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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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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조롱을 당한 비건에게

책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 저자
멜라니 조이 화상 인터뷰
등록 2022-08-01 08:11 수정 2022-08-03 04:07
인터뷰 영상 갈무리

인터뷰 영상 갈무리

“돼지가 행복하게 소시지가 된다면 먹어도 된다는 거잖아. 안 그래?”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 칠면조 요리가 한가운데 놓인 식탁 위로 자연스럽게 음식 이야기가 오간다. 가족은 그가 비건이라는 것을 알지만 마치 자리에 없는 사람인 양 그의 신념을 농담에 버무린다.

비건운동가이자 사회심리학자인 멜라니 조이의 책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는 비건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비건으로서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논비건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책은 비건-논비건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짚고 이를 풀어나갈 방법을 제시한다. 그가 2011년 펴낸 책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는 전세계 17개 언어로 번역된 동물복지 분야 고전이다. 2022년 7월22일 화상 인터뷰로 멜라니 조이(사진)를 만났다.

관계를 갈라놓는 근본 원인은 육식주의

그는 왜 ‘관계’에 주목했을까. “강연을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때 같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많은 비건이 ‘비건이 된 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인데 이를 가족이나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때 갑자기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비건 개인의 고통은 비거니즘 운동 전체의 고통과 다름없다. (비거니즘) 연구자와 관계 코칭 전문가로서 두 연구 분야를 잇는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건-논비건 관계를 갈라놓는 근본 원인으로 ‘육식주의’를 지목한다. ‘육식주의’는 동물을 먹거나 먹지 않는 것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도록 사람을 길들이는 이데올로기다.

‘사람들은 비건들만 식탁에 자신의 신념을 올려놓는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처럼 생존을 위해 동물을 꼭 먹어야 하는 게 아닐 때 육식은 선택의 문제가 된다. 그리고 선택은 늘 신념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이 돼지는 먹지만 개는 먹지 않는 것은 바로 동물을 먹는 것에 대한 신념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육식주의를 의식하지 못해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연대자를 찾아라, 백래시는 하나의 징표다

육식주의는 그 육식주의에 균열을 내려는 비건을 논비건이 ‘거부’하게 한다. 오해와 편견을 퍼뜨리고 비건에게 설명 의무와 입증 책임을 지운다. 자신의 신념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비건의 감정과, 비건이 편견을 강요한다는 논비건의 감정이 얽히면 관계 회복은 더 요원해진다. “대부분 사람은 동물에게 해를 입히고 싶지 않아 한다. 자연적인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동물을 먹고 축산업에 일조한다. 육식주의의 영향으로 진정한 믿음과 반대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육식주의를 인지해야 진정으로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는 비건 또한 “비건과 관련된 편견이 어디서 왔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를 개인에 대한 공격이라 생각하고 내면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의 친애하는 비건 친구들에게>의 원제는 <신념을 넘어>(Beyond Beliefs)다. ‘관계를 돌본다는 말은 신념보다 관계를 우선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신념 때문에 안정감과 교감이 줄어들지 않도록 관계 속에 신념을 위한 공간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핵심은 연대다. 특히 육식주의가 지배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논비건이 비건의 연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연대자는 비건이 아니라도 비건과 비거니즘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해와 존중은 모든 연대의 기본이다. 비건의 관점을 이해하고 어떤 경험에서 그와 같은 관점을 얻게 됐는지 질문하고,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대자를 늘려가는 일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가족과 친구뿐 아니라 직장 동료, 온라인 공간 불특정 다수와의 불화는 가까이 있다.

한국에서 벌어질 법한 상황을 가정해 실용적인 대처법을 물었다. 직장에서 ‘○○씨 때문에 회식하러 갈 만한 식당이 없다’는 발언을 들었다면. “(직장에서) 당신의 연대자가 될 단 한 명의 논비건을 찾는 게 도움이 된다. 한 명도 충분하다. 두 명일 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비건이 여성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런 식의 발언은) 젠더 문제와 교차하는 지점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거니즘 관련 기사에 달린 혐오적 댓글을 읽었다면. “백래시는 비거니즘 운동이 힘을 얻고 있다는 하나의 징표다. 인터넷이 건강한 소통에 적합한 매체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혐오 발언에 연관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읽지 말고, 말을 섞지 말고, 공유하지 말라.”

일부 비건은 논비건을 설득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끼기도 한다. 그는 “타인을 설득하려는 욕구는 긍정적”이라면서도 “그 욕구가 너무 강해지면 불필요하게 강요하거나 화내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옹호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욕구를 발산할 배출구로서 지지하고 싶은 단체나 커뮤니티를 찾아 활동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만나는 모든 한명 한명을 비건으로 바꿔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기후정의 운동이 축산업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육식주의를 세상에 처음 소개한 뒤 10년여가 흘렀다. 그는 “전세계적인 변화를 느낀다”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이 비거니즘을 지지하고 있다. 제 경험상으로도 그렇고,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비거니즘 운동이 나아가야 할 다음 목표로 그는 “기후정의 운동이 축산업을 우선순위에 두도록 하는 것”을 꼽았다. 2023년 <모든 곳에서의 불의를 끝내는 법>(가제·How to end injustice everywhere)도 출간할 예정이다. “동물과 사람, 지구에 행해지는 모든 종류의 부정의를 야기하는 하나의 지배적 힘의 구조에 관한 책이다. 소수자 집단의 연대를 만들고 함께하는 도구를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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