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개관한 ‘사유의 방’이 화제다.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된 공간이 왜 화제가 될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마다 이곳에서 촬영한 사진, 박물관에서 판매하는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모형)가 ‘공간 방문 인증’인 양 올라온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2022년 1월 말에 ‘사유의 방’을 찾았다는 소식도 회자한다.
‘사유의 방’의 핵심은 건축이다. 학예연구사의 연구·기획과 더불어 반가사유상의 새로운 거처를 설계한 이는 건축가 최욱이다. 전시 공간은 전체적으로 1도가량 기울어진 낮은 언덕의 형태다. 전시된 반가사유상을 향해 걷는 것은 실제로는 접하기 어려운 낮은 경사도의 땅을 올라가는 듯 느껴졌다. 천장의 기울기는 바닥과는 반대다. 출입구 쪽 천장이 더 높게 설계되고, 공간 안쪽의 천장이 더 낮다. 전시장에서 만난 국립중앙박물관의 안내 담당 직원은 “소실점이 일치하듯 일치하지 않는 듯한 공간이 되기를 목표했다”는 건축가의 말을 전했다.
벽은 황토인데 빛을 잘 흡수해 암실 느낌을 준다. 전남 해남에서 온 황토, 계피, 숯이 반원형의 공간을 채운다. 천장도 반가사유상의 ‘방’을 위해 새로 설계됐다. 천장에는 2만1천 개의 알루미늄 봉이 달렸다. 여기에는 조명이 빛난다. 어린아이들도 천장의 조명이 ‘우주의 별’을 닮았다고 느낄 법하다.
‘사유의 방’에서 관객이 새롭게 보는 모든 것은 ‘배경’에 관한 것이다. 즉, 반가사유상 두 점이라는 작품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배경이 반가사유상을 압도한다. 반가사유상의 뒷모습까지 직접 걸어서 돌아가며 볼 수 있도록, 반가사유상이 유리 프레임 없이 전시됐다. 다양한 전시의 공간 디자인을 맡아온 김동희 미술작가는 “공간을 휘어잡은 설치”라고 말했다. “유물을 어떻게 동시대에 전시할 것인가는 여러 논점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공들인 공간 설계 자체로는 좋았다”고도 했다.
박물관 애호가이자 소장 역사학자인 황윤 작가(<일상이 고고학> 시리즈의 저자)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관객이 몰리는 현상에 대해 “하나의 사건이자 이벤트이자 홍보의 결과”라고 말했다. 한때는 텅 비어 있던 박물관에 줄 서서 들어가고 전시회 예약이 오픈되기를 기다리는 현상은, 코로나19에 따른 관객 수의 제한과 더불어 하나의 기현상이 됐다. 이 현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 컬렉션 전시 때부터 나타났다.
황윤 작가는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들에 대해 “내가 고대 유물을 보러 온 것인지 현대 설치미술을 보러 온 것인지, 공간 자체에 대한 생경감이 들지 않냐. 한마디로 ‘전시가 묘하다’”고 표현했다. 이 ‘특별해 보이는’ 공간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며 관객은 화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화제는 물론 전시 방식의 변모와 함께 간다.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한 중앙박물관이 이젠 관객에게 ‘여기 가면 전시 볼만하다’는 신뢰를 얻고 있는 듯하다. 용산으로 이전할 때만 해도 ‘여길 뭐로 어떻게 채우나, 공간이 너무 크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물을 현대 작품처럼 전시하는 것은 전세계적 경향”이며, 이는 “스토리텔링, 즉 별 볼 일 없어 보였던 하나에 힘을 부여하는 방식”과 연관된다는 설명을 황윤 작가는 덧붙였다.
‘사유의 방’에 위치한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각각 6세기 백제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반가사유상(국보 제78호)과 제작 시기를 7세기 신라시대로 추정하는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이다. ‘사유의 방’ 왼쪽에 앉은 국보 제78호가 제83호보다 조금 작다. 한 점의 높이는 81.5㎝, 다른 한 점은 90.8㎝인데, 제83호의 무게가 80㎏ 이상 무겁다.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은 화려한 주름이 드리워진 옷을 걸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홍보물의 설명에 따르면 ‘날카로운 콧대와 또렷한 눈매’를 가졌다. 오른쪽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에, 무릎에 올린 한쪽 ‘발가락에 좀더 힘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439㎡ 크기의 독립된 이 공간에선 반가사유상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원형 좌대가 있는 공간 입구의 긴 복도에서 영상이 하나 상영되는데, 그 영상의 소리가 공간을 타고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쪽으로 넘어온다. ‘사유의 방’ 입구 벽에 있는 정보무늬(QR코드) 안내 표시를 지나오면, 긴 복도(세어보니 서른 발걸음)가 있다. 복도 왼쪽으로 지리산을 근접 촬영한 영상이 흐른다.
8살 아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본 김유진(40)씨는 “재개장한 어린이박물관의 공간은 천천히 움직이는 조명을 배치한 것이 신선했다. 방학을 맞은 아이와 같이 보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사유의 방’은 아쉽게도 ‘사람 많은 것’만 보고 간다”고 말했다.
필자도 주말과 평일 다른 시간에 두 차례 ‘사유의 방’을 찾았다. 주말에는 관객의 뒷모습만 주로 보였는데, 평일 오전 10시에는 공간 뒤쪽으로 걸어 들어가 반가사유상의 다소 평평한 등, 뒷모습을 천천히 볼 수 있었다. 인파가 가득한 주말 ‘사유의 방’의 주인공이 휴대전화 카메라의 ‘찰칵’ 소리였다면, 평일 오전 ‘사유의 방’은 ‘빈 공간’이 주인공이었다.
2004년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경복궁 시대 마지막 특별공개전에서도 두 점의 반가사유상이 함께 전시됐다. 불교조각실에서였다. 당시 전시를 본 황윤 작가는 “그때만 해도 박물관에서 사진 촬영이 제한됐는데 (그 전시회는) 사진 찍을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몰렸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쪽은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라고 ‘사유의 방’을 안내했지만, 관객이 많을 때는 그런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공간의 좌우가 기울어졌나? 동굴 비슷한 이 공간 안에는 무엇이 있지? 관객은 호기심과 반가움 그리고 사람이 많아서 ‘지금 제대로 보이지 않음’을 사진 촬영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사유의 방’을 나와서 뮤지엄숍에 들러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산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뿐 아니라 ‘어몽어스’ 캐릭터를 닮은 방향제도 나왔다. 미니어처 반가사유상은 핑크, 보라 등 파스텔 톤으로 ‘상큼미’가 폭발하는 뮤직비디오의 배경색처럼 보인다.
‘보인다’는 것은 ‘사유의 방’뿐 아니라 오늘날 유물을 전시할 때 정보와 지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관계된다. 반가사유상에 대한 모든 정보는 전시장 입구에 배치된 QR코드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전시장 안에는 팻말과 설명 문구가 없다. 이때 박물관에 들어온 모든 관객은 ‘스마트폰을 든 개인’으로 상정된다. 읽고 연결짓는 관객이 아니라, 잘 구현된 어떤 공간에 놓인 개인이다. 반가사유상에 관한 팻말 또는 텍스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이 공간 안의 반가사유상은 그냥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소극장 무대에 앉아 있는 배우 같다. 관객은 설명 없는 유물을 감각한다. 그리고 촬영하며 ‘연출된 맥락’을 경험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2년 3월6일까지 열리는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에서도 과감한 고미술품의 설치 방식을 ‘경험’할 수 있다. 전시는 조선의 승려 장인들이 만든 작품뿐 아니라,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조선시대 사찰, 제작자에서 기획자를 오가는 조선 승려 장인들의 모습을 다각도로 보여준다. 수백 년 전 승려 장인들이 만든 작품을 보다보면 눈이 황홀해진다.
입체적인 작품 설치 방식과 맞물려 전시 작품에 대한 연구는 승려 장인의 분업 체계, 목조 불상의 내부 구조 등 당시 맥락과 재료 형식 등을 꿰뚫는다. ‘불화들이 잠시 산사를 떠나 전시장을 찾게 되었다’는 전시 도록 발간사의 한 문장처럼, 불화들은 여러 사찰과 박물관 등에서 건너와 전시장의 여러 요소와 동시에 보이게 됐다. 3차원(3D) 영상, 이부록 작가의 일러스트 등이 전시 공간 곳곳에 불화와 함께한다. 전시장 끝부분 ‘설치미술가 빠키(VAKKI)’가 디자인한 공간에 있는 일곱 점의 불상은 ‘사유의 방’에 기거하는 두 반가사유상과는 다르게, 과잉된 색과 형태 속에 배치돼 있다. 마치 금색이 이기나 인공적 색채가 이기나 대결하듯이 말이다.
이것은 비단 2022년 국립중앙박물관 한 곳의 설치 실험이 아니다. 201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던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에서도 미술가 김승영과의 협업으로, 전시장은 하나의 ‘설치 무대’와 같이 조성됐다. 2021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안녕, 모란’ 전시 또한 유물과 ‘연출된 배경’이 만났다. 전시는 조선 왕실에서 모란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인식하고 향유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 전시장에는 19세기 허련의 모란을 그린 화첩, 남계우가 그린 모란과 나비 진품 등이 가득했다. 그러나 실제로 공간을 ‘가득’ 채웠던 것은 작품이 아니라 모란의 이미지였다. 프로젝터로 바닥에 전면 투사된 모란의 이미지를 전시장을 찾은 어른, 아이 모두가 밟으며 걸어갔기 때문이다. 유리창에 모란을 그린 가마, 모란이 그려진 방석, 비단과 백통(구리와 니켈의 합금), 진주로 만들어진 모란 무늬의 부채 등 조선시대에 실재했던 사물을 뛰어넘어 모란의 이미지 자체가 관객의 인상을 지배했다.
이러한 전시장의 분위기,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이미지, QR코드 그리고 미니어처…. 과거에 있는 것들을 내 눈앞으로 당겨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압도하는 배경이 만들어내는 진취적인 ‘현재’를 뚫고 반가사유상의 미소나 연꽃의 잎은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박물관은 평일 오전 시간대에 가야 한다는 점이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시청각 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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