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구마 몇 개와 달걀 두 알, 우유 한 잔으로도 충분한 식사가 완성된다.
얼마 전 간편식을 시작했다. 매일 저녁 군고구마와 삶은 달걀, 우유 한 잔만으로 오후 6시 전에 식사를 간단히 마치기로 했다. 고구마 농사를 짓는 삼촌댁에서 주신 고구마가 상자째로 수북이 쌓여 있는데다, 치솟는 달걀 가격 걱정에 미리 잔뜩 사두신 부모님 댁에 들렀다가 30구 달걀 한 판도 얻어온 참이었다. 자연스럽게 매일 저녁 밥상에 올릴 메뉴는 고구마와 달걀로 정해졌다.
간편식을 시작한 이유는 간단하다. 시골로 이주한 뒤 몸과 마음이 편해진 덕분인지, 남편과 나 모두 부쩍 살이 올라 몸이 많이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새해에는 조금 덜 먹으며 몸을 가볍게 해보자고 결심했다. 게다가 새로 구한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는,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임시로 생활해야 하니 이것저것을 요리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다. 최대한 손이 덜 가는 방식으로 밥상을 차려야 했다.
간단한 식사 한 끼가 주는 변화는 기대 이상이다. 평소 잘 안 먹던 아침 식사를 즐기게 됐다. 자고 일어나면 늘 속이 더부룩한 것 같아 아침 식사는 거르는 편이었는데, 간편식을 시작한 뒤로는 속 불편한 일이 줄었다. 덕분에 늘 혼자 아침을 먹던 남편과 이제는 빵, 과일, 커피를 앞에 두고서 마주 앉아 하루를 즐겁게 시작한다. 식비도 저절로 줄어들었다. 일주일 동안 저녁 식사에 들인 비용은 우유를 사는 것 말곤 없었다.
더 만족스러운 점은 삶이 한결 단순하고 간결해졌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뭐 해먹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식사를 준비하고, 뒷정리하는 살림 노동이 줄어들었다. 둘이서 먹을 고구마와 달걀 몇 개만 전기밥솥에 넣고, 만능찜 버튼을 눌러 30분가량 기다리면 손쉽게 한 끼 밥상이 차려진다. 단출한 밥상이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의 달달함과 깨소금을 콕 찍어 먹는 삶은 달걀의 짭짤함은 식탁의 여백을 충분히 채운다. 그저 매일 먹는 저녁 한 끼를 간편하게 바꿨을 뿐인데, 삶이 통째로 더 간소해진 느낌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먹어도, 매일 같은 것을 먹어도 즐거울 수 있구나!” 간편식이 준 새로운 배움이다.
그동안 시골에 내려와 우리 부부가 가장 몰두한 것은 제때 밥상을 차려 온전히 한 끼를 즐기는 ‘시간’을 되찾는 일이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혜원이 그저 “배가 고파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말처럼, 나 역시 “제시간에 제때 밥을 먹고 싶어서”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시간에 쫓겨서 밥을 대충 때우거나 거르지 않는다. 밥을 차리고, 먹는 시간이야말로 하루 중 가장 소중한 때다. 시골에 와서야 우리 부부는 밥상을 두고 마주 앉는 식구(食口)가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간편한 한 끼 식사가 주는 변화와 즐거움에 푹 빠졌다.
우리 부부의 간편식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원하는 단순한 삶에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말이다. 겨우 한 끼의 식사지만, 그 한 끼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을 가장 단순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책 <서른의 식사법>에 등장하는 한 문장처럼 말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욱 간소하게, 보다 단순하게 먹고 싶다. 식사란 곧 생활이고, 생활이 바로 식사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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