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마늘 산지로 유명하다. 지역 곳곳에서 특산품 ‘마늘’을 알리는 표시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아주 큰 마늘 조형물을 지붕에 얹은 ‘남해마늘연구소’가 있다든지, 읍내 어느 골목의 가게 간판이 모두 마늘 모양이라든지. 그래서 남해의 겨울은 어딜 가든 초록이다. 마늘이 빽빽하게 논밭을 채운 덕분이다. 지난봄 마을 어르신들이 마늘을 일일이 손으로 뽑아 수확하고 자르고 널어 말린 햇마늘이 마트에 등장할 무렵, 거리 곳곳에 축제를 알리는 펼침막이 걸렸다. 해마다 열리는 축제 중 하나인 ‘남해 마늘&한우 축제’다.
양가 부모님께 햇마늘을 보내드리면 좋을 것 같아, 우리 부부도 얼마 전 축제 현장을 찾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축제의 대부분은 온라인 행사로 대체됐고 오프라인 행사장에서는 ‘드라이브스루’(차량 이동)로 마늘과 한우를 살 수 있었다. 행사장은 그리 붐비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정신이 없었다. 새 시스템이 낯설고 어려운 것은 마늘을 팔러 온 농부 어르신들도, 행사를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우리 같은 방문자도 모두 마찬가지인 듯했다.
얼른 눈앞에 보이는 부스에 가서 마늘 20㎏을 샀다. 10㎏에 6만원이라는데, 가격이 비싼지 싼지 우리는 도통 가늠이 안 됐다. 대신 마늘을 담는 택배상자가 예쁜 게 눈에 들어왔다. 마늘을 팔러 나온 할머니가 좋은 걸 골라보라는데, 다 비슷하게 생겨서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께 제일 좋은 것들로 골라 보내달라 부탁드리고 얼른 축제 현장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마늘을 택배로 받으신 양가 어머니들의 반응은 꽤 좋았다. 햇마늘 가격이 그 정도면 저렴하고 마늘 속도 깨끗하고 고른 편이라고 말이다.
남해에 내려와 부모님께 지역 농산물을 보내드린 게 벌써 여러 번이다. 재작년 겨울에는 제철인 시금치를, 지난 설 명절에는 남해의 또 다른 특산품인 ‘죽방렴 멸치’를 보내드렸다. 부모님께 감사함을 전하는 방법이자, ‘이곳 남해에서 우리는 잘 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안부 인사를 전하고픈 마음에서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동반 퇴사한 뒤 귀촌이라니, 양가 부모님께는 아주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을 테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지쳐 잠시 둘이 쉬려나보다’ ‘한 1년 지나 다시 서울로 돌아가겠지’ 했는데 아예 시골에 눌러앉아버렸으니 도통 속을 알 수 없다 하셨을 테다. 그러니 묻고 싶은 것도 걱정되는 것도 많으실 텐데, 부모님들은 늘 말씀을 아끼셨다. 대신 김치며 반찬이며 먹거리를 아낌없이 가득가득 채운 택배를 남해로 종종 보내신다. 집에서 드시라고 남해 멸치를 사서 보냈더니, ‘멸치볶음’이 되어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친정에 보내드린 마늘은 총총 썰려 우리가 좋아하는 낙지젓갈이 되어, 돌아왔다. 마늘보다 낙지가 더 비쌀 텐데 말이다.
우리가 부모님들께 선물을 보냈던 마음과 같이, 부모님이 보내주신 반찬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임을 잘 안다. ‘어찌 됐든 먼 그곳에서 밥 잘 챙겨먹고 건강하게 지내라, 그거면 됐다’고, 마음으로 쓴 편지 말이다. 부모님 품을 떠났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먹으며 자란다, 매일매일.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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