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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유해동물’의 황예솔씨
등록 2019-12-07 15:38 수정 2020-05-03 04:29
황예솔 제공

황예솔 제공

“따뜻한 응원을 받았네요.(웃음)”

12월3일 오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예솔(23)씨는 제11회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대학교 3학년인 그는 요즘 진로를 고민하고 있다. 문예창작을 전공한 그는 소설가가 꿈이지만 그걸 현실에서 펼치기 쉽지 않다. 높고 좁은 등단의 관문도 거쳐야 하고 전업작가로 살기 위한 여정도 지난하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수상 소식을 들어 “글을 계속 쓸 명분이 생겼다”며 웃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가 쓴 소설 ‘유해동물'은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인 여빈과 승이의 이야기다. 20대 후반이 된 그들은 우연히 편의점에서 만난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승이는 교통사고를 당해 해리성 장애(기억상실증)를 앓는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가해자 승이를 만난 여빈이는 고등학교 시절에 받은 깊은 상처를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그가 당한 폭력을 방관한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아픈 기억을 떠올린다. 자신의 ‘가해 경험’도 기억해낸다. 끔찍이 싫어했던 비둘기를 발로 차 죽였다. 작품은 여빈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에서 폭력의 굴레를 보여준다. 선악의 모호한 얼굴을 마주하게 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은 일을 계기로 이 작품을 구상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들여다보며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나도 가해자가 된 적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내게 상처를 준 이가 그 상처를 모르듯 나 역시 내가 다른 이에게 준 상처를 그냥 지나친 건 아닐까. 소설에서 학교폭력 가해자인 승이가 기억 장애를 앓는 설정은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안고 살아간다’는 걸 이야기하기 위한 소설적 장치예요.”

그는 혐오와 폭력의 사회에서 누구든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안에서 분노가 쌓이고 그 분노는 가장 약한 생명체를 향한다. 소설 속에서 폭력의 상처가 있는 여빈이가 더러운 유해동물이라며 비둘기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내 별명은 ‘걱정인형’

그는 올해 처음 손바닥문학상에 응모했다. “손바닥문학상이라는 이름이 소박하고 모두가 응모할 수 있는 점에서도 문턱이 낮은 문학상 같았어요.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한번 보내볼까’라는 용기가 생겼어요.” 예전 손바닥문학상 수상작을 봤다. 그중에서 ‘치킨런’(제8회 손바닥문학상 대상작)이 눈에 띄었다. ‘치킨런’은 실직과 함께 벼랑 끝으로 떠밀린 한 가장의 팍팍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치킨런’은 삶의 극단으로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그렸어요. 그들의 생생한 삶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그 역시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글을 쓰고 싶단다. “별명이 걱정인형이에요. 걱정을 많이 하고 불안감이 큰 편이거든요. 그렇게 마음이 힘들 때 소설을 읽으며 공감과 위로를 받았어요.” 글 쓰는 그를 응원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도 덧붙였다. “함께 글 쓰는 ‘하옥단문’ 친구들 모두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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