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스포티파이에선 ‘EQUEL’이라는 제목의 특집 플레이리스트가 등장했다. 세계 각지의 여성 뮤지션을 소개하는 플레이리스트로 페미니즘, 아시안, 걸크러시 등의 주제로 다양한 음악을 소개했다. 걸크러시 부문에는 케이팝 여성 뮤지션의 음원으로 구성됐다. 청하, 레드벨벳, (여자)아이들 등의 음원이 소개됐는데 그중 ‘아뽀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음악가도 있었다.
아뽀키는 가상 아이돌이다. 말 그대로 컴퓨터그래픽으로 창조된 아티스트로 외형은 토끼다. 큰 귀와 꼬리가 특징인 아뽀키는 2019년부터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활동했다. 주로 케이팝 커버댄스, 먹방, 유튜브 라이브 등으로 팔로어를 모았다가 최근 <겟잇아웃>(Get It Out)이라는 오리지널 싱글을 발표하면서 정식 데뷔했다. <겟잇아웃>은 케이팝의 문법과 요소를 적극적으로 표방해, 뮤직비디오를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제작했다. 현재 유튜브 구독자 25만9천 명, 틱톡에선 210만 명의 팔로어를 모았다. 음악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 외모는 귀여운 토끼지만 행동이나 표정에선 굳이 애교를 드러내지 않는다. ‘여성’ ‘가상 캐릭터’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난다.
흥미로운 건 음악뿐 아니라 세계관이다. 아뽀키는 2020년 12월 말, 유튜브 라이브 중에 말 그대로 화면을 뛰쳐나갔다. 그 뒤를 쫓아간 카메라에 잡힌 건 우주선. 아뽀키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났다. 시청하던 구독자는 약간 당황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뽀키의 유튜브 채널은 한 달 가까이 아뽀키의 우주선 라이브를 보여줬다. 그러던 중 한 팬이 화면에 흐르는 모스부호에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해석했는데, 그 내용은 “인사도 없이 떠나서 미안. 여기서 달은 너무 멀다”였다. 달에 도착해 발신한 모스부호는 “화장실에 다녀올게…”.
팬들은 아뽀키가 가상 캐릭터라는 것도, 소속사 직원이 관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디테일한 설정이 가상 캐릭터와의 관계를 좁힌다. 아뽀키의 제작사는 VV엔터테인먼트다.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본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리얼타임 렌더링’(실시간 구현) 전문기업 에이펀인터렉티브의 자회사로 알려졌다.
에이펀인터렉티브는 자체 구축한 ‘리얼타임 버추얼(가상의) 스튜디오’에서 매주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아뽀키의 경우 2019년부터 단순히 온라인에 국한된 버추얼 유튜버가 아니라 실제 케이팝 스타를 목표로 개발됐다. 요즘 각광받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아이피(IP) 비즈니스의 일환이다. 테크놀로지는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현재 아뽀키 외에 여러 버추얼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 가상 연예인이 활동한다. 2021년 초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가 데뷔했고, 엘지(LG)전자는 ‘세계가전전시회(CES) 2021’ 행사를 통해 가상인간 래아를 데뷔시켰다. 이들이 활동할 분야는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댄스, 연기 심지어 웹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하거나 준비한다. 엔터테인먼트와 기술의 만남은 조만간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하리라는 생각도 든다. 재미를 떠나 관계를 맺는 가상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차우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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