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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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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똑바로 서보아요

지금 그대로의 몸을 긍정하며, 가장 지치기 쉬운 시간 오후 네시에 함께하는 특별한 요가
등록 2021-10-06 10:50 수정 2021-10-07 00:36
(왼쪽부터) 규리, 나영, 넝쿨 세 사람이 ‘오후 네시의 요가’ 유튜브 채널에서 비라바드라아사나(전사 자세)를 취해 보이고 있다. 박승화 기자

(왼쪽부터) 규리, 나영, 넝쿨 세 사람이 ‘오후 네시의 요가’ 유튜브 채널에서 비라바드라아사나(전사 자세)를 취해 보이고 있다. 박승화 기자

나영 ‘성적 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2000년대 초반 요가를 처음 접했다. 학생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모두 잃은 뒤였다. 처음엔 2~3년 단위로 수련하다 말다를 반복하다, 2015년 즈음부터 “먼 곳에 여행 가도 현지 요가원을 꼭 찾는” 진지한 요가 수련자가 됐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요가원을 자주 찾을 수 없었다. 나영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퀴어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치솟는 분노를 혼자 삭이기 어려운 날이면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요가 번개’를 쳤다. 줌에 접속한 다른 친구들에게 요가 동작과 호흡을 안내했다. 이를 눈여겨본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다큐멘터리 감독이 제안해, 2021년 9월 초 유튜브 ‘연분홍TV’ 채널에서 ‘오후 네시의 요가’(오네요)를 열었다. 일을 하다 가장 지치기 쉬운 시간에 한 번씩 따라 해보라는 바람을 담아 이름에 ‘오후 네시’를 넣었다.

탄탄한 몸 대신 뻣뻣하고 뱃살 가득한 몸

‘오네요’는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방영된다. 나영이 요가 선생님으로, 연분홍치마 소속 다큐멘터리 감독 겸 활동가 규리와 넝쿨이 학생으로 매트 위에 선다. 규리와 넝쿨은 살면서 요가라고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들이다. ‘오네요’는 퀴어 페미니스트 여성의 몸을 주제로 한 가벼운 수다와 나영의 지도에 따른 요가 수업,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영상 구도는 꼭 1990년대 유행한 다이어트 비디오 같지만”(넝쿨), 이미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가진 이가 출연해 완성된 자세를 보여주는 여느 요가 영상과 다른 점이 많다.

규리는 언뜻 “필라테스 강사 같은”(나영) 군살 없는 외모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무릎 뒤쪽 근육이 다른 사람들보다 뻣뻣한 편이다. 상체를 앞으로 숙이는 전굴 동작이 어렵다. 넝쿨은 ‘평균’보다 뱃살이 넉넉하다. 바닥에 누운 채 무릎을 가슴 가까이 가져가 안으며 온몸을 이완하는 숩타파완묵타아사나(바람 빼기 자세)처럼 복부와 허벅지 사이를 좁게 붙여내는 동작마다 뱃살이 걸림돌이 된다. ‘오네요’에서는 출연자 간 솔직한 대화와 유머러스한 자막을 통해, 완전하지 않은 몸에 대한 긍정을 끊임없이 유도한다.

흔히 요가는 “‘여자들이나 하는 운동’으로 여겨진다”.(나영) 요즘 들어서야 요가원을 찾는 남성이 늘어나긴 했지만, 요가 수련 한다고 하면 그게 운동이 되느냐는 깎아내림이 여전히 흔하다. 하지만 두 발을 가지런히 모아 선 채 배에 힘을 줘 허리를 곧게 펴는 ‘타다아사나’나 강아지가 기지개를 켜듯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엉덩이를 높이 들어올리는 ‘아도묵하스바나아사나’만 해봐도, 사정없이 흔들리는 스스로의 팔다리에 깜짝 놀랄 확률이 크다.

“오래된 요가 경전 대부분이 구루(지도자)와 제자 모두 남성이라는 전제 아래 쓰였어요. ‘일반적인 몸’을 이루는 특정한 기준을 정해두고, 그걸 완벽히 해내는 몸일 때만 ‘요가를 잘한다’고 보는 고정관념을 바꿔가고 싶어요.”(나영)

몸이 드러나는 요가복을 입는 이유

9월3일 방영한 ‘오네요’ 첫 에피소드 주제는 ‘똑바로 서보아요’다. 타다아사나(산 자세)부터 아도묵하스바나아사나(견상 자세), 단다아사나(막대 자세), 발라아사나(아기 자세), 파스치모타나아사나(앉은 전굴 자세), 사바아사나(송장 자세)까지. 요가 수련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여섯 가지 자세를 따라 하며 “일하고 활동하면서 얼마나 몸과 마음을 잘 돌보지 못했는지”(규리) 알아차려 나간다. 장애 여부를 비롯해 저마다 가진 신체 조건에 따라 ‘똑바로 선다는 것’의 기준조차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않는다.

수련을 꾸준히 하다보면 “호흡과 동작이 자연스레 맞물리며 내면 깊은 곳에서 어떤 감정이 올라올 때”(나영)가 있다. 요가를 단순히 몸만 움직이는 운동이 아닌 마음까지 조절하는 ‘수련’이라 칭하는 이유다. “실제로 요가 경전에도 보면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고 써 있어요. 완벽하게 동작을 해내는 걸 목표 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내 몸의 고유한 생김새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함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경지가 목표라는 거죠.”(나영)

“내가 어떤 사람이더라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함께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 그래서 ‘저 요가원 한번 가보고 싶네’ 하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는 넝쿨의 바람처럼 ‘오네요’를 시청하는 이들은 정확히 이 지점에 반응한다.

나영은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호흡하며 움직이는 스스로의 신체를 직시할 것을 권한다. 이를 위해 뱃살을 시원하게 드러내는 브라톱과 다리근육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레깅스처럼, 성적으로 지나치게 대상화된 ‘전형적인 요가복’을 입어볼 필요도 있다고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이 같은 메시지는 자칫 최근 페미니즘 진영의 ‘탈코르셋’ 흐름에 역행하는 거로 오해될 수 있다. 집에서 혼자 수련할 때라도 이런 경험을 가져보는 건 “내 몸을 편견 없이 바라보기 위해”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요가를 10년 넘게 수련한 나영에게조차 적나라한 배의 주름을 마주 보는 일은 여전히 민망하다.

“어쨌든 이런 나도 요가를 한다는 걸 SNS에 올리고 나니, 그걸 공유한 행위 자체가 내 몸을 다시 보게 해줬어요. 예전엔 안 보려 하고 감추려 한 뱃살을 지금은 내놓고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접히는지 보게 되는 것 같아요.”(나영)

“‘내 평생의 움직임, 요가!’ 이런 느낌보다는”(넝쿨), 시청자가 “늘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일이나 활동에 붙들려”(나영) 숨조차 꾹 참을 때가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이따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시간을 내보는 게 ‘오네요’ 팀의 목표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들에 쫓겨 다니느라 정작 내 몸이 망가지고 나면 지속가능한 운동이 불가능하잖아요.”(나영)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시간

다만 “몸을 단련하거나 휴식을 위해 따로 시간 내는 게 여전히 사치처럼 느껴지는 사회에서”(규리), “자기 돌봄마저 개인이 알아서 완벽하게 잘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주지 않기 위해 주의한다”(나영)고 ‘오네요’ 팀은 말했다.

정인선 <코인데스크코리아> 기자

‘오후 네시의 요가’(오네요) 첫 방송이 옵니다.
https://youtu.be/A-uGhOSj-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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