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곤충멍’에 빠져보고 싶다면

‘벌레 박사’가 곤충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등록 2022-07-10 16:50 수정 2022-07-11 01:25

어릴 때는 대부분 박사였다가 커갈수록 멍청이가 되는 몇몇 분야가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곤충이다. 여름이면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쏘다니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무릎을 굽혀 풀잎 사이로 살그머니 두 손가락을 내밀던 추억들. 그런 곤충이 시나브로 심드렁해지거나 심지어 귀찮고 징그럽게 느껴질 때, 순수의 세계도 끝나가는 게 아닐까. 곤충학자 정부희의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동녘 펴냄)은 파란 하늘과 낮은 풀숲을 잊어버린 우리를 다시 동심의 세계로 초대하는 곤충나라 재입문서다.

지은이가 곤충학자의 길로 접어든 것은 나이 마흔이 되어서다. 대학 졸업 뒤 출산과 육아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된 것은 대다수 여성과 다를 게 없었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 다시 곤충의 세계로 빠져들었고 공부에 대한 열망이 끓어올랐다. 숙고 끝에 뒤늦게 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책은 주부이자 엄마이면서 만학도라는 기쁘고도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후 지은이 자신의 이야기이자 곤충 이야기다. 딸 또래의 학생들과 나란히 수업을 듣고, 집과 실험실을 오가고, 곤충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는 중에도 온갖 집안일의 부담이 덜어지는 법은 없었다. “학교생활은 순조로웠지만, 하루하루가 전투였다.”

그렇게 5년 만에 거저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낸 지은이는 곤충학자로 불리지만 ‘벌레 박사’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주로 연구하는 곤충이 딱정벌레, 버섯벌레 등 ‘벌레’로 불려서다. 곤충은 벌레 중에서도 다리 세 쌍, 더듬이 한 쌍, 날개 두 쌍이 달린, 벌레의 부분집합이다. 곤충은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자 진화의 승자다. 지구상 전체 동물 150만 종에서 곤충이 100만 종이다. 평소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개체수는 상상 불가다. 이름 없는 종이나 발견되지 않은 종까지 더하면 세계 인구 한 사람당 2억 마리의 곤충이 존재한다는 추산도 나온다.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으로 바라본 세상은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익충과 해충의 구분이 얼마나 부질없고 인간중심적인지 절감하고, 무시무시한 침입자로만 여기던 외래 곤충이 실은 매 순간 목숨을 내놓고 살아가는 겁쟁이라는 걸 알면 안쓰러워진다. 곤충은 지구 생태계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식물이 비싼 비용을 들여 꽃을 피워도 곤충이라는 중매쟁이가 없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그다음 이야기는 모두가 안다. 곤충은 주로 먹는 식물이 정해져 있어 남의 밥상을 탐내지 않는다. 여름밤 반딧불이들의 숨 막히게 아름다운 불춤은 짝짓기를 위한 수컷의 몸부림이다. 숲에서 죽은 나무를 치우는 건 곤충 살상이나 다름없다. 책을 읽고 나면 익숙하게 걷던 공원에서 발밑을, 나무를, 풀 속을 새삼 돌아보게 될 터이다. 불멍, 물멍만 있는 게 아니다. 책에는 ‘나무 멍’ ‘곤충 멍’을 즐기는 곤충 관찰 노하우도 담겼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배짱 좋은 여성들

힐러리&첼시 클린턴 지음, 최인하 옮김, 교유서가 펴냄, 3만3천원

미국 상원의원과 국무장관,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낸 힐러리 클린턴과 그의 딸이자 보건학자 첼시가 편견과 차별을 뚫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선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 문학, 예술, 교육, 환경, 탐험, 과학, 의료, 사회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군 여성들의 이야기가 눈부시다.

서평의 언어

메리케이 윌머스 지음, 송섬별 옮김, 돌베개 펴냄, 1만7천원

<런던 리뷰 오브 북스>의 창립자이자 편집장 출신으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자”로 꼽힌 메리케이 윌머스의 격조와 유머가 어우러진 서평 에세이. 그는 특히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남다른 식견으로 키워냈다.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제목도 그가 지었다.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오철우 지음, 사계절 펴냄, 1만7천원

DNA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 양자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유기체의 생명현상을 물리학과 화학으로 설명한 <생명이란 무엇인가>(1934)로 유전학과 분자생물학 시대를 예고했다. 기자 출신의 과학사·과학철학 연구자가 그 핵심 대목을 간추려 옮기고 알기 쉽게 해설했다.

9명의 철학자와 9번의 철학 수업

이진우 지음, 김영사 펴냄, 1만1500원

철학자 이진우 교수가 고전철학(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근대 이행의 다리를 놓은 계몽주의 철학(데카르트, 로크, 칸트), 혁명과 해방의 실천철학(헤겔, 마르크스, 니체) 등 서양철학의 핵심적 흐름을 간명하게 요약했다. 150여 쪽 핸드북으로 읽기에 부담이 없는 대중교양서.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