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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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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뽑다 ‘열사’ 되는 건가

‘화학농약·화학비료·비닐’ 밭에 들이지 않는 3무 농사의 철학을 지키며
등록 2021-07-26 01:57 수정 2021-07-27 00:10
비닐을 깔지 않은데다 농군이 게으르기까지 해 밭에 풀이 수북하다.

비닐을 깔지 않은데다 농군이 게으르기까지 해 밭에 풀이 수북하다.

얼치기 초보 농군에 불과한 내가 처음 밭을 일굴 때 나름의 농사철학 비슷하게 다짐한 게 하나 있다. 소출이 좋은 농부는 못 될지언정 땅심을 죽이는 농부는 되지 말자. 전북 부안 변산에서 농사짓고 사는 철학자 윤구병 선생의 책을 몇 권 읽고 생긴 생각인데, ‘아는 것을 행하라’는 게 옛사람들의 가르침 아니던가.

그래서 내가 밭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세 가지가 있다. 화학농약, 화학비료, 비닐이다. 먼저 공장에서 만든 농약은 일절 쓰지 않는다. 농약은 해충이 작물을 유린하는 일은 막아주지만 땅을 병들게 한다. 관행농의 병든 땅에서 난 작물을 먹고 싶지 않아 시작한 농사인데, 나마저 그럴 순 없다. 농사 첫해 세종시농업기술센터에서 내 밭의 흙 성분을 분석한 결과 “토질이 다소 산성이나 잔류 농약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 가슴을 쓸어내린 적 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마다 운영하는 농업기술센터가 있는데, 이곳에 밭흙을 한 삽 정도 퍼다 의뢰하면 땅 상태를 친절히 분석해준다. 여기서 중요한 팁은 공짜라는 거다! 나는 대신 은행잎과 자리공 등을 솥단지에 넣고 끓여 나만의 자연 살충제를 만들어 쓰는데, 사실 효과가 좋은지는 모르겠다.

화학비료도 땅을 망친다. 화학비료 자체가 인체에 유해하진 않다고 한다. 하지만 유기질이 풍부해야 할 땅을 무기질 덩어리로 만든다. 게다가 농부를 게으르게 만든다. 조금만 뿌려도 작물이 쑥쑥 크는 탓에 농군이 땅심을 살리는 유기질 퇴비를 넣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한다. 내가 요리할 때 웬만하면 화학조미료(MSG)를 넣지 않으려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화학조미료도 인체 유해성이 증명된 적은 없다. 다만 자꾸 쓰다보면 재료와 양념만으로 음식 맛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공들여 심은 배추나 무의 여린 이파리를 나방 유충이나 벼룩잎벌레(이른바 톡톡이) 같은 놈들이 야금야금 뜯어 먹는 꼴을 볼 때면 질소비료 팍팍 뿌려 순식간에 근육질 뿜뿜 하는 성체로 키우고픈 유혹이 들지만, 참는다. 대신 봄에 동네 주민한테 부탁해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기 전 유기질 퇴비를 사다 뿌려준다. 모종을 심은 뒤에는 충분히 썩은 상태로 파는 부숙 유기질 퇴비를 넣어준다. 덜 썩은 퇴비를 뿌리면 그게 썩는 과정에서 작물의 뿌리나 줄기가 함께 썩어 농사를 망친다.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얼치기 농군’이라 놀릴 때 들이대는 가장 큰 근거는, 바로 비닐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이다. 이 나라 어딜 가나 밭의 이랑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게 비닐이다. 흔히들 ‘멀칭’이란 이름으로 비닐을 깐다. 그 마음 나도 안다.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 그놈의 지긋지긋한 잡초와의 전쟁에 시달리다보면, 나도 깔끔하게 비닐 깔고 구멍 뽕뽕 내어 그 자리에 내가 먹고 싶은 작물만 예쁘게 키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쓰고 난 비닐을 어찌할 건가. 그거 다 태우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 역대 최고 폭염이니 홍수니 하며 기후위기에 온 누리가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데, 나마저 돌을 얹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땡볕에 삐질삐질 땀 흘리며 풀을 뽑을라치면 ‘이게 사는 건가’ ‘이러다 열사 되는 건가’ 싶다가도, 이런 자부심에 ‘얼치기 농군’ 소리 들으면서도 호미질을 한다. 팍~팍~.

글·사진 전종휘 <한겨레> 사회에디터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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