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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시인의 마음으로 과학을 쓰다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쓴 최재천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2 08:24 수정 2022-03-28 09:28
최재천 교수가 들고 있는 것은 돌고래 ‘제돌이’의 모형이다. 최 교수는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불법으로 포획돼 돌고래쇼에 이용되던 제돌이를 제주 바다에 방류한 바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최재천 교수가 들고 있는 것은 돌고래 ‘제돌이’의 모형이다. 최 교수는 ‘제돌이야생방류시민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불법으로 포획돼 돌고래쇼에 이용되던 제돌이를 제주 바다에 방류한 바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2022년 새 학기가 시작되던 3월의 어느 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자연과학관으로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랐다. 마스크 뒤로 숨이 차오르지만, 마음은 가쁘지 않다. 오랜만에 최재천(68) 교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최재천 교수님과의 인연은 20년을 훌쩍 넘어, 교수님 수업을 듣던 대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동시에 학계 외부와의 소통에도 주저 없는 최 교수님의 모습은 당시 생물학자를 꿈꾸던 내게 이상적인 롤모델로 보였다. 언젠가 나도 내가 연구하는 분야를 세상에 친근하게 소개하는 과학자가 되길 꿈꾸면서 대학원 시절을 지냈고, 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최 교수님은 나에게 꾸준하게 글을 쓰는 버팀목이 돼줬다. 차이가 있다면 내게는 과학자로서의 온전한 정립보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먼저 발현된 것이었다. 이후 나는 글 쓰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을 쓰는 과학논픽션 작가로 자리매김해 인생의 행보는 갈라졌지만, 여전히 내가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이가 있다면 바로 최재천 교수님일 것이다. 그러니 처음 만났던 그 시절 교수님의 나이가 되어 다시 그분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찾아가는 시간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시인으로 살아가리라 생각한 학창 시절

-안녕하세요,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가 지금처럼 과학논픽션 작가로 살아가는 데 큰 롤모델이 돼주셨다는 것은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요, 오늘은 생물학자 최재천이 아니라, 선배 과학논픽션 작가 최재천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찾아왔습니다. 교수님은 작가로서 정체성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는지요?

반갑습니다. 제가 좋은 길을 선택하게 했는지 걱정이 살짝 되기는 하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라…. 마침 올해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 20주년 기념판을 내기 위해 옛 원고를 다시 읽다가 그 책에 썼던 서문의 한 문장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어요. 당시 그 글을 쓸 때 나는 “자연에게 반성문을 쓰는 기분으로 이 글을 쓴다”는 표현을 사용했지요. 돌이켜보니 20년이 지나도록 나는 늘 자연에서 소재를 가져다가 글을 쓰고, 자연을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소재로 녹여내고 있더군요. 그래서 처음 글을 쓸 때의 그 심정, 자연에 반성문을 쓰는 작가, 그것이 나를 규정하는 가장 큰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과학자로 처음 알려지셨는데, 언제부터 글쓰기에 매료되셨는지요?

보통 내가 과학자가 된 뒤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아는데, 사실 과학 연구보다 글쓰기가 먼저였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삼촌이 철해주신 공책을 가지고 언덕에 올라 시를 쓰는 것을 즐기던 시인 지망생이자 자타공인 문학소년이었지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참가한 백일장에서 당시 심사위원인 장만영 시인이 ‘매우 탁월하다’는 극찬과 함께 내 시를 장원으로 뽑아준 것이 결정적 계기였습니다. 이후 학창 시절 내내 별명이 시인이었어요. 나 역시 시인으로 살아갈 거라 생각했고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당시 고등학교에서는 이른바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상위권 학생 대부분을 무조건 이과에 배정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더군요. 그래서 고등학교 공부가 참 버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 나는 과학자가 된 뒤 글쓰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먼저 한 뒤 어쩌다보니 과학자가 됐다고 하는 편에 가깝지요. 글 쓰는 과학자라기보다 글 쓰던 과학자인 셈입니다.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사진=김진수 선임기자

박완서 작가가 기다린 <현대문학>의 글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책을 냈는데 그중 가장 애정이 가는 책은 무엇인가요?

얼마 전 지인에게 지금까지 내가 단독 저자나 공저자 혹은 번역가로 이름을 올린 책이 100여 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썼나 싶어서 말이죠. 그 많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라고 한다면 <개미제국의 발견>과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그리고 <열대예찬> 이렇게 세 권을 꼽을 수 있습니다.

먼저 <개미제국의 발견>은 내가 쓴 첫 번째 대중과학서이자, 과학자가 쓰는 대중과학서 시장의 시작을 여는 구실을 했다고 평가받는 책입니다. 이전까지 국내 대중과학서 시장에서 유통되는 책의 절대다수는 번역서였지요. 이 책 이후 국내에서도 전문적인 연구 분야를 우리말로 풀어쓴 대중과학서 시장이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그 물꼬를 열었다는 의의가 큰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아무래도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겠지요. 대중과학저술가로서 최재천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려준 책이고, 가장 많이 팔렸으며, 독자의 사랑도 가장 많이 받은 책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7차 교육과정 국어교과서 1단원에 이 책의 내용 일부가 실리면서, 내 별칭을 ‘황소개구리’로 굳히고 내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으니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죠. 개인적으로 내가 직접 발로 뛰어 출간한 책이기도 하여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입니다. 원고를 완성한 뒤 어디서 출간할지를 생각하다가 기존에 효형출판에서 낸 김병종 작가의 <화첩기행>을 보고 아주 마음에 들어 이런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직접 원고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지요. 당시 출판사 반응은? 생각대로 떨떠름해하더군요. 하지만 내가 두고 온 원고를 읽은 출판사에서 곧 출간하겠다는 연락이 왔고, 그렇게 내 책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둔 책이 됐지요.

첫 번째 책이 국내 과학저술계에 의미가 있는 책이고, 두 번째 책이 과학저술가로서 최재천을 만든 책이라면,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바로 <열대예찬>입니다. 앞의 두 책에 비해서는 좀 덜 알려졌지만, <열대예찬>은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책입니다. 원래 <열대예찬>은 순수문예지인 <현대문학>에 연재하던 글을 묶어낸 책입니다. 과학자로서는 나름 글 좀 쓴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현대문학>에서 연재 제의를 받았을 때는 상당히 부담을 느꼈지요. 글쓰기의 프로페셔널(전문가)들이 만드는 순수문예지에 연재한다는 것은 보통 내공으로는 어려운 일이니까요. 그랬기에 한편 한편 정말 심혈을 기울여 글을 썼지요. 또한 이전부터 존경해 마지않는 박완서 작가님이 <현대문학>에 실리는 내 글을 매달 기다린다는 말을 들어서 매우 기뻤던 기억이 있어, 여러모로 내가 가장 아끼는 책입니다.

*최재천, 자연에 반성문을 쓰는 과학저술가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61.html

출간 목록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

첫 번째 대중과학서. 국내 과학자가 쓴 대중과학서 시장의 시작을 알리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2001)

교과서에 실려 최재천의 별명을 ‘황소개구리’로 알린 책.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궁리출판, 2007)

<열대예찬>(현대문학, 2011)

문학월간지 <현대문학>에 연재하고, 소설가 박완서가 매달 기다렸다는 글들을 모았다.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 2012)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김영사, 2021)

이은희 과학논픽션 작가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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