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머리, 힙합 바지, 스트리트댄스, 배틀. 이 조합에서 ‘엄마’를 발견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뼛속까지 춤에 진심인 댄서들의 배틀 여운이 심장을 저격해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끝날 줄 모르는 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스우파>의 여러 댄서의 영상이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그중 내 ‘최애’ 댄서는 단연 아이키(사진)다.
아이키는 아이를 낳고 나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춤의 시작은 중학교 2학년 다이어트 때문에 등록한 고향 충남 당진의 라틴댄스 학원.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서사가 아닐 수 없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아이키는 임신, 출산을 경험하며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를 처음 경험하고 우울감을 겪었단다.
지금의 아이키는 아이를 낳은 뒤 ‘다시 내가 좋아하는 춤을 춰야겠다’ 생각한 뒤 결성한 댄스 듀오 ‘올레디’에서 시작했다. ‘모든 장르의 춤을 출 준비가 돼 있다’는 팀 이름답게 올레디는 누구도 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춤을 춘다. 라틴댄스와 힙합의 결합. “처음 시도하는 장르여서 공감받을 수 있을까, 인정받을 수 있을까 고민도 많고 불안했지만, 좋아하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1년 전 댄스 유튜브 채널 ‘컴온댄스’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이키가 좋아하는 걸 하는 마음은 세계적으로 통했다. 2015년 서울 스트리트댄스 대회에서 보여준 올레디팀 공연 영상이 소셜미디어에서 1200만 조회수를 얻으면서, 미국 NBC 댄스 경연 프로그램 <월드 오브 댄스>의 참가 제안을 받았다. 결과는 최종 4위.
<월드 오브 댄스> 세 번째 무대에서 올레디팀이 보여준 공연은 강렬했다. 탱고와 힙합을 결합하고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붉은 조명의 무대를 아예 새빨갛게 ‘태워버렸다’. 심사위원이자 프로그램 제작자인 제니퍼 로페즈는 무대가 끝나자 말했다. “진짜 갱스터야.”
<스우파>에서 마지막 네 팀 안에 들어서 생방송으로 경연 무대를 가질 때까지 나는 아이키의 여러 정체성 가운데 ‘엄마’ 정체성은 몰랐다. 아이키가 이끄는 팀 ‘훅’의 마지막 무대 선곡은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였다. 무대가 이어지는 내내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네가 좀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내가 좀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같은 노랫말을 글줄보다 더 진하게 전달하는 몸짓이었다. 감동과 함께 밀려오는 생각은 ‘‘훅’이, 아니 아이키가 이런 무대를?’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엄마됨’을 강요하는 것에 늘 반감을 가져왔다. 여성학자 사라 러딕의 말처럼 “엄마됨 이데올로기는 엄마의 일을 건강과 즐거움, 야망을 희생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으로 정의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현실의 나는 ‘엄마됨’에서 그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아이키가 누구보다 ‘엄마됨’에 갇히지 않고 야망과 개성을 발산하는 엄마라는 점에서 리스펙한다. 여성들이 겨드랑이를 내보이기 싫어하는 것이 불편해서 하게 됐다는 시그니처 포즈까지 멋지다. 아이키 공연 영상에 남아 있는 어느 댓글에 ‘좋아요’를 꾹 누른다. “갓벽하다 아이키. 내 마음의 방화범.”
리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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