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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 사랑한 작가 김초엽②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김초엽

등록 2020-08-17 19:45 수정 2020-08-28 21:42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21이 사랑한 작가 김초엽① 현실과 머나먼 우주는 떨어져 있지 않다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108.html

기술 저편의 사회를 목도하는 힘

김초엽의 소설에서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기술 발달 과정에서 도드라지는 건, 배제되고 소외된 소수자의 존재다. <원통 안의 소녀> 지유가 그렇다. 미세먼지를 정화하고,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기상 현상을 통제하는 에어로이드가 떠다니는 도시. 지유는 이 에어로이드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극소수다. 지유의 사연에 한 기업은 원통형 차량 프로텍터(보호장치)를 기부하고, 지유는 ‘원통 안의 소녀’로 알려져 대중의 연민 어린 시선을 받는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기술발달에도 제3행성 슬렌포니아에 있는 가족과 만날 수 없는 과학자 안나는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

기술은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누군가를 배제한다는 기술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은 자본에 복무하는 특성이 있기에,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이롭다고 할 것이다. 방향키를 쥔 건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사회다. 김초엽이 논픽션 집필을 위해 공부한다는 장애학은 “몸의 손상이 장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손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고 설명한다. 김초엽의 소설은 과학기술과 조응하는 그 사회를 응시하게 한다.

“걷지 못하는 사람이 로봇다리를 달아서 걷게 된다면, 외면적으로 좋은 기술처럼 보이죠. 당사자에겐 좋은 기술일 수 있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로봇다리를 달아서 걸을 수 있게 되니 건물이나 지형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대신 장애인에게 ‘로봇다리를 달아라’ 사회가 이렇게 말하고 말 수도 있어요. 모두가 로봇다리를 달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기술 자체로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어요. 그 기술이 위치한 사회 맥락이 중요하죠. 그걸 보여주는 게 SF라고 생각해요.”

‘인지 공간’은 장애와 사회의 상호작용을 다뤄보자는 생각에서 쓴 작품이다. 격자 구조로 이뤄진 인지 공간은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총체가 통합·관리되는 곳이다. 사람들은 인지 공간이라는 공동의 공간을 통해서 사유한다. 그러나 이브는 연약한 신체 탓에 이곳에 접근할 수 없다. 아주 낮은 층수에 접근 가능한 사다리만이 쥐어졌을 뿐이다. 이는 현실 속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은유한다. 김초엽은 젊은작가상 작품집에 이 작품을 수록하면서 그 은유가 더 잘 드러나도록 내용을 다듬었다. 그러나 다수의 독자는 이 작품을 ‘개별적 사고와 보편적 사고의 충돌’로 해석하면서도, 장애라는 관점으로 읽지는 않았다. 과학도이면서 소설가이자 청각장애인인 김초엽은 이 점이 의아했다고 한다.

“아직 장애가 한국 사회에서 보편적 관점은 아닌 것 같아요. 한국 소설에 ‘여성’이나 ‘퀴어’의 프레임은 있잖아요. 문학작품에서 퀴어 얘기를 대놓고 쓰지 않고 은유적으로 쓰더라도, 퀴어소설로 읽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대놓고 장애를 은유적으로 썼는데도 다수가 그렇게 읽지 않은 걸 보면 아직은 (문학작품 속) 장애를 읽어내는 관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계와 독자에 뒤처지지 않는 글

인터뷰를 할수록 궁금해졌다. 인지 공간, 에어로이드, 모그, … 이와 같은 사고실험의 재료는 어디서 얻을까. 김초엽은 ‘적당한 깊이’를 가진 과학책에서 주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노트나 에버노트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메모한다. 단편 ‘오래된 협약’은 오래전 메모해둔 ‘음식 금기 현상’을 소재로 썼다. 뇌 손상을 막고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오브라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이것을 먹지 않는 행성 벨라타와 벨라타인들이 그려진다. 이날 그가 보여준 에버노트에는 ‘사회전염책’과 같은 메모가 빼곡히 나열돼 있었다. 이런 메모가 이야기가 되려면 기약 없는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평소에는 메모만 해놓다가, 마감이 얼마 안 남았을 때 여러 아이디어를 합치는 것 같아요. 마감이 닥쳐왔을 때 발휘되는 창의성이 있거든요.(웃음)”

그리고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글을 써야겠다”고, 김초엽은 생각한다. 그는 독자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글을 쓰는 게 재밌다. 작가 개인의 세계에 심취하기보다는, “세계에, 독자에게 뒤처지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윤리적 측면에서도, 독자는 이미 기성 출판사를 앞서가고 있다. 지인과의 사적 대화를 소설에 무단 인용해 논란이 된 김봉곤 작가 사태 때 그랬다. 대화를 인용당한 피해자의 거듭된 요구 끝에 원고는 겨우 수정됐으나, 그 수정 사실을 공지하고 김봉곤 작가의 2020년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 취소를 요청하는 피해자의 요청은 묵살됐다. 출판사의 안일한 대응에 분노한 독자들은 보이콧 선언으로 피해자와 연대했다. 결국 소설집과 수상작품집은 판매 중지되거나 수정 공지됐고 젊은작가상은 반납됐다.

차가운 우주는 유토피아를 허용하지 않는다

수상작품집에 함께 이름을 올린 김초엽은 피해자가 이를 트위터로 공론화한 7월10일, 피해자를 지지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며칠 뒤(7월14일) 두 출판사(창비와 문학동네)와 당분간 협업할 수 없다는 참담함도 밝혔다. “문단의 창작 윤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소설의 가치가 한 사람의 삶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폭로를 한 피해자는 김 작가의 입장문에서 “위로와 힘”을 얻었다고 했다. 신인 작가가 자신에게 젊은작가상을 쥐여준 대형 출판사를 향해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작가는 “출판사가 부담스럽기보다는, (수상작품집에 같이 이름을 올린) 다른 작가들에게 돌아갈 압박이 걱정됐다”고 했다. 그래도 해야 했다.

“글만 쓰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뭐라도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가끔 생겨요. 피해자분이 공론화하기 전에 작가들에게 공문을 보내셨어요. 뭔가를 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작품집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면 놀랄 수 있으니 먼저 알려드리겠다’는 취지로요. 어떻게 보면 배려해주신 거잖아요. 피해자분이 공론화할 수밖에 없는, 출판사와 대립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앞서 배려해주셨으니까 나도 작게라도 얘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단한 용기를 낸 건 아니에요.”

김초엽은 SF 작가들의 창작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SFWUK) 1기 운영이사도 역임했다. 작가연대 활동을 통해 흩어져 있는 개별 작가들이 공동의 문제에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했다.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꿈꾸면서도 사실은 유토피아가 없다는 것을 안다. 차가운 우주는 유토피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곳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그리운 세계이다. 하지만 소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모순에 맞서며 다른 세계로 가는 길을 애써 상상해보는 것이라고, 이제 나는 생각한다.”(<악스트> 27호, 2019년 11·12월) ‘미래 사회에서까지 차별과 배제가 공고히 유지되는 이야기를 써야 하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김초엽은 이렇게 답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것과 보이지 않는 머나먼 우주를 상상하는 것. 이 둘이 떨어져 있지 않다는 감각은 우주와 미래를 이야기하다 현실로 자리를 옮겨온 인터뷰 궤도를 닮은 듯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21이 사랑한 작가들 모아보기
http://h21.hani.co.kr/arti/SERIES/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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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SF가 ‘낯설다’고 생각했다. 여러 언론은 ‘SF 열풍’이 불고 있다며 그 현상과 원인을 앞다퉈 분석하고 있었다. 김초엽 작가에게 물었다. “왜 지금 SF가 독자들의 흥미를 끈다고 생각하세요?” 비슷한 질문을 여러 번 들었을 김초엽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이 질문에는 저보다는 다른 작가님들이 대답하는 편이에요. 저는 갓 데뷔한 신인 작가이고 작품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이미 SF가 주목받는 분위기였거든요.” 김초엽은 SF 인기를 이끈 주역으로 소환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래도 답을 바라는 기자의 눈빛을 못 이긴 듯, 이어 말했다. “순문학도 예전보다 독자 친화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예전의 어두운 이야기에 비해 독자들은 재밌고 즐거운 이야기를 원하죠. 그런 분위기와 맞물려서, 흥미를 유발하는 장르소설이 인기를 끌게 된 것 아닐까요? SF의 문학적 가치는 독자가 아닌 평론가가 부여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독자들은 이미 SF에 친숙해요. 한국에선 SF 영화가 흥행하는 편이에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영화 <그래비티>는 328만 관객, <인터스텔라>는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의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김초엽을 만나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2019년, 독자로서 김초엽의 소설집을 읽었을 때 이 소설집이 장르문학이라 인식하고 읽은 건 아니었다. 그저 재밌다, 새롭다 생각했다. 듀나·배명훈 작가 등이 1990~2000년대부터 꾸준히 터를 닦고, 김초엽을 비롯해 정세랑·김보영 작가 등이 그 저변을 넓혀온 한국 SF의 연혁을 더듬어보니 SF는 언제나 지근거리에 있었다.
‘낯설다’는 감각을 ‘낯설게’ 느끼기 시작하자, 아직 읽지 못한 SF가 쌓여 있다는 기쁨이 찾아왔다.

김초엽 제공

김초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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