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돌 덕후의 지인이 지렁이 심장이 아홉 개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말했단다. “심장이 아홉 개면 사랑도 동시에 아홉 번 가능한 게 아닐까? 네가 여러 아이돌을 좋아하는 거, 꼭 지렁이 같아”라고. 자꾸만 사랑에 빠지는 <아무튼, 아이돌>의 저자 윤혜은은 ‘유사 지렁이’라는 이 이야기에 무척이나 만족해했다. ‘무한 현재진행형 사랑’이 가능한 근사한 이유가 아닌가.
나도 지렁이 심장을 가졌나보다. 스타들의 눈길과 손짓, 걸음걸이, 말 한마디에 자주 가슴이 뛰었다. 특정 장면에 꽂혀 순간순간 빠져든 남녀노소가 무수히 많았지만 망설이다 차마 이 칼럼에 못 쓴 이가 더 많다.
먼저 코미디언 이용진①. 유튜브 길거리 토크 프로그램 <튀르키예즈 온 더 블럭>(<터키즈 온 더 블럭>에서 개칭, 이하 <튀르키예즈>)에서 꼬부랑 수염을 얼굴에 붙이고 “터키 아이스크림~” 하고 외치며 길거리를 다니는데, 길 가다 만나면 왠지 부끄러울 것 같은 상황에 묘하게 중독됐다. 사실 나는 종종 혼잣말로 특유의 억양을 흉내 내며 “터키 아이스크림~”을 외쳐댔다. <튀르키예즈>의 토크는 조금 적나라하다. 술집에서 옆 테이블 만담을 몰래 듣는 기분. 술집에서 듣는 이야기를 칼럼에 써도 되나 고민하던 중 어느새 프로그램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게스트 인지도가 올라가고 기존 토크 프로그램과의 차별성이 옅어져서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이용진 특유의 개그를 보며 피식피식 웃다가 빵빵 터진다.
설레는 이유가 ‘잘생김’뿐이어서 못 쓴 남자도 있다. 송강②. 시작부터 끝까지 ‘입술이 매력적임’ ‘목소리가 짜릿함’ ‘쪼개지는 등근육이 예술적임’… 잘생김, 잘생김, 잘생김…이라고만 쓸 수 없는 노릇이니까. 다만 <기상청 사람들>에서 모텔을 서성이는 송강을 보며(그가 서성인 이유는 비루한 아버지 때문이었다) 20대에 모텔을 서성이던 장면을 반추하며 청춘을 그리워했다는 것, 적어도 내 주변 지인들은 송강과 함께 모텔 앞을 서성여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건… 비밀로 해야 할까.
정말 많이 쓰고 싶었는데 못 쓴 인물은 배우 조현철③이다. 2022년 5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기억으로 영원히 함께해야 하지만 잊혔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는 그에게 정말 감사했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이경택군, 세월호의 아이들….” 정작 그들을 기억하고 불러야 하는 권력을 가진 이들은 제 밥그릇 지키자고 아귀다툼이나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다만 이 수상소감으로 너무 많이 호명되는 것은 조현철이 원하지 않는 일일 것 같아, 그의 가족 배경이 더 많이 다뤄지는 방식 또한 그가 원하지 않는 일일 것 같아,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2학년에 만든 감독 데뷔작 <척추측만>을 보지 못한 것도 이유다. 앞으로 배우 조현철의 연출작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에 빠진 이들을 보는 시간은 짧은 유튜브 클립으로는 고작해야 5분, 10분, 길어야 20분이다. 드라마 정주행을 해도 드라마당 평균 720분에 불과하지만 그 보이는 시간을 위해 아티스트가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은 훨씬 길고 고독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랑했던 모든 이가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큼 자신도 즐겁게 또 단단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걱정과 바람을 적으며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 사랑에 빠지게 해줘서 고마워요.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리담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연재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간 수고해주신 필자와 사랑해주신 독자께 감사합니다.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 1분에 업로드되는 동영상은 500시간, 매일 10억 시간 이상 동영상이 조회된다. 이 통계에 혁혁히 일조하며 ‘관련 동영상’의 세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급기야 매일같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저자의 외침! 유혹에 ‘금사빠’가 돼버렸지만,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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