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순한 맛과 매운맛이 있다면, 드라마에도 순한 맛과 매운맛이 있다. 요즘 가장 핫한 <오징어 게임>처럼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대체로 매운맛, 때로는 악한 맛이라면 지상파 방송이든 케이블 방송이든 텔레비전을 통해 송출되는 드라마는 그래도 순한 맛이다. 나는 사실 요즘 순한 맛에 끌린다. 매운맛을 견디는 힘이 약해졌다. 사그라들 줄 모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생활의 제약, 점점 커지는 부동산 박탈감 등 현실이 이미 충분히 맵다.
순한 맛의 절정을 보여주며 내 마음에 바닷바람을 불어넣은 배우가 있다. 또 사랑에 빠지다니. 맞아, 사랑에 빠지는 건 죄가 아니지. 김선호.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바닷마을 공진의 ‘모든 문제 해결사’ 홍반장 역을 맡아 특유의 머리 쓸어넘기기, 바닷바람처럼 시원하게 웃기로 “우리 선호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나도 모르게 읊조리게 하는 바로 그 배우.
김선호의 ‘홍반장’은 권력도 자본도 없지만 강력하다. 2집 앨범 발매할 돈을 다 사기당해 만년 ‘히트곡 한 곡’ 가수여서 쓸쓸한 카페 사장 오윤에게는 다정한 술친구이자 홀로 키우는 중학생 딸 양육 고민을 나눠주는 든든한 동지다.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대신 자신을 거둬준 동네 할머니 감리씨의 이불 빨래를 세탁기 대신 쓱쓱 발로 밟아 척척 널어주고 마을에서 치과를 개업한 윤혜진(신민아 분)이 마을에 잘 적응할 수 있게 꿀팁을 실천하도록 채찍질한다. 마을 여성을 노리는 흉악범 소식에 밤마다 순찰을 돌고 주민센터장에게 민원을 넣어 가로등을 고친다.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가 순한 맛이고, 그 행동들로 공동체가 조금 더 따뜻해진다. 그 따뜻함이 이 비정한 현실에 설렘 한 숟갈 추가한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뒤로는, ‘운동 잘하고 나쁜 남자’보다 ‘일 잘하고 좋은 남자’가 늘 더 좋았다. 어릴 때는 농구를 잘하는 굵은 팔뚝에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하고 밀당에 한없이 오르락내리락했다면 나이가 들어서는 요리 잘하고, 차 잘 우려내고, 전자제품 잘 고치는 모습에 심쿵하고, 쓸데없는 밀당을 하지 않는 게 심건강에 좋음을 잘 알게 됐다. ‘필요한 사람, 꾸밈없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가 인생의 지론이 됐달까. 홍반장은 그런 면에서 모자람이 없다.
김선호는 쭉 홍반장 이미지를 쌓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자수성가한 한지평 실장으로 나왔을 때도 힘없고 ‘빽’ 없는 스타트업 새싹들에게 든든한 빽이 돼줬다. 드라마 <미치겠다, 너땜에!>에서 프리랜서 통역사 한은성(이유영 분)이 집에 물이 새서 갈 곳이 없을 때, 연애에 실패해서 울 곳이 없을 때 도피처가 돼줬다. 친구에서 사랑이 돼버린 은성에게 김선호가 두 눈에 눈물 담고 “내 몸에서 네 냄새가 안 없어져”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드라마를 ‘김선호 입덕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그리하여 ‘서노를 선호해’(유튜브 팬 채널)를 외치는 팬들은 매일 밤 유튜브에 선호의 예능 클립을 올리며 ‘선호할까말까’(유튜브 팬 채널) 고민한다지 아마.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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