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은 코로 여러 기운을 느끼는 동네다. 바람도 냄새가 있고 잡초도 향기가 있다고 한다. 아파트가 고향인 나는 그 기운을 대체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지만 ‘계분’은 아니었다. 확실하다. 이른 봄, 계분 냄새는 시골의 거의 모든 것이다. 봄의 시골은 온통 계분으로 덮인다. 그런데 그 냄새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확실히 도시에선 이제 못 맡는 냄새인데 단순히 똥내라고 하면 그 깊음이 다 전달되지 않는 기분이다. 똥군내보단 깊은, 시큼하고 퀴퀴한데 악취라고 하기엔 향이 복합적인. 여튼 강렬한 계분 냄새가 코를 찔러오면 절로 고개가 돌아가고 띵하니 머리까지 아파진다.
농달(지난 내용 참조)의 도움으로 밭에 계분을 엎었다. ‘반차’만 했음에도 남았다. 친절하게도 농달은 남은 계분을 밭 입구에 수북하게 남겨줬다. 툭 치면 우수수 파리떼가 떨어질 듯 흉악하고 고약했다. ‘이왕 뿌릴 것 다 뿌려주지 왜 남겼지’ 하는데 6살 아이가 물었다. “아빠 근데 계분이 뭐야?” “어, 닭똥이야.” 아이는 냄새를 맡고도 가만있더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웩”을 외쳤다. 너도 나 같구나, 닮았구나. 아파트가 고향인 6살 아이는 냄새 감각이 아니라 언어 감각으로 시골을 느꼈다.
계분은 무엇인가. 농달에게 당한 수모(!)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계분은 ‘풍부한 유기물질을 함유한 우수한 유기비료 자원’이다. 산란계냐 육계냐에 따라 함유량은 다르지만 질소·인·칼륨·산화마그네슘이 두루 포함돼 있어 토양의 비옥도, 구조, 지속성을 강화한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토양이 빨리 굳어지지만 유기비료를 쓰면 비료의 효과가 오래 유지된다고도 했다. ‘이것이 농달이 말한 땅심이군.’
장모님은 계분을 엎었음에도 화학비료를 더 뿌리자고 했다. 그래야 하는가, 땅심이 생긴 것이 아닌가. 유기농과 무농약에 아무런 신념이 없던 나는 다만 어떤 비료를 뿌려야 하는지 모르는 것만이 애통했다. 땅을 알아야 농사를 짓고, 농사를 알아야 비료를 살 텐데, 정말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왕지사 계분으로 맺은 인연, 화학비료까지 쭉 이어가기로 했다. 밭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농달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삼춘 계분 남은 것 엎어놨으니, 필요한 데 더 뿌려.” 네, 근데 화학비료는 뭘 써야 하나요. “뭘 심을지를 먼저 정해야지. 난 집에 있는 것 쓰는데, 저기 일동 시내 농협 가면 다 알려줘. 거기서 사면 돼.” 농달이 말한 시내 농협은 농자재센터였다. 농사일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철에 맞는 각종 씨앗, 모종을 판매한다. 오가다 봤을 땐, 하나로마트 옆 큰 창고인가 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아니었다. 거긴 농업 유토피아였다. 없는 게 없다. 직원은 일대일로 친절하고 박식하게 맞춤 상담해줬다. 그 전문성에 탄복하며 그동안 농협 하면 ‘조합장 부정, 조직적 비리, 중앙회 개혁’ 이런 단어만 떠올렸던 것을 반성했다. 농협이 왜 ‘농업 농촌의 가치를 지킨다’는 상투적 문장을 광고 문구로 쓰는지, 그것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마음으로 이해했다. 나는 농사를 첨 짓는데 화학비료를 사러 왔다고 했다. 농자재센터 직원은 바로 “계분은 뿌리셨냐”고 물었다. 여기서도 또 계분이구나. 뿌린 밭과 안 뿌린 밭의 차이가 얼마나 대단한 것이기에 이렇게 온통 계분뿐인가.
글·사진 김완 <한겨레>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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