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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보살피는 만화가들의 상상력

지역을 소재로 한 단편만화 시리즈 <지역의 사생활 99> 1차분
등록 2021-07-10 09:01 수정 2021-07-12 02:29

“이 물속에 잠든 엄마의 이야기. 우리들은 항상 순서에서 밀리겠지. 왜냐하면 우리는 서울 사람이 아니니까.”(‘가만히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 충북 단양 편, 불키드)

100쪽 내외의 지역을 소재로 한 단편만화를 펴내는 <지역의 사생활 99>가 1차분 9권의 출판을 완료했다. 전북 군산을 기반으로 하는 독립만화 출판사 삐약삐약출판사가 펴내고 있다. 두 명의 만화가 불키드(김영석)와 불친(전정미)이 공동대표로, 9권의 책 중 불키드는 충북 단양 편을, 불친은 전북 군산 편 ‘해망굴 도깨비’를 그렸다. 그 외 7권은 강원도 고성(‘알프스 스키장’, 이하 괄호 속은 제목), 전남 담양(‘1-41’), 충북 충주(‘여름방학의 끝에서’), 충남 공주(‘4공주’), 부산시(‘비와 유영’), 광주시(‘용도락: 광주 식도락 투어’), 대구시(‘달구벌 방랑’)를 소재로 한다.

지역은 ‘쓸쓸한’ 이미지로 이어진다. “2016년 겨울, 알프스 스키장에서 우린 망했고 알프스 스키장도 함께 망했다.”(알프스 스키장) 앞 단양 편 이야기는 다음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엄마와 나는 여자니까. 왜냐하면 엄마는 장녀니까. 왜냐하면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가장 약자가 물속으로 또 가라앉겠지.” 지역을 보살피는 만화들은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이 많다. ‘달구벌 방랑’은 대학에서 만난 레즈비언 커플의 대구 동거기이다.

장르와 소재 모두 지역만큼 다양한데 ‘상상력’은 공통적으로 순도가 높다. ‘비와 유영’에서는 쇼핑백 플라스틱 손잡이에 목이 걸린 부산 사투리를 쓰는 인어를 만난다. ‘용도락’에서는 인간 세계에 내려와 택배업을 하는 용을 소재로 했다. 광고 문구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단 20분”. ‘해망굴 도깨비’는 군산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현재와 연결한다. 단양 편에선 시멘트 공장을 우주선 발사대로 상상하고, 물에 잠긴 단양과 2040년 미래의 물에 잠긴 지구를 연결한다.

시리즈는 수도권에 살던 두 대표가 지역에 정착하면서 느낀 문화적 격차에 대한 실감을 기획력 삼아 진행됐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는 곳을 다룬 만화가 없다는 상황이 의지에 불 질렀다. 김영석 대표는 “2010년 이후 인터넷의 발전으로 더 이상 만화가나 만화종사자가 수도권에서 꼭 살아야 할 필요가 없어진” 시대라며, 지역 관광자원이 좀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을 인터뷰에서 피력했다. “콘텐츠로 소화할 인재와 회사가 부족할 뿐, 각 지역은 수도권에 뒤지지 않는 콘텐츠 자원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다양성만화제작지원사업’에 선정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텀블벅에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후원자 792명의 도움을 받았다. 현재 2022년 발간을 목표를 9권씩 묶이는 2~3시즌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의 독립서점과 독립만화 전문 플랫폼 ‘사이드B’(SIDEB),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판매한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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