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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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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21WRITERS①]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부지런한 사랑> 쓴 이슬아 작가 인터뷰
등록 2022-03-20 22:23 수정 2022-03-28 18:28
사진=류우종 기자

사진=류우종 기자

작가 이슬아’라는 세계를 천천히 유영해본다. 구태여 ‘작가’를 이름 앞에 덧붙인 건 그에게 너무 많은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노래도 한다. 어느 하나 모자람 없이 ‘이슬아스러움’을 한껏 담아낸 창작을 하지만, 이 지면에선 그의 글쓰기에만 집중해보기로 한다.

이슬아(30)가 헤엄치는 세계는 계속 확장하고 있다. 쉬지 않고 부단하게 발차기를 해온 덕이다. 2013년 <한겨레21>의 제5회 손바닥문학상에서 ‘상인들’로 가작을 수상하며 “이제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고 정체화했던 그는 5년 뒤인 2018년, 작가와 독자를 직접 잇는 ‘메일 구독’ 형태의 <일간 이슬아> 연재를 처음 시작했다. “아무도 안 청탁했지만 쓴다!”는 패기 있는 선언과 함께. 그렇게 만들어낸 새로운 길을 이슬아는 성실함으로 깊고 넓고 단단하게 다져가는 중이다. <일간 이슬아>는 5년째 계속되고 있고 수필에서 시작한 그의 글쓰기는 인터뷰, 서평, 서간문, 픽션의 세계로 가지를 뻗쳤다.

봄이 막 문을 두드릴 무렵, 서울 정릉에 있는 헤엄출판사 서재에서 이슬아를 만났다. 그가 직접 설계하고 아빠가 만들어준 책꽂이로 삼면이 둘러싸인, 정방형의 서재다. 길쭉한 창으로 보이는 산의 능선이 계절을 감각하게 해준다. 인근 중학교에서 “체육시간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 활기가 깃드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이곳에 앉거나 때론 서서 글을 쓴다. 서재 앞에는 ‘슬아의 도상실’이라는, 붓글씨로 적은 팻말이 붙어 있다. 할아버지가 직접 적어 선물했다.

글쓰기가 천직인가봐요

“이번 연재를 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글쓰기가 천직인가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나 부지런히 글을 써왔는데 어째서 이제야? 궁금해 되물었다.

“사실 글쓰기가 언제나 힘들잖아요. ‘글이 잘 써지는 상태’라는 건 없잖아요. 그나마 다른 것보다는 덜 괴로우니까 이걸 한다는 느낌으로 일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연재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글쓰기를) 할 수 있구나 싶어요. 그런 점에서 천직 같아요.”

2022년 2월부터 3월까지 한 달간 이어지는 <일간 이슬아>는 <가녀장이 말했다>라는 드라마를 연재한다. 수필에서 ‘응픽션’(이슬아의 세계에서 픽션과 논픽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글)으로 뻗었던 그의 세계가 ‘픽션’ 쪽으로 좀더 나아간 결과물이다. ‘시트콤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드디어 글로 옮겼다. ‘딸’인 슬아가 낮잠출판사의 사장으로서 복희 팀장(엄마)과 웅이 팀장(아빠)을 고용해 출판사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아내는 일종의 ‘홈드라마’다. ‘가녀장’이란 말은 ‘가부장’의 아버지 ‘부’자를 딸(여자) ‘녀’로 바꿔 탄생했다.

“거짓말을 섞는다는 홀가분함이 있어요. 은근슬쩍 여기저기에 뭔가를 섞는 그 즐거움이 있어서 재밌게 쓰고 있어요.”

하지만 ‘천직’이란 느낌을 받는 건 비단 글의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쓰는 체력과 믿음이 조금 늘었다는 느낌이에요. 많이 운동하면 근육이 늘어나는 것처럼요.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마감을 빠르게 하다보니 확실히 어떤 단련이 됐구나, 닥치면 진짜 완성해내는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달까요.”

“저 타투 할까 봐요.” 가녀장이 대답한다. “하고 싶으면 하세요.” 그는 아직 고민이다. “무슨 모양을 새길지 모르겠어요.” 슬아가 잠시 생각해본 뒤 말한다. “세 보이려는 타투는 오히려 더 약해 보여요. 아름다운 아저씨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아빠 같은 중년 남자일수록 겸손한 귀여움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에요.”

며칠 뒤 웅이는 슬아가 직접 그려준 도안을 들고 타투샵에 간다. 몇 시간 후 오른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새긴 웅이가 집에 돌아온다. -<가녀장이 말했다> 5화 ‘아저씨의 아름다움’ 중

<가녀장이 말했다>는 가부장제를 유쾌하게 비튼다. “마치 ‘예수께서 말씀하시길’이란 말처럼 ‘가녀장 가라사대’를 쓰고 싶었죠. 최고의 권력은 발화 권력이잖아요. 누가 말하냐, 그 사람의 말이 얼마나 효과적이냐가 권력의 지형을 보여줄 텐데 (글 안의) 낮잠출판사에선 가녀장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어서 ‘가녀장이 말했다’를 제목으로 정했어요.”

웅이 팀장이 청소기와 대걸레 타투를 하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킬킬 웃음이 나온다. 복희 팀장에게 살림노동 비용을 지급하는 장면에선 모든 회사가 이런 제도를 채택할 경우 달라질 수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게 된다. 실제로 이슬아가 운영하는 헤엄출판사에서도 살림노동 비용을 별도로 책정해 복희 팀장의 월급에 포함했다.

가부장제 속에서 며느리의 살림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슬아는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다. 살림을 직접 해본 가장만이 그렇게 돈을 쓴다. 살림만으로 어떻게 하루가 다 가버리는지, 그 시간을 아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 때문에 그는 정식으로 복희를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에 관해서 복희는 천재이기 때문이다. 슬아는 복희의 재능을 사서 누린다. 복희는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가녀장이 말했다> 4화 ‘복희를 공짜로 누리지 마’ 중

사진=류우종 기자

사진=류우종 기자




조롱 대신 존중으로

이슬아의 글은 정중함을 잃지 않는다. “너무 쉽게 비판하거나 조롱하고 싶지 않은 거죠.” 자신도 그 제도 안에서 자란 사람이라는 걸 자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가부장제가) 여러 문제점이 있고 달라지고 싶어 시작한 이야기지만요. (가부장제에서 자라며) 후진 것도 받았지만, 정말 소중한 배움과 사랑도 받았거든요. 가부장적인 인물들의 장단점을 칼로 무 자르듯 나눌 순 없잖아요.”

그래서 그는 “아주 쉽게 비난하고 조롱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좋은 방향을 확실하게 가리키는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편을 가르거나 타인을 배제하지 않는 글쓰기, 이슬아의 방식대로 설득하는 법이다.

“저랑 생각이나 정치적 지향이 아주 다른 사람도 제 이야기를 봤으면 좋겠어요. ‘잘 만든 이야기’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초대하고 싶어요.” 잘 만든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에 다른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준다고 그는 믿는다.

이슬아의 세계엔 복희와 웅이 외에도 여러 인물이 존재한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까지 글을 배운 ‘어딘글방’의 ‘어딘’(김현아 작가)은 “크고 깊은 사랑을 주신 선생님”이다. 많이 혼나고 많이 창피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창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글이 많이 달라졌고요. 매주 한 편씩 글을 완성해서 합평받는 게 되게 힘든 훈련인데, 그 덕에 마감에 대한 맷집이 있는 채로 데뷔했어요.” 그 시절을 함께 견디며 지내온 동료들(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하미나 등)도 서로에게 훌륭한 스승이 돼줬다.

기억에 남는 가르침을 물었더니, 그는 질문을 한참 곱씹었다. “너밖에 모르지 말라는 이야기가 기억나요.”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 “아마 글에 더 많은 사람을 초대해야 한다는 의미였을 거예요. 그들에 대해서 내 일처럼 기뻐하고 슬퍼해야 내 세계가 확장된다는 뜻이죠.”

글쓰기 선생님으로서 이슬아는 학생들에게 조금 더 “너그럽고 헐렁한” 편이다. 학생들에게 글쓰기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도록 노력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고 싶냐고 물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골라낸다.

“선생님한테 듣고 저한테도 오랫동안 화두였는데요. 내가 얼마나 특별하고 고유한지, 그리고 남들도 얼마나 그런지를 아는 사람의 글을 좋아해요. 나만 어여쁘거나 가여워서 타인을 초대하지 않는 걸 좀 지루해하고요. 등장인물이 꼭 많을 필요는 없지만 타자가 있기는 해야 한다고, 오로지 자기의 내면만으로 가득 찬 학생들에게 타자를 데려오라고 해요. 꼭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도 얘기하고요.”

누구나 남을 자기로밖에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 나는 조금 위안이 되었던가, 아니 조금 슬펐던가.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서로를 경유한 문장을 생각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번갈아가며 자기 얘기를 쓰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

이슬아의 세계에 다양한 결의 사람이 입체적인 정체성을 갖고 존재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이런 고민이 묻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는 자신의 엄마를 이름인 ‘복희’로 호명함으로써 “나와 관계성이 없을 때 복희가 다른 곳에서 어떤 사람인지를 관찰”하고 글로 옮긴다. ‘복희’의 존재를 오롯이 존중하며 자신의 글에 정중하게 초대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응급실 청소노동자, 인쇄소 기장, 수선집 사장님 등 이웃 어른을 만나고 동료 창작자들의 세계를 탐색하는 것도 그가 타인을 통과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방법이다. “자신도, 타인도 잘 사랑하고 싶어요. 부지런히 질문하는 것, 그리고 나 이외에도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작가의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슬아, 성실함으로 새 길을 만드는 연재 노동자 [21WRITERS②]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1748.html

갱신, 다정, 긍정

이슬아를 사랑하는 이유

이슬아를 왜 사랑하나요. 그의 글엔 어떤 매력이 있나요. 편집자로서 이슬아의 글을 함께 매만져온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와 그의 열혈 독자 2명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혹시나 그의 세계에 풍덩 빠지고 싶은 이들에게 친절한 참고 지표가 되길 바라며.

이연실 “잘 쓰는 분은 많은데 자신을 넘어서려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님은 드물어요. 그런데 이슬아 작가님은 끊임없이 자기를 갱신하려는 점이 굉장히 놀라워요. 보통 자신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글을 쓸 때 어쩔 수 없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데, 작가님은 쿨하고 자기 연민이 없어요. 신기해요.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게 아니고 그 점을 글에 녹이는데도 ‘내가 제일 힘들다’며 자기 이야기를 세상의 전부로 만들지 않아요. 실제로도 만나면 희한하게 제 이야기를 그렇게 하게 돼요.(웃음)”

조예슬 “<일간 이슬아>를 구독하고 매일 밤 에세이를 받았다. 버릴 데 없는 정갈한 글이었다. 그의 시선은 대상의 직업, 계층을 가리지 않고 다정했고 힘이 있었다. 그 힘은 지금의 이슬아 작가를 키워낸 복희씨와 웅이씨의 자녀에 대한 존중과 신뢰로부터 온 게 아닐까 감히 짐작해본다. 자기만의 길을 닦아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깨닫는 무언가가 있다. 신선함, 생기, 성실함, 자신에 대한 믿음 등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 이슬아 작가는 내게 그런 사람이다.”

이하나 “이슬아 작가의 글엔 따뜻함과 넉넉한 사랑이 있어요. 충분히 받아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랑과 긍정의 힘이 느껴져요. 유려한 미사여구 없이 글이 담백하고, 솔직하다는 칭찬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의 솔직함이, 작가의 적정 페이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당당함이, 그러나 교만함 없이 겸손한 태도가 그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 보는 글을 공유하고 싶어요.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한 생에서도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날 수 있잖아. 좌절이랑 고통이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이 새로운 정체성을 주니까. 그러므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다시 태어나려고, 더 잘 살아보려고, 너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느라 이렇게 맘이 아픈 것일지도 몰라. 오늘의 슬픔을 잊지 않은 채로 내일 다시 태어나달라고 요청하고 싶었어. 같이 새로운 날들을 맞이하자고. 빛이 되는 슬픔도 있는지 보자고. 어느 출구로 나가는 게 가장 좋은지 찾자고. 그런 소망을 담아서 네 등을 오래 어루만졌어.”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사진=류한경 사진가

사진=류한경 사진가

사진=류한경 사진가

사진=류한경 사진가

출간 목록

<일간 이슬아 수필집>(헤엄, 2018)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문학동네, 2018)

<심신단련>(헤엄, 2019)

<깨끗한 존경>(헤엄, 2019)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헤엄, 2019)

<부지런한 사랑>(문학동네, 2020)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문학동네, 2021)

<창작과 농담>(헤엄, 2021)

<새 마음으로>(헤엄, 2021)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논픽션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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