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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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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따위 지옥에나 보내버려! 평범한 개인의 힘

팬덤과 포퓰리즘은 상호작용이 배제된 철 지난 용어, 촛불을 들 이유는 촛불의 개수만큼 다양하다
등록 2022-12-14 12:00 수정 2022-12-16 01:48
2017년 3월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2017년 3월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종이와 잉크는 지옥으로나 보내버려! 상품, 이익 좋아하시네. 광산, 인부, 수도원 좋아하시네. 이것 봐요. 당신이 춤을 배우고 내 말을 배우면 우리가 서로 나누지 못할 이야기가 어디 있겠소!”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존경하는 ‘등 굽은 어머니와 기름때 박힌 아버지’

우리는 더 이상 권력을 존경하지 않는다. 등 굽은 어머니를, 손톱 밑 기름때가 박힌 아버지를, 자신을 인정해주는 친구를, 분리수거장에서 눈인사를 나누는 이웃을 존경한다. 영웅이 되기 위해 정치인이 되거나 전장에 나갈 필요는 없다. 영웅은, 감염을 무릅쓰고 중증환자를 돌보거나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주변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 일일이 명령을 내려주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산다. 성취를 이룬 이들을 경외하지만 내 삶의 영역에서 내 이야기, 의견을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 모두 바라던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자기 삶의 주인이 됐으면 했고, 그것이 세계를 더 나아지게 하리라 여겼다. 문명이 발생한 이래, 우리는 대부분 존재감 없는 복종자로 살거나 더 약한 희생자를 찾았다. 이제 우리는 다르다. 압박에 쉬 굴복하지 않고, 함부로 남을 대하지 않는다. 남는 에너지는 사생활로 돌린다. 이기적이 아니다. 더 많은 자존감과 돌봄, 상호 존중으로 거대한 적의에 맞선다. 아직은 두 세계가 공존한다. 한쪽에서는 권력투쟁이 지속되지만 끝내 우리 세상은 가치에 헌신하는 개인에 의해 변화할 것이다.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는, 시어도어 젤딘의 말이 깊이 다가온다.

“과거를 너무 빨리 재생시키면 인생은 무의미해 보이고, 인류는 수도꼭지에서 곧장 하수구로 떨어지는 물과 같은 존재가 된다. 현대의 역사 영화는 느린 화면으로 상영되어야 한다. 비록 밤하늘이 흐려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모든 사람들이 별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왔음을, 여전히 탐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신비로운 존재로서 살아왔음을 보여줘야 한다.” ―시어도어 젤딘, <인간의 내밀한 역사> ‘사람들은 이제 더 깊고 먼 곳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시작했다’

북한산은 벤츠를 타고 오르지 못한다. 청계천 여공이던 한 누님은 이를 감지하고 등산학교의 우등생이 됐다. 직장의 부조리를 달리기와 라이딩 뒤로 떨쳐내는 청춘들이 있으며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 인생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무명의 노동과 예술은 드러나지 않은 채 생활에 개입해 주변 사람들의 깊숙한 변화를 이끈다. 자기만의 정원을 가꾸는 것은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민주주의 역시 여기서 다시 도약한다.

북한산은 벤츠를 타고 오르지 못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를 직접민주주의라 불렀다. “21세기에 들어서 마침내 모두가 국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직접민주주의의 시작, 그것을 나는 촛불 시위에서 보았다.”(<김대중 자서전 2>, ‘그래도 영원한 것은 있다’) 유독 니체의 저서를 많이 추천한 김 대통령은 언젠가 개개인이 자기의 언어를 가지리라 짐작했을 것이다. 니체는 성장하는 인간의 생명력을 긍정했다. “나는 홀로 가련다. 너희도 각각 홀로 길을 떠나라. (…) 인식하는 인간은 자신의 적을 사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벗을 미워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쓰고 있는 월계관을 낚아채려 하지 않는가?”(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다. 2007년 국무위원들에게 선물한 장시아의 <까치집 사람들>에는 그 자신이 혹독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기만의 정원이 담겨 있었다.

“명령을 내리는 권력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젤딘) 문재인 대통령 또한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의 기고문에서 권력을 넘어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들어가는 평범한 개인에 주목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에 맞선 평범한 시민들의 항쟁사였고, 엄청난 자제력으로 질서를 유지한 개인사였다. 문 대통령은 “도덕적 승리는 느려 보이지만 진실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 여겼다. 역사책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 나무꾼이나 머슴으로 불렸던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불려야 한다고 적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말도 “평범한 힘이 난세를 극복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고전 <사기>의 ‘손자오기열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人曰, 子卒也, 而將軍自吮其疽, 何哭爲”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들이 졸병인데 장군이 몸소 아들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었소. 어째서 우는 것입니까?” 울 필요가 없는데 왜 우느냐는 뜻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장군의 행동에 감격해 전쟁터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죽을까봐 운 것입니다. 사마천은 장군 오기의 훌륭한 행동을 이야기하려는 것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남편을 잃고 자식까지 잃을까 걱정한 부인의 안타까운 처지가 행간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웅담에는 항상 스스로의 운명을 빼앗긴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 감춰져 있습니다. ―문재인, FAZ 기고문, ‘평범함의 위대함-새로운 세계질서를 생각하며’, 2019년 5월7일

영웅 열전에 대한 대통령의 해석이 무척 현실적이었다. 자기 운명을 결정할 자신감, 일상을 유지해가는 평범함이 세계를 새롭게 구성한다는 확신에서 나온 반전일 것이다. 영웅담 뒤의 비극을 오늘 우리는 수동적으로 견디지 않는다.

‘아미’는 영혼 없는 팬이 아니다

이제 상당 부분 개인의 언어가 갖춰졌다. 각자의 의견이 실시간으로 세상에 드러난다. 좋아하고, 응원하고, 개입하고, 함께 변화한다. 역할 분담이다. 방탄소년단(BTS)의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 앨범이 미국 ‘빌보드 200’ 1위에 올랐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BTS와 함께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팬클럽 ‘아미’도 응원합니다”(2018년 5월28일 페이스북)라는 구절을 담아 축전을 보냈다. ‘아미’는 스타를 무작정 쫓아다니는, 영혼 없는 팬이 아니다. 자기 삶의 연장선상에서 일곱 소년의 날개가 되고 있다.

팬덤, 이 용어는 우리 시대를 적절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포퓰리즘은 철 지난, 지배집단의 언어다. 상호작용이 배제됐다. “다수는 분해되어 점점 더 많은 소수로 변하고 있다.”(젤딘) 촛불을 들 이유는 촛불의 개수만큼 다양하다. 정치인은 ‘대충’ 의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정당을 만든다. 정치인이 대중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은 ‘대충’ 자신에게 유리한 의견만 취합한다는 뜻이다. 복잡해지고, 상호 충돌하는 의견이 정치에서 중재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에 맡기는 것도 그만두어야 한다. 법은 의견이나 가치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키지 못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중립을 모를 가능성이 크다.

대화의 시간이다. 우리가 다양해졌으니, 우리가 서로의 말을 배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날 ‘좋은 사회’의 청사진을 설계하는 데 매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위기의 국가>, ‘철회된 약속’)고 했다. 오늘날 전략들이 겨냥하는 것은 더 이상 사회 전체가 아니고 개인이며 “다리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가까이 갈 때까지 다리 건설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관할 필요는 없다. 대화를 나누며 사안에 따라 뭉치고 흩어졌다를 반복하면서 기존 질서를 무너뜨린 자리에 무엇을 건설해야 할지, 우리 스스로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와 정치에 더는 맡겨놓을 수 없어

법정 스님,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같은 선구자들의 도서 목록에 항상 <그리스인 조르바>가 자리하고 있다. 조르바의 원초적 자유에 매료된 분이 많겠지만 지식인, 지배자들은 일찍부터 민초의 생명력과 낙관에 기대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있는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세계가 지금 위기라고 여기는 것들은 평범한 삶이 해결해야 할 것들이다. 작은 행동이 쌓여야 변화할 것들이다. 이제까지 국가가 하지 못한 것, 정치가 쫓아가지 못한 일을 더는 맡겨놓을 수 없다. 매일 아침 대지에 발 딛는 것은 평범한 우리다. 권력 따위 지옥으로나 보내버려! 의견이 다른 이들이 바로 평범한 ‘나’다. 당신의 춤판에 내가 먼저 뛰어들어야 할 것이다.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독서: 지도자는 진지한 삶과 독서로 탄생합니다. 그의 말과 글에는 마치 수면 아래 빙산처럼 오랜 시간 다져진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었던 신동호 시인이 역대 대통령들의 독서가 어떻게 말과 글에 반영됐는지 좇아가는 글을 연재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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