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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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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과 싸우는 무기

저널리스트 아버지의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등록 2019-10-02 10:16 수정 2020-05-03 04:29

이 책은 눈물과 뼈를 갈아 넣어 쓰였다. 원제 ‘미친 사람한테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No One Cares About Crazy People)는 깊은 절망을 담고 있다. 지은이 론 파워스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미친 사람들’을 가족으로 둔 저널리스트(언론인)이다. 딘과 케빈 두 아들 모두 조현병을 앓고 있고(앓았고) 그중 둘째 케빈은 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케빈의 죽음 이후 10년 만에 쓰인 (심심 펴냄)는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울었던 아버지이자 통찰력 있는 언론인·작가로서 개인의 아픔뿐 아니라 오류로 점철된 서구 정신의학의 역사, 여전히 열악한 미국 의료 현실과 정신질환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을 짚는다.

론과 그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냉담한 부모가 절대 아니었다. 문학과 음악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으며 아이들의 성장과 반응에 세심했다. 아들들이 잇따라 조현병 진단을 받은 뒤에도 자신들에게 놓인 고통스러운 의무를 당장 끝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아들이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보고 싶어 오래 살 것을 결심하는 부모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발병과 자살은 부모의 노력 너머에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가족에게 다가온 불행의 정체를 밝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현명한 행동을 찾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질문은 촘촘하고 광범위하다. 왜 조현병에 걸리는가? 조현병은 왜 청소년기에 주로 발현하는 걸까? 유전인가, 환경적 요인인가? 뇌의 비밀을 푼다면 조현병은 정복할 수 있는 걸까? 뛰어난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케빈의 창조성은 조현병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지하감옥 같은 곳에 정신질환자들을 가두고 학대하거나 나치처럼 강제로 불임수술을 행하거나 학살하진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신질환에 대한 정책과 일반인들의 반응은 공포와 무지라는 말로 요약된다. 한쪽에선 우생학적 관점에서 정신질환자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낙태 운동가이자 선구적인 계몽주의자인 마거릿 생어조차 낙태를 옹호하면서 “반감을 일으킬 아이는 임신 전에 아예 처단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경우 환각과 망상으로 난동을 피우는 정신질환자들의 위험성도 극단적으로 강조된다. 환자의 인권이 자리잡을 공간은 없다.

반면 맞은편에선 ‘정신질환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믿음, 부인주의(Denialism)가 있다. 이는 ‘시민적 권리’라는 명분으로 1960년대 정신질환자 수십만 명을 병원에서 내보낸 ‘탈수용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을 방치함으로써 더 큰 희생을 낳는다. 지은이는 이런 부인주의의 뿌리에도 역시 원초적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고 간파한다.

지은이는 “우리가 너무 늦게 깨달았던 위급성을 다른 가족에게 미리 알려 그들이 그 병과 싸우는 무기로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가족에게 증상이 발생하면 전문가들이 그렇지 않다는 확신을 심어줄 때까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것. 재빨리 행동하고 계속해서 행동할 것. 필요하다면 당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 거친 세상을 살아가려면 거친 충고가 필요하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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