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창의인재 페스티벌인 ‘2022 제로원데이’에서 프로토룸(김승범, 후니다킴)이라는 아티스트는 본인들이 직접 만든 전자악기에 오로지 1킬로바이트(KB) 용량의 코드를 넣어 테크노곡을 연주했다. 뿅뿅거리는 초창기 미디(MIDI) 음악 스타일을 이용해 30분 동안 관객을 무아지경의 순간으로 몰아갔다. 과거의 해커들은 수십KB 용량으로도 연주할 수 있는 테크노음악 파일을 과시용으로 보여줬다는데, 이들은 1KB라는 더 극한의 실험을 한 것이다. 연주 내내 배경 화면엔 ‘1KB라는 용량으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도발적 질문이 던져졌다.
1KB라는 용량은 끝없이 데이터를 낭비하고 흘려버리는 현대사회를 향한 조롱과 반항의 징표였다. 의도를 알게 되니, 보지도 않을 거면서 본전 생각에 밤새 틀어놓은 넷플릭스의 영화들이 떠올랐다. 데이터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기쁨 없이 수백 기가바이트(GB)를 낭비했다. 단 1KB로도 공연장이 뜨거울 수 있었기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용량의 스토리지와 빠른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우리 삶이 그만큼 충만했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오히려 더 많은 용량을 사용하려고 노력한 공연도 있었다. 두 달 전 열린 송호준 작가의 ‘압축하지 마, 세계대회’(2015~2022)는 동영상 압축 알고리즘과 대결해 10초 동안 최대한 많은 용량의 영상을 촬영하는 것이 목표인 퍼포먼스다. 모든 이미지 촬영 프로그램에는 대상을 찍고 최적화해 저장하려는 목적으로 압축 알고리즘이 설치됐다. 가만히 서 있으면 쉽게 압축당하기 때문에 ‘인간 참가자’는 카메라에 맞서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예측 불허의 움직임으로 춤춘다. 유튜브 공개 영상에 따르면 2015년 한 참가자는 1467KB를 획득해 우승했다.
두 공연은 한쪽은 데이터를 적게 쓰려 하고 다른 쪽은 많이 쓰려 한다는 점에서 변별되지만, 실은 데이터의 거대함과 속도, 알고리즘 속에 오늘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지닌다. 인간만의 어떤 지위를 주장하자는 의견이 아니다. 찍어놓고 다시는 들춰보지 않는 수백GB 셀카 더미와 언제 어디서나 찍히는 폐회로티브이(CCTV) 속 인식되는 사물로서 인간이 존재한다면 너무 서글픈 일이 아닌가 해서 던지는 질문이다.
요즈음 유독 기계에서 벗어나려는 예술이 많아짐을 느낀다. 2주 전 본 <넌댄스 댄스> 공연은 인간 무용수가 인공지능의 댄스 판정을 피해 ‘넌댄스 판정’을 받은 동작만을 모아 즉흥으로 춤추는 퍼포먼스였다. 물론 알고리즘의 눈을 피해 기계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무용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무용수는 노력 끝에 무대 구석에서 점프만 하거나 사물처럼 행동하는 등 기이한 동작의 연속을 관객에게 보여줬다. 넌댄스 판정을 받은 인간 무용수의 표정엔 어떤 해방감이 묻어났다. 기계로부터 간신히 벗어났다는 안도와 작은 승리의 표정이었다.
닌텐도가 1985년 출시한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용량이 40KB에 불과하다. 메가바이트(MB)로 따지면 0.04MB인 이 게임은 그 시절 게이머들에게 수십 시간의 플레이타임을 선사했다. 오늘날 1쪽짜리 간단한 한글 문서가 80KB 정도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슈퍼마리오 게임 두 개쯤 해당하는 용량의 문서를 생산하는 셈이다.
다소 가혹한 생각을 해본다. 두 배나 많은 용량을 사용하는 이 글은 슈퍼마리오 게임의 5분만큼이라도 재밌는가? 영 자신이 없다. 다만 1KB 안에서도 최대한의 환희를 끌어내거나 동영상 압축 기술에 맞서 1467KB를 생성하는 인간의 몸짓에서 회로를 이용하거나 회피하는 인간의 영리함을 곱씹을 뿐이다.
오영진 테크노컬처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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