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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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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서 보낸 서울 나들이

짧은 서울 일정 동안 남해에 오게 된 이유가 자꾸 떠오르다
등록 2021-10-05 00:09 수정 2021-10-05 10:27
퇴근길 꽉 막힌 도로를 보니, 다시 남해에 가고 싶어졌다.

퇴근길 꽉 막힌 도로를 보니, 다시 남해에 가고 싶어졌다.

지난 추석을 앞두고, 오랫동안 보지 못한 가족을 만나러 서울을 찾았다. 8개월 만의 서울행에 남편과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맛있는 식당에 가서 기분 좋게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최근 신장개업했다는 초대형 카페에도 가볼 생각이었다. 시골에 살며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을 서울에서 가득 채우고 돌아오자고 말이다.

그런데 서울 나들이는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고속도로에서부터 답답함은 시작되었다. 인파를 피해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일찍 길을 나섰는데도, 서울에 가까워질수록 차의 속도는 끝없이 떨어졌다. 최대 시속 100㎞ 구간이라는 표지판이 무색하게 가다 서기를 지루하게 반복하는 시간이 이어지니, 서울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져버렸다.

기대했던 외식도, 카페 나들이도 성사되지 못했다. 뉴스를 통해 백신 접종 완료자를 포함해 4인까지 식당과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접종 후 2주가 지나야 가능하다는 것은 뒤늦게 알았다. 남해는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지역인지라, 서울의 4단계 조치를 세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탓이다.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 앞까지 갔다가 별 소득 없이 뒤돌아 나오니, 하필 퇴근 시간. 거리는 이미 엄청난 인파와 차량으로 가득했다. 서울살이 중 가장 미워했던 ‘지옥철’과 반갑지 않은 재회를 했고, 저녁은 마트에서 산 떡볶이와 편의점 맥주로 대신했다.

시골에는 없는 것들을 도시에서 오랜만에 누려보자는 부푼 마음으로 출발한 여정이었는데, 서울에 머무는 짧은 일정 동안 우리가 도시를 떠나 남해에 내려오게 된 이유가 자꾸 다시 떠올랐다. 무엇이든 차고 넘치는 도시와 달리 시골은 없는 것이 태반이라 자꾸 밖으로 시선이 가는 와중이었는데, 그 여백이 되레 빈곤했던 나의 몸과 마음을 얼마나 푸근하게 채워주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시골에는 도시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감성의 식당이나 카페는 부족하지만, 지금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땐 서로 바빠 부부가 같이 밥을 먹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하지만 이제는 소박하지만 삼시 세끼 함께한다. 동반 퇴사를 하고 시골로 내려온 가장 큰 이유가 말 그대로 식구, 밥을 같이 먹는 사이가 되기 위해서였음을 잠시 잊고 지냈던 것 같다.

시골에는 출퇴근할 일거리가 부족하고, 우리는 언제나 시골에서 먹고살 궁리로 가득하지만, 매일 ‘지옥철’과 씨름하고, 사람으로 가득 찬 빨간 광역버스에 올라타려고 온몸을 구길 일도 없다. 사람 많은 지하철과 버스 타는 일이 너무 싫어 쉬는 날이면 무조건 ‘집콕’인 우리였지만, 남해에 온 뒤론 쉬는 날 기분 좋게 집을 나선다. 도로는 한산하기만 하고, 어디든 잠깐 차를 세워도 우리만의 멋진 소풍 장소가 된다.

별 소득 없이 차에만 갇혀 있다 끝나버린 서울 나들이였지만, 귀한 반전의 기회를 얻었다. 시골 생활 중 부족한 것에만 쏟았던 모난 시선은 거두고, 잔잔한 일상 속에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더 애정 어린 시선을 쏟을 수 있는 반전 말이다. 멋져 보이는 섬 밖 도시들의 화려한 명소를 스크랩하던 일은 그만 접어두고, 내가 사는 남해의 맛과 멋을 더 부지런히 발견하고 누려야겠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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