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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탄의 날, 선과 점을 들여다본다는 건

수학자 마이클 프레임의 회고록 <수학의 위로>
등록 2022-11-22 06:03 수정 2022-11-24 23:30

이태원 참사로 희생된 이가 158명으로 늘었다. 참사는 어쩌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사회는 주기적으로, 집단 참사로 인한 상실을 경험한다. <수학의 위로>(이한음 옮김, 디플롯 펴냄)는 수학자 마이클 프레임의 회고록이다. 상실과 부재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려는 위로이자, 노년의 수학자가 점과 선으로 부서진 삶의 조각들을 헤아려본 이야기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점과 선으로 이뤄진 공간에 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너져내린 삶에 어떤 도움이 될까. 프레임이 말하는 기하학은 조금 우아하고 본질적이다. 그는 기하학을 “세계의 모습과 돌아가는 방식을 모형화하는 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프레임은 비탄이라는 극한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줄이기 위해 본인이 사용한 방법을 알려준다. 기하학을 도구로 하여, 삶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x-y축으로 구성된 공간에 ‘투영’해보라는 것이다. 감정 상태는 두려움-편안함, 화남-차분함 등의 축으로 나타낼 수 있다. 직관만 있다면, 복잡한 수학적 정의를 동원하지 않고도 이 ‘이야기 공간’의 점과 선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프레임은 말한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존재했던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사랑하는 반려묘와 함께했던 놀이와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했던 놀이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삶을 ‘재조정’했다. 그렇게 수학적 사고로 슬픔에 잠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도 역시 그렇게 하여 자신의 비탄이 주는 폭력을 잦아들게 했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세계를 닫아버린다. “몇몇 선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우리를 이끌곤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전의 세계는 틈새로 비친 모습으로만 희미하게 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선택은 다시 새로운 세계로 문을 열기도 한다. 어떤 면에선 죽음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순간이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다. 상실이 전하는 감각에 익숙해지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프레임은 미국 예일대학에서 2016년 은퇴하기 전까지 수학의 아름다움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2013년엔 드베인 메달을 수상했는데 이 메달은 1966년부터 매년 강의와 연구에서 독보적인 활동을 보인 교수에게 주는 것이라 한다. 예일대학 학장을 지낸 윌리엄 클라이드 드베인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프레임은 드베인 메달 말고도 맥크레디상, 딜런힉슨상 등을 받았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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