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시골마을에 있는 우리 집 현관 앞에 상자텃밭이 새로 생겼다. 손수 농사지을 작은 땅 하나 구하기 힘들다는 도시 한복판도 아니고, 천지에 논밭이 드넓게 펼쳐진 시골에서 겨우 집 앞에 놓아둔 작은 나무상자 속 텃밭이라니. 의아하게 느껴질 만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모아둔 돈 얼마 없는 청년에게 내 소유의 땅이란 없는 것을 말이다.
내 집 마련의 꿈이 영영 손에 닿지 않을 것만 같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작은 집 짓고 소박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서 이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열 평 남짓 작은 집을 짓는 데 생각보다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 작은 집을 얹을 땅을 사는 데는 여러모로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타지를 떠나 덩그러니 살 집만 구해 마을에 들어온 우리와 달리, 주변 어르신들은 집 근처에 각자 오랜 세월 가꿔온 땅이 있다. 앞집 할머니도, 옆집 할아버지도, 옆집 할머니도 온종일 논밭에 나가 일하시기 바쁘다. 보통 집 근처 여러 개의 논밭을 동시에 관리하시는데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이 농번기다. 뒷집 할머니는 항상 마주칠 때마다 밭일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푸념하시는데 나는 그래도 집 앞에서 쌀, 고추, 양파, 마늘 등 온갖 식재료를 길러 사계절 내내 식탁을 차려내시는 할머니가 부럽다.
한번 작게라도 땅을 빌려 농사지어보면 어떨까. 시골에 먼저 내려와 사는 친구는 집주인이 잘 안 쓰는 땅을 넉살 좋게 잘도 빌려 쓴다 했다. 하지만 지난해 꽤 오래 쓰이지 않던 다랑논을 빌려 농사지어본 남편은 농사짓고 싶으면 혼자 하라고 선을 그었다. 비가 올 때마다 무너지는 논둑을 다시 세우고, 어딘가 갑자기 생겨버린 구멍을 찾아 메우길 반복하면서 크게 고생한 탓에, 남편은 더는 농사짓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앞서는 마음과 달리 몸으로 하는 일엔 영 재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땅을 빌려 농사짓고 싶다는 말을 차마 다시 꺼내지 못했다. 동네 할머니들처럼 내 손으로 키운 작물로 식탁을 차리고 싶다는 꿈은 여전하기에, 집에서 우리가 먹을 만큼의 채소라도 길러보고 싶다고 하니, 다행히 남편이 인터넷에서 산 방부목과 부직포 등으로 작은 상자텃밭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대신 철저하게 관리는 내 몫으로 하고서 말이다.
집 앞에서 주문한 목재를 잘라 조립하고 있으니, 집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이 물으신다. “또 무엇을 하려고 그런 것을 만들고 있노?” 석 달 넘게 리모델링 공사를 직접 하는 우리를 쭉 지켜보셨는데 아직도 공사하나 싶으셨나보다. 상자텃밭을 만들 것이라고 하니 “그래서 자재 가격이 얼만데?” 물으시곤, 곧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지나가셨다. 몇 그루 안 되는 채소 모종을 심고 나니, 작은 상자텃밭에 금세 자리가 꽉 찼다. 상자텃밭 만들 돈으로 채소를 실컷 사먹는 편이 훨씬 나을 정도다. 그래도 작고 소중한 내 텃밭이 생겼다는 것 자체로 즐겁다. 매일 우리 집 앞 상자텃밭을 지나치시는 동네 어르신들, 빠짐없이 모두 베테랑 농부이신 그들의 눈엔 시시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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