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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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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어떻게 편집되나

가짜가 넘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법 <만들어진 진실>
등록 2018-11-24 16:52 수정 2020-05-03 04:29

씨앗 식품인 퀴노아는 2013년 ‘슈퍼푸드’로 인정받았다. 전세계에서 수요가 급증하자 이전보다 3배 이상 값이 올랐다. 가격 상승은 퀴노아를 경작하는 안데스 산지의 가난한 농부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며 처음엔 환영받았다. 그러다 ‘정작 지역민들이 수출 상품으로 가격이 높아진 퀴노아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출처 없는 소문이 퍼졌다. 언론들은 앞다퉈 ‘지역민들의 퀴노아 소비가 34% 급감’했다거나 ‘퀴노아 재배 지역에서 아동 영양실조가 증가 추세’라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퀴노아의 불편한 진실”로 포장된 뉴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건강식을 찾던 북미와 유럽에선 퀴노아를 먹지 않겠다는 선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 현상에 의문을 품은 경제학자들이 지역민들의 소비지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퀴노아의 가격 급등 이전에 이미 지역민들의 퀴노아 소비는 줄어들었고, 오히려 소득이 높아지면서 서구의 정크푸드 같은 식품의 구매 욕구가 늘었다는 것이다. 편집된 진실과 잘못 이해된 숫자들이 맥락 없이 꿰이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듯 진실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비즈니스 스토리텔링 작가인 헥터 맥도널드가 쓴 (흐름출판 펴냄)은 가짜뉴스가 판치고, 만들어진 진실이 우리를 현혹하는 시대에 어떻게 팩트(사실)를 파악하고 소비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저자는 하나의 사건, 사물을 구성하는 다양한 진실들을 ‘경합하는 진실’이라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덕분에 전세계 지식을 폭넓게 만날 수 있다’는 문장과 ‘인터넷 때문에 잘못된 정보와 증오의 메시지가 훨씬 더 빨리 확산된다’는 문장은 인터넷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설명하는 말이지만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인터넷에 대한 ‘경합하는 진실’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다. 내 의견은 남들이 알려준 내용과 내가 상상하는 내용을 끼워맞춰 만들어지기에 우리는 같은 뉴스를 보고도 난민 문제, 선거, 종교 등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일본의 편향된 역사교육과 닮은 이스라엘의 교과서 논쟁, 수십 년간 문구가 변해온 마약 묘사의 변천사 등을 진실이 편집되는 다양한 과정에 맞춰 설명하면서 만들어진 진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동시에 진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회와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실은 누군가의 메신저를 타고 역사·통계·예측 등의 이름으로 현실을 왜곡하고 편견을 퍼뜨리는 것으로 악용된다. 가짜가 넘치는 세상에서 진실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팩트를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하고 유통하는 다양한 방식을 알아야 한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우리를 기만하는 진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저자는 “경합하는 진실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좋은 방향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을 이끌 수 있지만 경합하는 진실을 가지고 우리를 오도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며 마지막으로 말한다. “의심하라, 물어보라, 요구하라.”

김미영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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