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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으로 남기 위하여

콘텐츠 유료화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
등록 2021-04-11 08:34 수정 2021-04-13 02:05
두 달 전 음악 산업에 관한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차우진

두 달 전 음악 산업에 관한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차우진

2020년 12월 음악 산업에 대한 뉴스레터(‘차우진의 TMI FM’)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오랜 고민 끝에 시작했는데, 다른 매체에 쓰기 어려운 주제의 글을 매우 길게 쓴다. 스포티파이,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빅히트, 지니뮤직 등에 대해 매우 긴 글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한 달 뒤 뉴스레터를 부분 유료로 바꿨다. 월 1만원의 구독료를 내면 매주 1회 자세한 업계 리포트를 보내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뉴스레터는 내게는 일종의 실험이다. 사람들은 보통 프리랜서를 ‘자유롭고 독립적인’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10년 넘게 겪어보니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의존적이고 자율적이지 않은 상태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하던 일이 끊기는 것 모두 의지대로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시간 관리뿐 아니라 생계와 지속가능성에서도 모두 그랬다. 그래서 프리랜서 칼럼니스트가 자기 매체, 혹은 채널을 가지는 방법에 고민이 많았다.

또 다른 이유는, 디지털 콘텐츠 시장이 조만간 유료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디지털 음악 서비스는 가장 오래된 구독 서비스다. 지금은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유튜브 같은 영상 서비스가 유료로 운영된다. 포맷별로 사운드, 비디오 콘텐츠가 유료 시장을 만들었다. 그럼 텍스트는? 리디북스, 밀리의서재, 퍼블리, 북저널리즘, 아웃스탠딩 같은 온라인 미디어가 월정액 구독 모델로 운영된다. 텍스트 콘텐츠 유료화는 어쩌면 시기적으로 가장 늦을 뿐 우리 코앞으로 바짝 다가온 것일지 모른다.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보면 이런 변화가 한창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 <포브스>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레거시(전통 언론)뿐 아니라 롤링스톤 매거진, 뉴요커, 그래미 매거진 등 다수 매거진도 유료로 운영된다. <디 인포메이션> 같은 신생 매체도 전액 유료로 운영된다. 어쩌면 앞으로 매체 환경은 20세기 신문 구독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다시 말해 텍스트 기반 콘텐츠가 유료화되는 것이 시간문제라면 가급적 빨리 시도해보는 것이 낫다. 그래야 실패하든 성공하든 뭐라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 나는 이게 지금 같은 ‘초연결 시대’에 가장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무료화돼 유통되는 지식 정보의 양과 깊이는 개인이 습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지금 디지털 환경은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돕는다. 만인의 크리에이터화. 소셜미디어가 제안하는 미래가 바로 이거다. 그 엄청난 데이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지식인의 ‘자산’이 이제까지 해온 공부의 깊이뿐 아니라 경험과 태도로 수렴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뉴스레터 유료화는 생각보다 잘 자리잡고 있다. 뉴스레터를 시작한 덕분에 인터뷰나 강연 요청도 늘었다. 그런데 나는 요즘 어떻게 하면 뉴스레터의 다음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공부하는 사람의 목표가 교수나 정치인이 아니라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듯, 내 목표 역시 ‘계속 쓰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뉴스레터란 결국, 오늘도 내일도 쓰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다. 그러니까 콘텐츠 유료화도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어야 한다. 나는 이 한없이 투명하고 연결된 세계에서 그런 과정에 집중하는 일을 훈련하고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과정에서의 경험만은 내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중년 프리랜서의 삶도 나쁘지 않다.

차우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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