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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성실함으로 새 길을 만드는 연재 노동자 [21WRITERS②]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부지런한 사랑> 쓴 이슬아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0 22:27 수정 2022-03-22 18:28
할아버지가 직접 적어준 서재 팻말로 ‘슬아의 도상실’이라고 적혀 있다. 류우종 기자

할아버지가 직접 적어준 서재 팻말로 ‘슬아의 도상실’이라고 적혀 있다. 류우종 기자




*이슬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21WRITERS①]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47.html

숙련된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빚어내는 가장 큰 힘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나온다. 연재 ‘노동’을 하려면 컨디션 관리는 필수적이다. 제때 잘 자고 운동을 매일 1시간씩 하고 30분가량의 낮잠을 챙기는 건 ‘이슬아 세계’의 규칙이다. 이 세계에서 몸과 마음의 항상성은 매우 중요하다. “매일 아침 몸무게를 재요. 체중 감량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이 일정한가’를 확인하는 작업이죠.”

글을 쓰는 작업도 “기복 없이 유지되길” 바란다. 2022년부터는 “마감이 없어도 매일 쓰는 일”을 연습하고 있다. “발표하지 않는 글이 쌓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복과 훈련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다져나가기 위해서다. 그에게 최고의 찬사는 “숙련된 국숫집 사장님처럼 쓴다는 것”이다. 그러니 “힘들고, 피 말리고, 몸도 망가지고, 마음이 보통 강해야 하는 일이 아니지만” 그는 오늘도 국숫발을 뽑아내듯이 쓴다.

“무엇보다 정확해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써요. 아닌 건 쓰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어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지지하지 않는 것,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 안 쓰려는 의지요. (이 과정에서) 여러 번 소거하고 남기는 정확한 문장들을 찰떡같이 잘 썼을 때 쾌감이 있어요. 언어를 세공하는 느낌도 좋아요. 문장에도 좋은 운율이 있어서, 리드미컬한 문장을 쓰는 걸 좋아해요. 좋은 멜로디처럼 경쾌하게 읽히길 바라요. 내가 읽어도 다시 읽고 싶은 내 문장을 쓰기가 어렵잖아요. 더는 고칠 것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는 짜릿함이 있어요.”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부지런한 사랑>

그의 세계로 한 발짝 더 들어가본다. 이슬아가 글을 쓰는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했다. 그의 세계는 애플 생태계에 의지하고 있다. 아이폰 기본 메모장 앱으로 틈틈이 메모하며 재료를 수집한다. 일상 속 대사나 중요한 순간 등을 잊지 않게 바로바로 적는다. 맥북과 아이맥을 이용해 글을 쓰는데, ‘아이에이 라이터’(iA Writer)란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 프로그램은 자신이 지금 쓰는 문장만 검은색으로 표시하고 나머지는 배경처럼 흐릿하게 만들어 집중을 도와준다고. 빈 문서에 ‘끝’이나 ‘다음 화에 계속’을 가장 먼저 적고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미슬이’(미래의 이슬아)는 결국 이 글을 반드시 끝내고 말 거라는 일종의 자기암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전자담배. 그의 서재에선 실내 흡연이 가능한데, 주로 퇴고할 때 담배를 찾는다. “계속 집중하니까 정신이 너무 곤두서 있잖아요. 담배가 살짝 이완되는 효과가 있어요. 한 대 피우면 좀 차분해져서 고치면 좋을 것들이 보여요. 발송 전에 지나치게 긴장되는 마음도 약간 풀어주고요. 그래서 마감 직전에 꼭 담배를 피우게 돼요.”

글 쓰는 도구인 맥북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나무받침대. 해외에서 ‘직구’한 물건이라고. 맥북을 올려놓지 않으면 그저 매끈한 하나의 나무 오브제 같아 나무 책꽂이가 있는 서재와 썩 잘 어울린다. 류우종 기자

글 쓰는 도구인 맥북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나무받침대. 해외에서 ‘직구’한 물건이라고. 맥북을 올려놓지 않으면 그저 매끈한 하나의 나무 오브제 같아 나무 책꽂이가 있는 서재와 썩 잘 어울린다. 류우종 기자

신뢰하는 사람이랑 약속을 해보세요

글쓰기 초심자를 위한 구체적인 기술을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책을 많이 읽거나 필사하거나 단어와 문장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신뢰하는 사람이랑 약속하는 것”이란다. 웃음을 잔뜩 머금고 그는 말했다.

“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쓰기 싫어서 안 쓰는 거잖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쓰기로 약속하는 것이 첫 번째예요. 저도 애인과 그렇게 하고 있고요. 보여주는 사람 없이 혼자 쓰는 건 외롭잖아요. 자기 안에 계속 고이는 작업이니까요. 독자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일단 그것만 해도 반은 한 거죠.”

돈을 걸고 약속하는 것도 해봄 직하다. “저의 스승 ‘어딘’이 말씀하시길, 좋아하는 일에는 항상 네 가지를 들여야 한대요. 시간, 몸, 마음, 돈. 그래야 그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대요. 그러려면 일단 약속부터 해야죠.”

글을 쓰면서 자주 뒤적이는 책들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박완서의 작품이다. 뒤라스에겐 “고독할 용기”를, 박완서로부턴 “묘사의 기술”을 얻는다. 최근 ‘가녀장 특집’ 연재를 하면서는 책상 한쪽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펴놨다. 비록 ‘가녀장’ 얘긴 없지만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에 관한 힌트를 톡톡히 얻고 있다.

이제 막 30대 초입에 들어선 이슬아는 이전부터 “30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30대부터 진짜 내 세계가 시작될 것 같았다”고 응수하니 그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요. 그런데 엄마가 자꾸만 40대가 전성기라고, 정말 좋은 시기라고 하셔서 기대하고 있어요.”

20대의 ‘과슬이’(과거의 이슬아)는 자신과 자신의 곁을 세심하게 관찰해 글로 옮겼다. 어떤 상황에서건 유머러스함과 낙관하는 시선을 잃지 않고 세상을 바라봤다. 30대 ‘현슬이’(현재의 이슬아)는 여기에 상상을 더해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누빈다. 여전히 따뜻함과 유머를 잃지 않은 채로.

“내가 읽어도 놀랄 만큼, 나도 계속 읽고 싶을 만큼 좋은 글을 쓰고 싶어요. 제 글이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글을 계속 써요.”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더 넓어질, 40대 ‘미슬이’가 만들어내는 세계는 얼마나 탁월할지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아마 그의 세계 안에서 오래도록 헤엄칠 것만 같다.

에필로그

인터뷰가 어려운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레퍼런스(참고 자료)가 너무 없거나, 혹은 너무 많거나. 이슬아는 후자다. 그는 글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을뿐더러 선행 인터뷰도 넘쳐난다. 그래서 헤엄출판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내가 어떤 다른 이야기를 더 끌어낼 수 있을지 잔뜩 걱정됐다. 이런 우려를 털어놓자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말을 건넨다.

“이제까지랑 다른 인터뷰를 제가 같이 만들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연재 중이고 새로운 시리즈를 뜨겁게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겹치지 않는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편하게 하세요, 기자님.”

따뜻한 격려에 스르르 긴장이 풀린다. 그의 글을 읽으며 받았던 예의 그 느낌 그대로다. 쉽게 비관하지 않고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해내는 사람. 실제로 이슬아는 “고생과 절망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힘으로 일한다”. 글쓰기라는 힘든 작업을 통해 “귀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는 풍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싶다”고도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왜 그토록 ‘글쓰기’와 가까워지지 못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내게 글은 비판하거나, 회의하거나, 추궁하거나, 따져 묻거나 할 때 써야만 했던 매일의 과업일 뿐이었다. (이슬아는 그것도 “예리해야 가능하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줬지만) 어쩐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살그머니 싹을 틔운 것 같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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