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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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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기, 가능하다!

처음 품었던 질문에 이젠 물음표 대신 느낌표를
등록 2021-11-20 13:50 수정 2021-11-23 00:55
지금은 앞치마를 두르고 숙소를 운영하지만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일을 할지 기대된다.

지금은 앞치마를 두르고 숙소를 운영하지만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일을 할지 기대된다.

그동안 시골에서 우리 부부의 지출을 중심으로 삶의 풍경을 이야기해왔다면, 이번엔 반대로 ‘수입’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년 전 서울을 떠나 남해에 내려올 때,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갈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일단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얼마간 버티며 무너진 일상을 되찾고 시골에서 하고 싶었던 일을 차근차근 해보자는 정도였다. 다만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방향성은 있었다.

우선은 하루 중 노동이 차지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적게 일하고 싶었다. 나머지 시간은 일상을 돌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 쏟고 싶었다. 일을 한다면, 한 가지에 매몰되기보다 다양하게 해보고 싶었다. 조직 밖에서 내 힘으로 다양한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스스로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싶었다.

바라던 대로 남해에 이주한 뒤 정말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내려왔으니 모든 일이 뜻밖이었다. 즉흥보다는 계획에 익숙한 성격이라 일부러 틀을 만들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때그때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을 편견 없이 마주하려고 노력했다.

고사리, 시금치, 문어 등 남해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인터넷으로 판매해보기도 하고, 지역의 작은 마트에서 진열하는 아르바이트도 해봤다. 신청자가 보낸 사연에 맞춤형으로 책과 선물을 골라 보내주는 소포 꾸러미를 기획해 열심히 택배작업도 하고, 마을 바닷가 앞 버려진 컨테이너를 고쳐 캠핑객이 이용할 수 있는 무인 슈퍼도 운영했다. 8개월 동안은 다시 직장인이 돼 익숙한 사무실 생활을 했고, 때때로 지역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이나 행사에 참여하고 각종 매체에 실을 짧은 원고를 쓰면 부수입이 생겼다.

따져보면 즐거워서 시작한 작은 일들은 대부분 지속가능성이 없었다. 품은 많이 들어도 생계를 유지할 만큼 벌이가 되지 않았다. 반대로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수입이 되는 일은 내가 바라던 시골살이와 거리가 멀었다. 매일 출퇴근해 하루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생활을 하면서 남해에 내려온 뒤 비어만 가던 통장을 금방 다시 채울 수 있었지만, 몸만 남해에 있을 뿐 도시의 사무실 인간으로 회귀한 것 같아 자주 울적했다. 지금은 어쩌다 민박집과 함께 작은 시골 가게를 운영하며 남해에 온 이후 가장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지금껏 여러 형태로 시골에서 벌어보는 경험을 통해 큰 수입은 아니더라도 값진 용기를 얻었다. 처음의 걱정과 달리, 우리는 다행히 도시를 떠나, 직장을 떠나, 익숙한 방식과 환경을 떠나서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원했던 대로 시골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고, 적게 일하는 삶에 가깝게 산다. 만약 이곳을 떠나 어디에 가서도 우리 힘으로 제법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막연한 자신감도 생겼다. 부부의 영수증을 연재하며 처음 품었던 질문을 다시 떠올려본다. ‘시골에서 적게 벌고 적게 쓰기, 가능할까?’ 이제는 물음표 대신 느낌표로 문장을 바꿔 쓸 수 있을 것 같다.

남해=글·사진 권진영 생활인

*1년9개월 연재해온 ‘부부의 영수증’이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끝납니다. 남해에서 행복한 생활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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