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가장 무거운 곳. 체중으로 보면 근육, 장기로 보자면 뇌 또는 간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호흡. 춤을 추면서 근육과 머리보다 더 묵직한 실체는 호흡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호흡이 아래로 떨어지면 에너지가 뻗어나가지 못하고 몸은 축 처진다. 한숨 쉴 때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그러니까 오래 춤추고 싶다면 몸이 무거워선 안 된다. 체중 문제가 아니다. 호흡이 위에 있을 때, 움직임은 가벼워진다. 내 무게의 총합을 한번에 들어올릴 만큼 강한 존재가 숨이라는 것도 신비한데, 호흡은 물질처럼 중력에 휘둘리지도 않는다는 점은 숭고할 지경이다.
(아날로그 펴냄) 지은이 중 한 명인 시인 달지트 나그라의 글을 읽는다. 호흡기관의 아름다움을 깊이 들이마실 수 있다. “나는 폐가 천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섬세하면서도 온화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상당히 좋았다. (…) 폐는 탄력 있고 매우 가볍지만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다. 자르려 해도 칼이 잘 들지 않는데, 수백만 개의 공기주머니가 연골에 둘러싸여 계속 열려 있기 때문이다. 폐를 이루는 모든 공기주머니를 쫙 펼쳐놓으면 테니스장 하나를 덮을 정도로 넓게 퍼진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기관은 우리를 전혀 짓누르지 않는다. 폐의 전체 무게는 800그램 정도다.”
영국 <bbc> 라디오3 채널의 ‘몸에 관한 이야기’ 시리즈를 모아 엮은 책. 시인, 소설가, 희곡작가, 화가, 게임디자이너, 저널리스트 등 15명이 신체 부위를 하나씩 정해 의학·사회·역사·문화적 지식을 바탕으로 개인의 경험과 상상을 버무려 자유롭게 썼다.
“일상의 고됨을 내뱉고 다시 아름다움을 채우는” 폐. 언제 끔찍하게 터질지 모른다는 그 터무니없음이 인생의 낭패를 닮은 맹장. 차단 장치가 없어 언제나 열려 있는 귀. “감정이 머물고 흩어지고 다시 태어나는, 독특한 창조력과 재생력”의 자리, 간.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소(입) 반대쪽 끝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언제나 똥으로 가득 차 있음을 상기시키는” 창자. “두개골 안에 자리잡고 뇌라는 단독의 특이점으로 바라보며 (…)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저 스크린 뒤에서 지켜보게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눈. 구약성서가 ‘콩팥을 갈가리 찢는다’는 표현으로 한 개인의 완전한 파괴를 강조할 만큼 깊숙이 감추어진 콩팥.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상태가 되도록 애쓰는 나비넥타이 모양의 용광로” 갑상샘. 삶이 남기는 상처와 회복의 공간이자 모든 기관을 하나로 묶는 피부까지.
마지막 장은 자궁을 다룬다. 장의사이기도 한 시인 토머스 린치가 썼다. “칼이 칼집보다 더 소중하다는 착각”을 찢으면서 열리는 글이다. “칼집에 넣은 칼처럼, 남성의 생식기는 여성의 생식기를 뒤집어놓은 형태일 뿐”이라는 린치. 장례학교를 거쳐 사산된 아기들을 주로 맡았던 초보 시절과 대를 이은 장의사로서의 생애는 그가 왜 “제1의 성, 가장 맹렬한 성은 여성”이라고 말하는지 보여준다. “가장 분명하게 운율을 맞추고 있는 단어는 자궁(womb)과 무덤(tomb)”이라는 시인의 눈으로.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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