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세계 사무실 노동자의 40%가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2019년 한국의 19~59살 성인에게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6명(59.5%)이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메신저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류는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은 어느 때보다 외로움과 고립감을 호소한다.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그 실태와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안한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주변의 애정과 친밀감을 잃은 내면적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동료 시민, 고용주, 마을 공동체, 정부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정치적·경제적 배제와 단절이라는 실존적 상태를 말한다. 미국에선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메디케어(공공의료보험) 지출이 연간 70억달러(약 8조2900억원)에 이른다. 외로움은 “전세계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추기며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토양이 된다. 외로움이 정신건강의 위기일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위기인 이유다.
지은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지위가 급락한 미국 테네시주 동부 탄광 철도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던 그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주변화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앞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 삼는다. (…) 나치즘 추종자들의 주요 특성은 야만과 퇴보가 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라고 갈파했다.
거의 온종일 사용자를 ‘온라인’ 상태로 연결해주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실은 “고립된 ‘디지털 고치’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어 풍부한 직접 상호작용의 기회를 차단할 뿐 아니라, 세계를 더 적대적으로, 덜 공감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한국의 ‘먹방’ 유튜버 구독자들은 컴퓨터를 보며 ‘혼밥’의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성 경험을 시뮬레이션”한다. 최소한의 소통조차 ‘별풍선’과 ‘좋아요’ 같은 대가를 지급하는 현실은 외로운 세기의 우울한 단면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인간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심화했으며, 연대·공동체·더불어살기의 가치를 주변부로 밀어내거나 말살했다. “자본주의가 돌봄과 조화를 이루려면 경제에 사회정의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확실하게 제공하고 불평등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다.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무심한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배역을 바꿔야 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갈무리 펴냄, 1만7천원
미국 역사학자가 15~18세기 유럽의 범선들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던 대항해 시대, 일반 선원과 노예, 해적, 그 밖의 여러 무법자가 역사를 만들어간 힘을 보여준다. 바다는 상품·사람·생각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현장이자, 자본 축적의 혈맥이었으며, 계급과 인종이 태동된 곳이었다.
이철 지음, 움직이는책 펴냄, 2만1천원
동양고전과 현대물리학을 천착해온 독립연구자가 노자·공자·손자·장자·중용·주역 등을 ‘맞얽힘’이라는 열쇳말로 재해석한다. 양자역학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상보성의 원리’로 설명하는 것에 착안해, 음양·도·괘효사 같은 동양적 사유의 틀과 서양 세계관의 접목을 시도했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열린책들 펴냄, 2만2천원
독일 철학자인 지은이가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2017), <나는 뇌가 아니다> (2018)에 이어 쓴 인간 본질 탐구 3부작의 완결편. 인간의 생각은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감각임을 논증한다. 인간의 사유는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차현지 지음, 다산책방 펴냄, 1만5천원
여성을 재단하고 가늠하는 사회의 시선이 어떻게 여성의 존재를 갉아먹고, 학대하고, 부정하는지 촘촘하게 담아낸 차현지 작가의 첫 소설집.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내는 폭력·범죄·공포·우울 속에서 몸부림치거나 침잠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끝끝내 연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영하 11도 속 헌재로 간 30만명 외침…“상식적 판단 믿습니다”
현실의 응시자, 정아은 작가 별세…향년 49
홍시·곶감 줄이고 식후 1~2시간 뒤 섭취 [건강한겨레]
전국서 “윤석열 구속” “국힘 해체”…탄핵 가결 뒤 첫 주말 집회
퇴임 한 달 남은 바이든, 대만에 8300억원 규모 군사 원조
찬 공기 달군 “윤석열 파면하라”…행인들 함께 외치며 ‘폰 불빛’ [포토]
‘시간 끄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염치·양심에 배짱도 없다” [공덕포차]
커피 애호가 몸엔 이 박테리아 8배 많아…카페인 때문은 아니다
‘계엄 모의’ 무속인 노상원 점집…소주 더미에 술 절은 쓰레기봉투
계엄 당일 ‘2차 롯데리아 회동’ 의혹 전직 육군 대령 구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