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 버너, 김치, 냄비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밭으로 향하는 차 옆자리엔 나보다 늦게 조치원으로 이사 와서 나처럼 매일 서울~세종 출퇴근 전쟁을 벌이는 회사 후배 ㄴ이 앉았다. 둘 다 회사 인사철을 맞아 부서를 옮기는 사이 일주일짜리 휴가를 낸 4월 말의 어느 날씨 좋은 날.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뒷좌석에선 고추, 옥수수, 딸기, 수박, 참외, 토마토, 적상추, 붉은양배추 모종이 동시에 좌우로 몸을 흔들어댄다. 마치 깊은 흙 속에 뿌리 내릴 생각에 흥에 겨워 춤추는 듯하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선선해 밭일하기 딱 좋다. 마침내 농사를 시작할 때가 됐다.
내가 만들어 밭 한 귀퉁이에 갖다 놓은 평상에 짐을 부린 뒤 호미를 든다. 겉흙은 말랐는데, 호미로 파보니 속흙은 촉촉하다. 며칠 전 내린 비를 여전히 머금고 있다. 모종을 심을 땐 뿌리와 줄기가 만나는 지점까지 흙을 덮고 꾹꾹 눌러준다. 이래야 뿌리가 흙에 잘 들러붙어 활착할 수 있다. 또 비가 조금만 내려도 빗물이 오목한 쪽으로 모여 깊은 흙 속까지 스며든다. 가뭄이 언제 올지 모른다. 밭 입구에 놓인 큰 물통에 고인 빗물을 퍼다 조금씩 뿌려주고 나면 모종 이식은 끝이다.
2021년 직접 수확한 하늘마와 들깨도 대열에 합류했다. 들깨는 뿌리고 하늘마는 심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너무 깊이 심으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발아하지 못하고 씨앗이 그냥 썩기 쉽다. 보통 씨앗 크기의 세 배 넘는 두께로 흙을 덮지 말라고 하더라. 하늘마는 지난해 심었던 자리에 열댓 개 심었다. 지난가을 듬뿍 넣어준 퇴비의 효용을 올해까지 살려보자는 취지다. 들깨는 그냥 흙 위에 뿌린 뒤 쇠스랑으로 흙을 살살 긁어줬다. 자연스럽게 들깨 씨와 흙이 뒤섞인다. 그 정도만 해줘도 들깨는 싹이 난다.
한 시간가량 슬슬 밭일하니 살짝 땀이 났다. 그런데 가져온 걸 다 심었는데도 이랑의 70%는 여전히 텅 비어 나를 애처로운 눈길로 쳐다보는 듯하다. 또 뭘 심어야 하나. ‘이번엔 청양고추를 심었으니 다음주엔 아삭이고추를 심어볼까. 옥수수는 지난해 재배해 말려놓은 것만 해도 큰 통으로 두 개나 남았으니 올해는 조금만 하자. 오이랑 가지는 집에서 자주 쓰지 않는 요리 재료인데, 그래도 조금만 심어볼까?’ 이런저런 고민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밭을 놀리기는 싫고, 또 뭘 심자니 죄다 일이다. 이랑에 비닐을 깔지 않고 농사짓는 탓에 곧 잡초가 무성히 올라올 텐데, 그것도 큰일이다. 잡초가 자라기 전에 농작물이 먼저 뿌리를 내리고 자라야 잡초와의 생존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
고민은 짧게 끝났다. 조치원 재래시장에 내가 단골로 가는 모종가게 할머니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올해 손자가 의대에 진학해 기분이 째진다며 500원짜리 참외 모종 두 개를 덤으로 얹어주면서도 웃음기를 놓지 않는 그 할머니의 컨설팅을 받으면 된다. 다만 쓸데없이 한꺼번에 많이 사라고 유혹하는 할머니의 꼬드김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할매, 이번엔 뭘 심으면 좋을까유∼?”
전종휘 <한겨레> 전국부 전국팀 기자 symbio@hani.co.kr
*농사꾼들: 주말농장을 크게 작게 하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한겨레> 김완, 전종휘 기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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