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급격히 묵직해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무엇이 인간인가.’ 지능을 갖춘 사물로부터 이미 우리는 인간임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으며 산다. 식별하기 어렵게 비틀어진 문자나 숫자를 읽고 입력함으로써 이용자가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구별하는 ‘본인 인증’ 테스트를 해봤을 것이다. 오늘날 기술 발전을 일컫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도 이제 뒤떨어진 표현일지 모른다. 혁명을 능가하는 변화 앞에서, 이 책은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부제)을 주목한다.
오종우 성균관대 러시아어문학과 교수가 펴낸 (어크로스)은 “새로운 의미를 폭발시키는 능력”에 관한 창작의 증명이다. 예술은 인간만의 활동이므로 무엇이 인간이냐는 물음의 대답을 예술에서 찾아본다. 상상은 갈수록 쉽게 현실이 될 것이다. 이 말은, 상상하지 못한 것은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본을 지나 상상력과 창의성이 이끌 새 시대에 요구되는 능력도 제시한다. 사유의 힘이다.
인간의 사고방식은 크게 인식과 사유로 나뉜다. 지능이라고도 하는 인식은 논리적인 추론을 거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시작과 끝이 있고, 측정 가능하다. 사유는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근원과 전체를 꿰뚫는 능력이다. 시작과 확산이 있고, 측정되지 않는다. 도래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사유에서 인간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예술은 사유와 닿아 있다.
몬드리안은 왜 사선을 긋지 않았을까. 어떤 색을 섞어도 나올 수 없는 일차색(원색)인 빨강·노랑·파랑을 추려 쓰고 형상은 수직과 수평으로 과감하게 솎아낸 몬드리안은 원래 풍경화가였다. 자연을 관찰하고 사유한 끝에 발견한 패턴, 즉 “대립하는 것들이 수평과 수직으로 중심을 잡는” 흐름을 담은 작품이 그 유명한 이다. 몬드리안이 사선을 쓰지 않은 이유는 실제로 사선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입체 직사각형에서 보이는 사선은 착시 현상이다. “사선은 진짜를 감춘다. 사선은 거짓을 창출하는 선이 된다. 몬드리안은 근본적인 것을 드러내기 위해 일시적인 것을 제거해야 했다.”
그림 이름에 ‘작곡’(콤퍼지션)을 붙인 점도 사유를 유발한다. 몬드리안의 패턴에는 리듬감이 있다. 조화롭게 다른 직선의 굵기, 분할된 면의 크기, 테두리 치지 않은 화폭 너머로 뻗어가는 듯한 원색의 율동적인 배치까지…. 리듬이 우리를 데리고 포화에 이르는 음악적 경험을 시각으로 하게 된다. 스스로는 쉽게 이르지 못했을 그 극적인 포화. 우리는 리듬이 선물하는 고양감 속에서 나의, 타인의 영혼을 느끼곤 한다. 음의 진동과 증폭 현상인 리듬을 증강현실 기술과 엮어 풀어내는 대목은 더욱 흥미롭다.
지은이는 인류가 자주 사용하게 될 단어로 ‘영혼’을 꼽는다. 영혼 상실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영혼은 만들 수 없다. 영혼은 논리적으로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혼의 자리에 사유, 예술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벌써부터 영혼을 더욱 갈망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등장이 은퇴 이유라고 밝힌 이세돌이 남긴 말.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 둘이서 만들어가는 하나의 작품. 지금 과연 그런 것이 남아 있는지….”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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