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과 반동의 파고가 거셌던 프랑스혁명의 등장인물을 떠올려보자. 루이 16세, 왕비 앙투아네트, 당통, 마라, 로베스피에르, 그리고 나폴레옹 등등. 오스트리아의 저술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핏기 어린 격동기, 그 뒤편을 바라본다. 그리고 항상 다수파에 붙어 권력을 좌지우지했던 흑막 뒤 한 남자에게 주목한다. 조제프 푸셰(1759~1820). 일찌감치 발자크가 “권력으로 사람을 다루는 능력을 놓고 보면 나폴레옹보다 한 수 위”라고 평했던 정치인이다. (강희영 옮김·바오출판사 펴냄)는 제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지켜보면서 누가 ‘나쁜 정치’의 주범인지 고민했던 츠바이크의 ‘푸셰 평전’이다.
낭트에서 뱃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푸셰는 소년 시절 수도회에 들어가 과학과 수학을 가르치는 사제 교사가 됐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조용하게 살아갈 뻔했던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푸셰는 프랑스 북부 지역 아라스라는 도시의 사교클럽에서 활동하며 로베스피에르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이후 환속하여 국민의회 대의원으로 선출된다. 애초 보수적인 지롱드당에 속했으나 루이 16세 처형 여부를 결정하는 의회 투표에서 결정적으로 처형 찬성표를 던지며 자코뱅으로 급변침한다. 지방의 파견의원으로서 낭트 등지에 부임해 교회를 약탈하고 부자한테 재산을 빼앗아 혁명정부의 군자금을 대며 명성을 쌓았지만, 리옹의 반혁명 폭동을 진압하러 가서 대포와 총칼로 2천여 명을 학살하는 바람에 단죄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역으로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반감을 물밑에서 조직해 정적 처단에 성공한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매번 오뚝이처럼 일어서 음모의 정수를 보여줬다. 총재정부 시기 바라스라는 권력자의 밀정이 돼 각종 더러운 정보를 수집해 전달하며 그 공으로 경무대신이 되지만 나폴레옹의 부인 조제핀과 정보 거래를 해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사전에 인지·방조함으로써 또 한 번 바라스의 뒤통수를 친다.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다짐했음에도 그가 권좌에서 내려오는 데 앞장섰으며, 다시 루이 18세로의 권력 이양을 돕는다.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말도 배신했던 푸셰의 말년이 정치적 몰락과 고독이었다는 점이 그나마 후세에 주는 ‘위로’라고나 할까.
인물의 심리 묘사에 뛰어난 츠바이크답게 푸셰의 변신은 갖가지 예리한 언어로 묘사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 따위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무신경한 성격”에 대해 읽다보면 푸셰라는 불온한 인간에게 흥미를 느끼게 된다.
츠바이크는 정치적 맹신을 경계하자는 말로 이 책의 교훈을 전한다. 실제 정치를 주도하는 것은 외부에 노출된 권력자나 선량한 사람이 아니라 정치적 무게는 덜해 보이더라도 노회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의 검은손이므로, 시민들은 “자기방어를 위해서라도” 배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 정국’을 관통하면서 현재 한국 사회엔 한층 분열된 정치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 진영으로 나뉘어 격앙된 언어폭탄을 던지기 전에 차분히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좋겠다. 2019년 누가 한국의 푸셰일까?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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