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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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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지지 바탕에 ‘외로움’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인간관계를 거래로 바꾼 결과, <고립의 시대>
등록 2021-11-23 15:57 수정 2021-11-24 02:10

2018년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전세계 사무실 노동자의 40%가 ‘직장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2019년 한국의 19~59살 성인에게 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6명(59.5%)이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메신저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류는 초연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현대인은 어느 때보다 외로움과 고립감을 호소한다.

영국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홍정인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그 실태와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안한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주변의 애정과 친밀감을 잃은 내면적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동료 시민, 고용주, 마을 공동체, 정부로부터 지지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정치적·경제적 배제와 단절이라는 실존적 상태를 말한다. 미국에선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메디케어(공공의료보험) 지출이 연간 70억달러(약 8조2900억원)에 이른다. 외로움은 “전세계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극단주의를 부추기며 우파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토양이 된다. 외로움이 정신건강의 위기일 뿐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위기인 이유다.

지은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지위가 급락한 미국 테네시주 동부 탄광 철도 노동자들을 심층 인터뷰했다.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자였던 그들이 도널드 트럼프의 열성 지지자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주변화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앞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1951)에서 “전체주의는 외로움을 기반으로 삼는다. (…) 나치즘 추종자들의 주요 특성은 야만과 퇴보가 아닌 고립과 정상적 사회관계의 결여”라고 갈파했다.

거의 온종일 사용자를 ‘온라인’ 상태로 연결해주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실은 “고립된 ‘디지털 고치’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어 풍부한 직접 상호작용의 기회를 차단할 뿐 아니라, 세계를 더 적대적으로, 덜 공감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한국의 ‘먹방’ 유튜버 구독자들은 컴퓨터를 보며 ‘혼밥’의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성 경험을 시뮬레이션”한다. 최소한의 소통조차 ‘별풍선’과 ‘좋아요’ 같은 대가를 지급하는 현실은 외로운 세기의 우울한 단면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지난 40년간 인간관계를 거래로 변질시키고, 시민에게 소비자라는 배역을 맡기고, 소득과 부의 격차를 심화했으며, 연대·공동체·더불어살기의 가치를 주변부로 밀어내거나 말살했다. “자본주의가 돌봄과 조화를 이루려면 경제에 사회정의를 다시 연결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확실하게 제공하고 불평등을 제대로 다뤄야 한다.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다. “소비자에서 시민으로, 받는 사람에서 주는 사람으로, 무심한 관찰자에서 적극적인 참여자로” 배역을 바꿔야 한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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