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DIY, 홈쿡, 홈카페, 셀프 라이프…. 코로나19 여파로 집에서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스스로 해결하는 ‘DIY’가 우리 일상에 자리를 잡았다. 6월28일 씨제이(CJ)대한통운이 3~4월 택배 물량을 분석해 펴낸 ‘일상생활 리포트’를 보면, DIY 관련 제품이 2019년 3∼4월 대비 117% 증가했다. 뜨개질용품 물량은 95%, 반려식물 등에 관심이 커지면서 원예용품도 50% 늘었다. 커피머신 165%, 캡슐커피 79%, 드립커피용품 57% 등 홈카페 관련 물량도 대폭 늘어났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5월6일, 유튜브 채널 ‘트렌드코리아 TV’에서 코로나 이후 소비 트렌드로 ‘반급반족’을 키워드로 뽑았다. 모든 재료를 직접 재배해서 만들 수는 없지만, 준비된 재료를 구매해 완제품으로 만드는, 물만 붓고 끓이면 되는 ‘밀키트’ 등이 확산할 것이란 의미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코로나 이후, 마트에 가는 대신 서슴없이 식자재를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며 “즉석밥, 죽 등 기존 간편식과 차별되는 밀키트가 새로운 식문화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일상생활 리포트’를 보면, 평소 외식이나 배달로 즐기던 곱창·막창·떡볶이 등이 반조리 형태로 나오는 밀키트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곱창·막창 밀키트 택배 물량은 2019년 3~4월 대비 200% 증가했다. 토핑이 첨가된 요리 수준의 떡볶이 밀키트 제품은 282%나 늘었다. ‘400번 저어야 맛볼 수 있다’는 ‘수제 달고나 커피’가 코로나 사태 속에 유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단순노동을 하며 시간 보내기 좋은 DIY 음료’이기 때문이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DIY가 처음 트렌드로 떠오른 2010년 초반에는 웰빙·유기농 등 건강 측면에서 유행했지만, 지금은 밖에 나갈 수 없으니 스스로 해야 하는 측면이 크다. ‘록다운(봉쇄) 헤어컷’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처럼 미용실에 갈 수 없으니 직접 머리를 자르는 것이다. 또 여행이나 나들이를 갈 수 없으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놀이 수단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여파로 DIY 열풍에 더욱 불이 붙었지만 DIY를 하는 근원적인 이유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고 싶은 욕망과 손맛,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 그 자체다.
‘스트레스 베이킹’은 비건빵 만들기로
네덜란드에 사는 공나현(34)씨는 ‘셧다운’(비필수 사업장 폐쇄)으로 외식할 수 없게 되자, 홈베이킹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과 무기력을 느끼는 이들은 홈베이킹으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을 ‘스트레스 베이킹’이라고 부른다.
고강도 거리 두기가 시행 중이던 지난 4~6월 온라인쇼핑몰 지마켓, 11번가의 홈베이킹 관련 매출은 200% 이상 늘었다. 빵 만드는 데 쓰이는 강력분과 무염버터도 두 자릿수 이상 매출이 성장했다. 국외에서도 홈베이킹은 트렌드로 자리잡아 빵 만들기의 기본 재료인 버터와 밀가루 반죽을 숙성시키는 이스트는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공씨는 우유, 버터, 달걀을 사용하지 않는 비건빵을 만들고 있다. 그는 채식을 지향했기에 최근 10년간 육류 소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빵을 좋아해서 빵에 들어가는 달걀이나 우유는 먹지 않을 수 없어 때론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비건빵을 만들면서 달걀과 우유 없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빵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건빵을 만들 때는 달걀 대신 아마씨나 베이킹소다에 식초를 섞으면 돼요. 마트에서 비건 버터도 팔고요. 어려울 것 같지만 의외로 우리가 아는 모든 빵을 비건으로 만들 수 있더라고요. 이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비건빵을 사 먹는 것보다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좋죠.”
‘손맛’에 중독되는 바느질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신현진(32)씨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때의 ‘손맛’에 중독됐다. 이 손맛 때문에 신씨는 2018년부터 가죽 공방을 다니며 자신에게 필요한 가방과 소품을 만들고 있다. 도화지에 연필로 스케치하고, 가죽을 자르고, 손바느질하는 과정이 번거롭지만 완성된 결과물을 보면 다시 빠져든다고 했다. “재봉틀로 박아도 되는데, 손으로 한땀 한땀 바느질하는 이유가 있죠. 재봉틀은 대량생산에 맞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손바느질이 더 예쁘기도 하고,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다 했다는 그 기분에 중독되거든요.”
신씨는 10여 개의 가방과 소품을 스스로 만든 이후, 명품 가방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다. “한때는 남들처럼 명품 가방을 갖고 싶었죠. 실제로 사기도 했고요. 그런데 직접 만들어보니, 남들과 똑같은 디자인의 가방을 몇백만원씩 주고 사는 게 이해되지 않더라고요. 좀더 저렴한 가방을 사려고 보면, 명품 가방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것이 많았고요. 가장 좋은 점은 딱 제게 맞는 가방을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와인을 좋아해서 모임에 와인을 들고 가는데, 종이가방은 찢어질 수 있어 불편하잖아요. 보냉 기능도 있는 와인캐리어를 만들었죠. 또 립스틱만 넣을 수 있는 크기의 파우치에 거울을 달기도 했어요. 이런 건 어디에도 팔지 않더라고요.”
차주현(32)씨는 “술을 좋아하는 만큼 잘 알고 마시면 더욱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 2017년 한 맥주 공방에 등록해 맥주 양조를 배웠다. 이후 함께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재료를 함께 구매해 한 달에 한두 번, 맥주를 만들고 있다. 최근 여름을 맞아 수박주스를 넣은 맥주를 만들었다. 6월에는 캐모마일차, 라벤더차를 함께 우려내 맥주를 만들기도 했다. 차씨가 맥주를 한 번 만들면 최소 20ℓ가 나온다. “맥주를 직접 만들어보지 않았다면, 맥아를 끓인 후에 맥아를 걸러내고 끓인 물만 뽑아내는 과정이라든지, 홉을 넣고 끓이는 과정 같은 건 몰랐을 거예요. 양조 과정을 알게 되니 주재료뿐만 아니라 오렌지 껍질, 고수 같은 부재료도 직접 골라 새로운 레시피에 도전해볼 수 있었죠. 술을 만들수록 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니까 더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같은 거죠.”
사랑하면 알고 싶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문정훈 교수는 “최근 지인들끼리 모여 김장하거나, 장을 담그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돈을 주고 사먹지 않고, 직접 만드는 것이 ‘하이엔드’라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커뮤니티 문화이자, 놀이 문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지혜 연구위원은 “세상 그 어떤 아이템, 서비스도 살 수 있는 밀레니얼세대, Z세대는 오히려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DIY 열풍은 계속 확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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