스타인 땅에서 차별받고, 분리되고, 유배되는 또다른 집단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는 ‘우리’와 ‘저들’을 가르는 수단이었다. 저자는 “기독교도는 유대인을 창조했고,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인을 창조했다. 한국 사회에는 지금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없는가?”라고 묻는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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