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테나 취직해서 유희열 책상 쓸고 닦는 게 내 인생 최대 목표.” 7년 전 7집 앨범을 낸 이후로 예능 프로그램 프로젝트 음악 작업 외에 직접 곡 작업을 하지 않던 유희열이 최근 피아노 소품곡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일상에 스며드는 따뜻한 피아노 선율 영상 아래 달린 댓글을 읽다 고3 시절 장래희망이 떠올랐다.
‘음도시장 유희열이 읽을 원고를 쓰는 라디오 작가가 되겠다.’ ‘(서울대를 졸업한) 시장님과 동문이 되겠다.’ 두 가지 일념으로 교복 치마 아래 체육복 껴입고 아침 7시에서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고3 학교생활을 버텼다. 아쉽게도 시장님과 동문이 되지는 못했다.
‘음도시장.’ 이 얼마 만에 불러보는 이름인지. 유희열은 1997년 10월부터 2001년 4월까지 4년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의 시장(진행자)이었다. 뭔지 모를 불안에 갇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3 시절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이었다.
2001년 <음악도시> 마지막 방송 때 흘렸던 눈물은 2008년 KBS <라디오 천국>에서 요절복통으로 뒤바뀌어 내 20대 마지막을 함께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일찍 귀가해 침대에 누워 불 끄고 라디오를 듣던 시절. ‘라천민’(<라디오 천국> 애청자)의 사연에 흐느끼듯 웃어젖히는 ‘혈님’(유희열의 별칭) 덕에 시름을 잊었다.
내 생애 가장 사랑했던 라디오 진행자 유희열은 이제 연예기획사 안테나 ‘대표님’이다. 그는 최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회사를 매각하고 매각금 가운데 70억원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 재투자했다. ‘국민 엠시(MC)’ 유재석을 경력직 막내사원으로 영입했다.
대표 유희열 행보의 속내는 카카오티브이(TV) 속 예능 프로그램 <우당탕탕 안테나>(사진)에서 읽을 수 있다. ‘안테나 소속 뮤지션 성장 예능’인 <우당탕탕> 시리즈는 이것저것 다 하며 예능에 익숙지 않은 안테나 뮤지션을 단련시키는 콘셉트다. 캠핑도 가고 축구도 하고 내부 로고송 배틀도 한다. 캐치프레이즈는 ‘나만 알고 싶은 가수’에서 벗어나, ‘스타가 되어보자’ ‘팔자를 고쳐보자’.
이 캐치프레이즈의 진짜 속내는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고 진심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나는 읽는다. 예능은 절대 안 한다고 버티던 소속 뮤지션 정재형과 다툰 ‘<놀러와> 새벽 2시 사건’을 이야기하며 혈님은 말한다.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어. (예능을 하는 것도) 세상과 이야기하는 방식이잖아. 이렇게까지 기회가 찾아온다면 얘기를 걸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조건이 하나 있지. 음악만 변하지 않는다면.”
유희열은 변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과정이 ‘따뜻할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오디션 프로그램 <케이(K)팝스타>에서 발탁돼 소속사로 안테나를 선택한 정승환과 권진아에게 한 안테나의 첫 훈련은 ‘노래 만들기’였다. 그들은 지금 모두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가 서툰 샘 킴이 처음 쓴 한국어 가사 노래 <마마 돈 워리>(Mama don’t worry)를 듣고 부모님께 직접 들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샘과 함께 미국에 가고 그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냈던 진심이 <우당탕탕> 모든 에피소드에 담겨 있다.
2000년부터 운영된 유희열의 팬카페 ‘종점다방’에는 지금도 1년에 서너 편씩 혈님이 직접 쓴 글이 올라온다. 그중 2018년 글이 가장 안심된다. “다들 바빠져서 이젠 잘 찾아오지 못한다 해도 어느 날 문득 찾을 때 쿵~ 하고 휑한 기분 안 들게 다방 안 멈추게 잘 살필게요.” 나는 그저 이 말을 쓸 수밖에. 고마워요, 대표님.
리담 칼럼니스트 dorisleew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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