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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인간이 약한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말끝이 당신이다> 쓴 김진해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2 16:17 수정 2022-03-28 18:30
사진=이정우 선임기자

사진=이정우 선임기자


“한국 사회는 말의 무질서나 오염을 걱정하고, 올바른 말을 병적으로 강요해왔다. 질서는 인위이고 위계이자 명령이다. 엘리트주의이고 전체주의적이다. 그래서 표준어를 참조하지 않는 자유의 영토, 작은 공동체의 자율적 합의로 만드는 언어가 여기저기 꽃피어야 한다.”(<말끝이 당신이다〉)

국가가 정한 표준어 규정에 반기를 드는 국어학자가 있다. 자유로워야 할 언어가 ‘표준’이라는 틀에 갇혀 다양성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스스로 말과 글을 둘러싼 이 세계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라고 말한다. 이런 ‘불온한 말’을 던지는 그는, 김진해(54)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다. <한겨레>에 칼럼 ‘말글살이’를 쓰고 있다. 그가 상상하는 다른 언어의 세상은 어떤 걸까. 그가 쓰는 언어의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2022년 3월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는 경희대 교수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주간 마감자’로 산다는 것

그는 매주 글을 써야 하는 ‘주간 마감자’이다. 일주일에 한 번 <한겨레>에 실리는 ‘말글살이’ 마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9년 5월부터다. 칼럼 분량은 200자 원고지 4장(800자 이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글방에 들어갈 문장을 쓰고 지우고 또 지우고 쓴다. 분량이 적다고 글쓰기가 쉬우랴. ‘데드라인’인 일요일에는 오로지 칼럼만 쓴다.

그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과 즐거움,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행위다. “글을 쓰며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나’ 생각이 들어요.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이에요. 매번 그 비참함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하고. 그리고 다시 쓰고요. 고통과 함께 행복도 느껴요. 매일 산책할 때 같은 코스를 돌더라도 그날 날씨, 지나가는 사람들, 풍경이 달라요. 어제는 꽃이 만개하고 시간이 지나면 꽃잎이 떨어져 있고요. 같은 길에서 아주 작은 변화를 발견하는 맛이 있어요. 글쓰기도 그래요. 반복되는 일이지만 매번 분위기가 달라요. 살아 있는 존재의 변화를 확인하는 작업이에요.”

글을 쓰기 위해 글의 씨앗을 발견하는 것도 매주 과제다. ‘말글살이’라는 칼럼이다보니 말 속에 담긴 삶, 글과 말로 표현된 태도와 관점 등을 글감으로 찾아야 한다.

“제가 그동안 쓴 글을 어떻게 썼나 생각해보니 주로 일상에서 글감을 찾았더군요.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 길을 걷다가 본 간판, 버스를 탔을 때 어떤 승객이 던진 말, 방송에서 나온 말에서 글감을 얻었어요. 항상 촉수를 세우고 있어야 들리고 보여요. 그 덕에 구체적인 삶과 접촉하는 순간이 많아졌어요.”

독자가 귀 기울이는 이야기는 그가 사소한 일상에서 찾은 것이다. “‘당신들 이거 모르지 내가 알려줄게’ 그렇게 시작하는 글은 반응이 좋지 않아요. 그런 글은 나중에 제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우리의 말글이 삶과 연결됐다는 걸 보여줄 때 독자들 반응이 좋아요.”

‘말글살이’를 통해 대중적 글쓰기를 해나가는 그는 2021년에는 ‘말글살이’ 글을 가려 뽑아 에세이 <말끝이 당신이다>(한겨레출판)를 펴냈다. 첫 대중서이다.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언어는 풍성해질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하지 않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기존의 말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음미해야지만 말을 비틀 수 있어요. 그걸 하고 싶은 분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 책을 썼어요.”

“성문화된 한글맞춤법을 없애라”

“띄어쓰기에도 엘리트주의가 아닌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시민은 묻고 국가는 답하는 일방주의가 아니라, 한쪽은 시민, 한쪽은 사전이 비슷한 무게로 오르내리는 시소게임이 되어야 한다. 언어민주주의는 글쟁이들의 줏대와 깡다구로 자란다.”(<한겨레> 칼럼 ‘쳇바퀴 탈출법(3)’)

그는 ‘언어 자유주의자’다. 언어생활에서 국가 개입보다 시민의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가 사전’인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폐기해야 한다고. 국가가 만든 표준사전이 있는 한 “언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철학과 기준들로 서로 경합”하는 ‘복수의 사전’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근대국민국가는 단일하고 균질적인 공동체를 꿈꾸게 됩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서둘렀던 게 우리말로 된 사전입니다. 사전에 표제어를 정하려면 먼저 철자법을 만들어야 해요.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거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에요. 국민국가는 단일어, 단일민족을 지향하니까. 게다가 지금은 이것을 국가가 개입하고 주도해 더 큰 문제입니다. 성문화된 맞춤법, 언어의 지역성과 다양성을 불허하는 표준어 정책, 국가 주도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우리를 여전히 ‘언어적 근대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요. 성문법으로 철자법을 제정한 나라, 국가 주도로 사전을 만드는 나라가 얼마나 될 거 같아요?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비민주적인 상황이죠. 현대는 다양성, 잡종성, 자율성을 지향하죠. 국가 사전 하나가 말글살이의 유일한 기준이라니 말이 안 되죠.”

우리는 표준어와 비표준어로 양분되는 언어체계 안에서 살고 있다. 표준어는 맞는 말, 비표준어는 틀린 말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말의 잡종성과 다양성이 뿌리내리고 자랄 수 없는 환경이다. 특히 비표준어인 사투리는 양분된 언어 체계 안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사투리는 소설에서도 따옴표 안에만 나와요. 따옴표 안에만 가둬진 거죠. 따옴표 밖은 모두 표준어이죠.”

의미 있는 시도도 있다. 그가 눈여겨본 것은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를 경상도 사투리로 쓴, 최현애 작가의 <애린 왕자>(이팝)이다. 맞춤법을 깨뜨리는 일탈과 재미를 주는 책이다.

“<애린 왕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상도 사투리로 쓴 책이에요. 경북 포항 출신인 작가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말, 모어로 쓴 거예요. 이 책은 18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각 지역의 사투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시도가 많아졌으면 해요.”

표준어 중심의 획일적 언어정책으로 말에 대한 사유도 협소해지고 있다. 문법과 맞춤법에 맞냐 틀리냐는 답 맞히기에만 머무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 안에서 말의 상상력을 꿈꾸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경직된 언어에 관한 논의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다. 칼럼 ‘말글살이’에서 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제의 글을 세 차례에 걸쳐 썼다. 어문 규범을 지키는 이들로부터 반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 그는 “성문화된 규범이 없이도 표기 질서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말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고 관습이 만들어지고 하나로 정착하는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가 우려하는 것은 “시민 영역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다양한 번역어를 유통·경합시키고 어느 하나로 모아가는 ‘말의 발산과 수렴’의 장마당(언어시장)이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맞춤법 폐지 등을 주장하는 그에 대해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농담 섞인 말로 “언어시장주의자”라고 부른다. “(김진해 교수는) 국어학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언어학 전문가들과 민간 한글운동단체 사이의 간극을 넘나들고 있어요. 맞춤법 폐지 등 언어를 둘러싼 논쟁, 토론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김진해, 말의 상상력을 꿈꾸는 언어시장주의자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55.html

출간 목록

<말끝이 당신이다>(한겨레출판, 2021)

〈한겨레〉 칼럼 ‘말글살이’에 쓴 글을 엮은 에세이. 말의 심장(1부), 말의 품격(2부) 등 주제로 나눠 말에 담긴 의미를 분석하고 언어와 사회를 톺아본다.

프랑스보다 불란서가 좋다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

글쓰기에 어떤 책이 도움이 됐을까. 김진해 교수는 어렵사리 책 두 권을 꼽았다. 대니얼 헬러 로즌의 <에코랄리아스>,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이다.

<에코랄리아스> “부제가 ‘언어의 망각에 대하여’예요. 언어의 망각과 기억, 말의 소통 방식 등을 이야기해요. 말이 살아남으려면 그만큼 사라지고 잊혀야 할 게 있다는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언어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한 책이에요.”

<감염된 언어> “저자는 이론에 경도되지 않고 자신의 감각으로 글을 이끌어가요. 예를 들어 다들 프랑스란 말을 쓰지만, 자신은 불란서가 좋다고 해요. 규범이 아니라 자기가 살아오면서 몸에 안착시킨 언어를 옹호해요. 이즘(이론)에 갇히지 않아요.”

허윤희 <한겨레> 기자 yhher@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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