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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 관한 일기

기자 3인의 일기 쓰기 두 달 체험기… 조회수는 0, 효능감은 100!
등록 2021-06-12 15:29 수정 2021-06-16 02:13
고양이가 그려진 2021년 다이어리는 ‘알라딘’에서 책을 사고 받았다. 일기를 쓰기 어려운 날이면 스쳐가는 생각이나 감정이라도 그때그때 쓰고 싶어 재활용 브랜드 ‘프라이탁’에서 작은 메모장을 하나 사서 들고 다니기로 했다. 아직 ‘메모’가 습관이 안 들었지만, 들고 다니다보면 뭐라도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박다해 기자

고양이가 그려진 2021년 다이어리는 ‘알라딘’에서 책을 사고 받았다. 일기를 쓰기 어려운 날이면 스쳐가는 생각이나 감정이라도 그때그때 쓰고 싶어 재활용 브랜드 ‘프라이탁’에서 작은 메모장을 하나 사서 들고 다니기로 했다. 아직 ‘메모’가 습관이 안 들었지만, 들고 다니다보면 뭐라도 쓰겠지 하는 마음으로. 박다해 기자

기획 ‘일기시대’란 시인 문보영의 에세이집 제목이다. 책 제목을 이렇게 붙이면서 문보영은 “한 번쯤 ‘일기가 내 애인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나보다”라고 이야기한다. “시 이야기를 하든, 소설 이야기를 하든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일기가 있”기에. 문보영의 문학적 행위는 모두 ‘일기’를 향해 수렴한다. 유튜브로 영상 일기를 쓰고(‘어느 시인의 브이로그’), 책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준최선의 롱런>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모두 블로그의 ‘일기’를 갈무리해 만들었고, ‘일기 딜리버리’라는 서비스를 한다. 괴테나 카프카 등 거장의 일기에서 문학이 탄생한 정도가 아니라 일기가 곧 문학이 됐다. 아래 글은 일기에서 시작해 ‘일기’로 수렴되는 여러 시도까지 아우르다 다시 문보영에게로 돌아오려 한다. 글은 기사에다 말하는 상투어인 “일기에나 쓰세요”의 ‘미러링’을 시도해봤다. 대놓고 일기처럼 써봤다. ‘일기시대’에 “일기에나 쓰세요”는 칭찬의 말이 될 것이기에. _편집자
‘일기 쓰기’ 챌린지를 처음 시작한 날 일기지만, 사실 첫날부터 못 써서 다음날 채워넣었음을 고백한다. 박다해 기자

‘일기 쓰기’ 챌린지를 처음 시작한 날 일기지만, 사실 첫날부터 못 써서 다음날 채워넣었음을 고백한다. 박다해 기자

무인도 같은 내 팬심 일기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일본 NTV, 2021년)의 리호코(아리무라 가스미)는 3명으로 이뤄진 개그그룹 맥베스의 팬이다. 놀이터에서도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열심히’ 하는 이들에게 매료돼 그들에게 ‘집착’하고 그들의 모든 것을 수집하는 ‘컬렉터’가 돼간다.

아참, 드라마는 호러물이 아니다. <나기의 휴식> <롱 베케이션> 같은 인생의 전환기를 다룬다. 회사를 그만두고 연인과도 헤어진 뒤 한 달을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쓰러져 지내던 리호코에게는 자신을 일으켜줄 것이 필요했다. 리호코는 팬이지만 아니 팬일 뿐이라서, 개그 목록과 멤버의 블로그와 멤버의 발언 등을 연도별로 꿰고 있지만, 인터넷에 오르지 않은 것이나 잡지 등에 기록되지 않은 것은 모른다는 ‘함정’이 있다. 그것이 팬의 운명이다. 나는 현실의 리호코이고, 맥베스 멤버 중 하나인 하루토를 연기하는 스다 마사키의 팬이다.

‘일기 쓰기’ 프로젝트가 주어지자, 바로 그때 열중하던 배우의 팬심 일기를 갖고 있던 계정의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쓰다 0401’이라고 처음 제목을 쓴 날 “일기라는 것은 나만 보면 되는 글이기에, 정확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그때의 감상이면 된다. 그대로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다”고 적어놓았다. 그 ‘완전하지 않은 글’들은 지금 보면 ‘뭐라는 거냐’ 싶다.

리호코처럼 될 리 만무하지만, 꽤 열심히 팬 활동을 했다. ‘필모 깨기’ 등 감상 위주의 팬 활동에 비해, 조직적이 됐다. 스다 마사키와 인물들 사이의 연관성(아리무라 가스미와는 여름 개봉하는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에 함께 출연했고, 리호코 동생 쓰무기 역의 후루카와 고토네와는 노래 <무지개>의 뮤직비디오에 같이 나왔다. 이 뮤직비디오의 감독은 출연 영화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오미보 감독이다) 등을 씨줄과 날줄로 엮(스다 마사키가 부른 <실>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다)는 일이 일기를 쓸 때 가능했다. 공개할 만한 수준은 안 되는 자기만족적인 글이고 그래서 (자기)만족스럽다. 태그도 없으니 인터넷 속에서 무인도처럼 떠 있다. ‘이번주에는 트래픽이 없지만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편집 페이지는 말한다. 읽는 사람이 0이다. 일기의 효능감이 100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일기장에 마음을 씁니다

“한 달 동안 일기 쓰기 해볼래?”라는 선배의 제안을 그야말로 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문 건, 언제나 ‘기록하는 사람’을 지향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뭐든 꼼꼼하게 기록하는 사람을 늘 부러워했다. 일기든, 독서나 영화·드라마를 본 기록이든, 건강을 위해 매일 식이나 운동 기록을 적어나가는 것이든 말이다.

매번 ‘나의 하루를 기록해둬야지’ 결심해도 늘 뭔가에 쫓기듯 허겁지겁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바빴다. 그렇게 살다보니 문득 지난 내 삶의 기억이 머릿속에 너무 뿌옇게 남았다는 걸 알아챘다. 덜컥 걱정됐다. 적어도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의 감정이나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만은 까먹고 싶진 않은데, 기록 없이 기억만으로 그것들을 온전히 돌아보기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선배와 약속했으니 강제로 시간을 내서 뭐라도 끄적이기 시작했다. 매일은 못 썼다. 이마저도 밀려 때때로 3~4일 치를 하루에 몰아서 쓰거나 아예 건너뛰는 날도 있었다. 처음엔 펜을 쥔 감각마저 어색했고, 오롯이 일기를 쓰기 위해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막상 시작해보니 마음속에서 두 질문이 생겨났다. 하나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 일기의 80% 이상은 단순하게 내가 오늘 뭘 했는지 기술하곤 했다. “누구를 만났고, 어디를 가서, 무엇을 먹었다. 참 즐거웠다”는 식. 너무 초등학생 같나? 어쩐지 약간 면구스러웠다. 두 번째 질문은 왜 쓰는가.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잊고 싶지 않은 것을 까먹기 전에 옮겨 적는 것.

조금씩 익숙해지다보니 발생한 사건보다 내 마음을, 기억보다 치유를 위해 쓰는 비율이 천천히 늘었다. 어릴 적 누구에게도 말 못할 이야기를 자물쇠가 달린 ‘비밀일기장’에 털어놨던 기억이 슬며시 떠올랐다. 이런 글쓰기엔 뚜렷한 장점이 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지나치기 쉬운 나의 감정과 마음 상태를 세심하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글자로 옮겨 적는 행위뿐 아니라 ‘무엇을 쓸까’ 고민하며 스스로를 살펴보는 과정이 그 자체로 힐링이 됐다.

아직은 ‘하루 동안 먹고 마신 것’을 기록한 비율이 높지만, 그래도 일기를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습관화하고 싶은 바람이 생겼다. 베란다에 놓아둔 커다란 ‘빈백’(beanbag) 소파를 아예 ‘일기 쓰기’ 전용 공간으로 삼기로 했다. 일기가 습관이 되면, 조그만 파동에도 출렁이는 마음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건지도 모르겠다.ㅎㅎ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내 감정을 긍정하는 무심한 일기

아이패드 맵시에 홀려 나는 지난 4월, 그냥 질러버렸다. 펜슬과 키보드까지 완전체로 사놓고 나서야 번뜩 떠올랐다. ‘뭐에 쓸 건데?’ 먼저 회의 때 메모해보기로 했다. 작동법이 익숙지 않아 자꾸 에러가 나고 회의 흐름이 끊겼다. ‘자랑만 하려 가져온 거냐’고 주변에서 놀려댔다. 이 맵시 좋은 친구와 친해질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글쓰기로 밥벌이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공부하려면 문구용품부터 장만하던 버릇을 못 버린 나는 일기 앱부터 쇼핑했다. 기분을 표시하는 이모티콘이 귀여운 ‘무다’(mooda)로 선택했다. 손글씨 같은 글씨체도 마음에 들었다. 아이패드 일기를 두 달째 쓰고 있다.

“슬픔이 가슴에 가득 차 있어서 작은 일에도 크게 마음이 상하고 눈물이 난다.”(4월18일)

“화는 남 때문에 내는 게 아니라 나 때문에 내는 거라는 말이 맞다. 요즘 나는 자꾸 화가 난다.”(5월24일)

“악몽이 많다. 무엇인가에 자꾸 쫓긴다. 내 마음이 급한가보다.”(6월5일)

사나흘 간격으로 쓴 일기를 살펴보니 부정적 단어가 넘쳤다. 기분을 표시하는 이모티콘 수도 ‘우울해’ ‘짜증나’ ‘걱정돼’가 ‘평온해’ ‘기분 최고!’와 엇비슷했다. 의외였다. 목소리 톤이 높고 웃음이 많아 ‘긍정의 아이콘’이라고들 얘기했는데, 나는 가면을 쓰고 살아온 것일까.

생각해보니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인색한 편이다. 더 정확히는 두려워한다. 혹시나 고삐 풀린 감정이 나를 집어삼킬까봐, 그래서 나를 무너뜨릴까봐 온 힘을 다해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술 마셔서 잠 못 드는 날, 꼼짝없이 붙잡혀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쌓인 감정이 터져나오는 것인데, 주변에서 보기엔 느닷없는 행동이었다. 그 당혹스러운 시선에 더 움츠러들고 더 꽁꽁 감추게 됐다.

그렇게 숨어버린 내 감정을 일기는 유난스럽지 않게 담아내고 있었다. 그 무심함에 마음이 놓여 나는 더 풀어헤쳐버릴 듯하다. 이제 목 놓아 우는 날이 없어지려나보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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