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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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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루

등록 2020-03-08 00:07 수정 2020-05-03 04:29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소설가 윤이형이 절필을 선언했다. 그는 “이상문학상 논란 이후로 어디를 믿고 일을 해야 할지, 나에게 내려진 평가가 정당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회의가 느껴진다”고 했다. 마음에 와닿는 고백이지만 내가 붙들린 문장은 따로 있다. “열심히 일해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부당함과 부조리에 일조해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 싫다.” 나는 이 문장을 ‘연루(連累)되어 고통스럽다’로 읽는다. 연관되거나 얽힌 상태인 연루는 둘 또는 여러 대상이 서로 연결돼 얽혀 있을 때 쓰는 말일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새 연루되는 일만큼 두려운 게 있을까.

분쟁 광물, 아동 노동, 친환경 전기차…

대부분의 교양인은 약자, 특히 아동이 당하는 폭력을 감당할 수 없다. 감당은커녕 그런 악행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하고 때에 따라서는 모든 걸 걸고 아동을 지켜내려 투쟁도 불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어떨까.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사랑하는 이가 자동차를 계속 타야 할까 고민한다면, 한 번쯤 전기차를 떠올릴 것이다. 미세먼지와 신종 바이러스로 마스크 없는 나날은 상상할 수 없는 요즘, 인간의 노력으로 환경 보존에 일조할 수 있다면 전기차는 마땅한 선택 아니겠는가. 세련된 디자인에 무엇보다 연비도 훌륭하다.

전기차는 어떻게 굴러갈까. 모두 아는 것처럼 전기차의 심장은 배터리고, 배터리의 핵심 원료는 코발트 금속이다. 전세계 코발트 채굴의 절반 이상은 아프리카 콩고에서 이루어진다. 무려 4만 명의 콩고 아이들이 험한 광산 주변을 맨발로 걸어다니며 맨손으로 코발트를 채취한다. 제대로 걸러내지 못한다고 작업반장에게 얻어맞아가며 하루 12시간씩 일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우리 돈 1천원. 전기차 제조사들도 코발트가 어디서 오는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뿐인가. 콩고 인접 국가들인 수단, 르완다, 부룬디, 우간다, 잠비아, 앙골라, 탄자니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하는 탄탈룸(Ta), 주석(Sn), 금(Au), 텅스텐(W)은 ‘분쟁 광물’이라고 한다. 그리 부르는 까닭은 이 국가들의 반군, 정부군 무장세력이 광물의 채굴과 유통을 장악하고 아이들이 주운 광물을 팔아 거둔 자금으로 분쟁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쟁 광물은 전자산업을 비롯해 통신, 자동차, 반도체, 철강 산업에 두루 쓰인다. 기업이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더라도 생산 자체로 이미 깊이 얽혀 있는 셈이다.

1. 친환경 전기차가 저 멀리 분쟁국가의 어린아이들이 채집한 광물을 재료로 굴러간다. 2. 아동 폭력을 결사반대하고 생태를 고민하는 이들이 전기차를 탄다. 1번과 2번의 관계가 윤이형이 말한 (그럴 의도는 전혀 없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 자꾸만 부당함과 부조리에 일조해가는 형국 아닐까. 세상에 파고든 악은 모세혈관처럼 너무 세세해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안다 해도 인정하기 쉽지 않다. 모든 게 악에 연루됐다면 사는 일 자체가 악일진대 그럼 어쩌란 말이냐, 질책을 들을 것만 같다. 그럼에도 세상을 복잡한 방식으로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작가는, 스스로를 얽어매며 질곡의 길을 간다. 그런 작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예민하게 감지하므로 통증을 느끼는가보다. 윤이형 작가에게 깊이 공감하면서도 그가 그린 소설 속 복잡한 세상을 더는 체험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먼 사회적 거리, 긴밀히 연결된 생태계

마스크에 갇힌 봄. 이제 막 피어나는 꽃과 햇살을 만끽도 못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과 마음 편히 악수도 나누지 못하는 일상도 슬프긴 매한가지다. 우리는 지금 긴밀히 연결된 생태계가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음을 매일 듣고 보는 중이다. 바이러스의 숙주가 돼 당하는 몸의 고통이 우리가 함부로 해친 것들의 결과라면, 역시 의도는 없었지만 기여한 셈 아닐까.

김민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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