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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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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라 생강이 한참 모자라네 [농사꾼들]

100평 땅에 처음 심어본 생강, 수확량 계산해 ‘선판매’했는데…
등록 2022-11-16 19:26 수정 2022-11-17 07:38
풀을 걷어내고 생강을 수확했다. 

풀을 걷어내고 생강을 수확했다. 

올해(2022년) 초, 내년 전남 곡성으로 이주를 결심하고, 집을 구하려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엇으로 수익을 낼까 고민하던 찰나 이웃의 권유로 토종 조선 생강 농사 100평을 하게 됐다. 본업인 토종씨드림 활동가의 일과 따로 공부하는 일이 바빠서 안 하려 했는데, ‘농사도 같이 할 수 있지 않겠어?’라는 거만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4월 중순에 심은 생강, 드디어 수확 시기가 왔다. 어떻게 판매할까. 짝꿍과 나는 인스타그램과 토종씨드림 카페 내 토종장터 게시판에 올려보기로 했다. 다른 농사일도 바빠 자정을 넘어서까지 판매에 쓸 카드뉴스를 만들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를 따라 하며 생강청을 해 먹으라는 콩트를 만들어 인스타그램 릴스(짧은 동영상 플랫폼)에 올렸다. 한 두둑을 수확해 전체 나올 양을 예상했고, 그만큼 예약받았다. 감사하게도 금방 예약이 마감됐다.

다음날 아침 일찍 생강 수확에 나섰다. 삽으로 생강 근처의 흙을 들어 올린 뒤 생강에 묻은 흙과 잔뿌리, 씨생강, 이파리를 뜯어낸다. 오전 내내 작업해 세 두둑의 생강을 수확했다. 허리도 아프고, 춥고, 배고팠다. 한 할머니가 그러셨더랬다. “수확하고 그럴 때는 간식 같은 거 잘 챙기면서 햐.” 지당하신 말씀! 이를 대비해 맛난 간식을 두둑이 챙겼다. 두유 요구르트, 비건 빵, 홍시, 따뜻한 보리차. 이것마저 없었다면 작업을 지속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 문제가 생겼다. 생각보다 생강 크기가 작다. 첫 두둑은 그리 크더니 갈수록 생강의 양이 적어졌다. 겨우겨우 씨생강만큼 건진 두둑도 있었다. 웃거름을 주지 못했고, 풀 매는 시기가 오래 걸려 초기에 제대로 못 자란 문제도 있다. 7개월 내내 풀 베준 것 말고는 해준 게 없으니 당연했다. 생강 크기를 키워준다는 플라스틱 그늘막과 파는 유기농 퇴비를 거부한 탓이었다. 100평 밭에서 고작 50㎏이 나왔다. 예약은 다 받았는데 큰일이다. 50평 정도 유기농 토종 생강 농사를 지은 이웃에게 연락해 98kg가량의 생강을 얻었다. ‘수매’한 것이다. 이웃분도 수매해줄 곳을 찾던지라 다행이었다.

집에 모아둔 상자가 있지만 부족해 시내 아파트 단지에서 상자를 미리 얻어왔다. 판매리스트를 보면서 무게를 재고, 혹여나 생강이 망가질까 신문지를 구겨 넣고, 미리 써놓았던 받는 분들이 알면 좋을 생강의 활용법과 약성, 감사의 말을 담은 작은 편지도 넣었다. 택배 마감 시간은 4시. 부랴부랴 테이프로 상자를 봉해 우체국에 간신히 도착했다. 내일이면 신선한 생강이 구매자에게 도착할 것이다. 택배를 보내고 화장실에 가서 내 모습을 보니 참 웃겼다. 머리는 엉겨 붙고 온몸엔 흙과 도깨비바늘투성이. 일을 마치고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데 허겁지겁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워냈다. 꿀맛이다!

농사로 돈을 번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농사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손가락 클릭만으로도 쉽게 배달되는 이 세상에서 장장 7개월의 노력은 쉽게 지워진다. 얼마나 쉽게 소비하며 살아왔는가. 그만큼 돈도 벌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고생한 것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그래도 우리가 농사지은 생강과 겨우내 먹을 귤껍질을 모아 진피생강청을 담글 생각에 올겨울이 설렌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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