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누나를 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습하곤 너무 달라요.”
벨을 누르기 전 건축가 홍승석이 살짝 귀띔했다. 그는공사가 끝나고부터는 집주인 곽현화를 ‘누나’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클릭하는 코미디언 곽현화의 이미지는 핏이 ‘쩌는’ 운동복을 입고 덤벨을 들거나 짱짱한 힙라인을 강조하는 자세를 잡는 모습이다. 연예인 최초로 수학책을 집필했다거나(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발행인과 책 팟캐스트를 진행했다거나, 대학원에서 블록체인을 전공하고 있다거나, 반려동물의 의료비 계산과 관련한 스타트업을 준비한다거나 하는 그의 생산적인 활동은 화려한 이미지나 시끄러운 소문 뒤에 괄호로 묶인다.
“누나는 평소 생얼에 안경 쓰고 배낭 메고 털털한 모습으로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다녀요. 고양이랑 개, 친구를 좋아하고 책도 무지 좋아하고.”
<font size="4"><font color="#C21A1A"> 책을 읽다가 눈을 들면 팔달산이 </font></font>경기도 화성 행궁 담장과 이웃한 동네, 수원 팔달구 신풍동에 있는 곽현화의 집도 수더분한 분위기다. 주렁주렁 열매를 매단 감나무가 봉싯봉싯 웃음을 흘리는 골목에 접어들면 1970년대에 지은 2층 양옥집이 나타난다. 이전 주인이 바른 흰색 페인트를 뒤집어쓴 평범한 낡은 단독주택이다. 맨발에 청바지를 입은 곽현화가 강아지 순돌이, 고양이 만득이·만복이·공주와 함께 손님을 맞았다. 손님을 들이기에 앞서 집을 청소해야 한다며 잠시 기다려 달라 양해를 구했는데, 정작 현관에 들어서니 물건이 적당히 흐트러져 있는 것이 별로 치운 티가 안 난다.
홍승석·박재현 두 사람이 운영하는 삼아건축에 곽현화로부터 주택 리모델링 의뢰가 들어온 것은 올해 초. 서울 영등포의 20평대 아파트에 살던 곽현화는 지난해수원시 홍보 동영상을 찍기 위해 수원 곳곳을 돌아다니다 신풍동에 꽂혀버렸다. “팔달산을 마주하고, 어린 시절놀던 곳 같은 골목길이 남아 있고. 부동산에서 소개해준 첫 집이었어요. 39년 된 낡은 주택인데 곳곳에 숨은 공간이 많아서 재미있게 바꿔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세 번 둘러보고 딱 계약해버렸지요.” 석 달간의 공사를 거쳐 곽현화는 지난 6월 처음으로 갖게 된 ‘내 집’으로 이사했다.
처음부터 곽현화는 건축가들에게 분명한 조건을 제시했다. “나는 책이 많은데 책에 숨 막혀 사는 공간은 아니면 좋겠다.” “세련되지 않으면 좋겠다.” 건축가와 함께 찾아낸 콘셉트는 서재나 서점이 아닌 ‘책방’이었다. “책방은 책이 질서 정연하게 꽂힌 서점이나 장서를 일렬 배치한 서재랑은 느낌이 전혀 다르잖아요. 책에 손이 쉽게 닿을 수 있고, 책을 읽다가 눈을 들면 바깥 풍경이 보이고, 걸터앉거나 기대서 자유롭게 책갈피를 넘길 수도 있고, 책이 다소 무질서하게 툭툭 쌓일 수도 있는 그런 곳이 책방이라고 생각했어요.”(홍승석)
1층(27평)과 2층(23평)을 합쳐 50평(165.3㎡) 넘는 공간이 혼자 쓰기엔 좀 크다고 여겼는지 곽현화는 나중에 게스트하우스를 겸할 수도 있다며 1층과 2층의 용도를 확실하게 분리할 것을 요청했다. 1층은 부엌과 거실, 손님들 에게 내주는 방이 있고, 2층은 책방과 침실, 즉 곽현화만
의 공간으로 꾸렸다. 2층은 침실·욕실·드레스룸 등을 제외한 나머지 12평이 책방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나무 벽에서도 나는 책 냄새 </font></font>건축가는 팔달산 풍경이 잘 보이도록 책방 창문을 넓혔고, 벽 1개면과 창문 밑에 일자형으로 책을 놓도록 했다. 책 무게에 눌려 휘어지지 않도록 안에 금속을 보강한 나무판(너비 25㎝, 길이 4.6m) 3개를 한쪽 벽에 고정했고, 창문 밑에는 앉거나 누울 수 있는 낮은 책장을 놓았다. 더 많은 책을 보관하려면 나무판을 여러 개 더 달아야 했겠지만 그러면 책이 벽면을 가득 채워 답답해질 것 같아 공간을 비우고 그 아래엔 집주인이 자유롭게 책을 놓도록 했다.
벽에 고정된 서가를 들여다보면 대략 사회·정치 책은 윗줄, 최근 공부하는 블록체인·금융·수학 서적과 철학책이 두 번째 줄, 에세이나 페미니즘 서적, 좋아하는 사람이나 지인이 준 책은 아랫줄에 있다. 그가 좋아하는 만화책은 바닥에 탑처럼 쌓였다. “몇 권인지 안 세봐서 잘 모르겠다”는데 상당수의 책은 직립이기보다는 앞뒤 두 겹으로 쌓여 누워 있어 헤아리기가 힘들다.
책이 많은데도 공간이 여유롭게 느껴지는 것은 천장이 높기 때문이다. 곽현화가 처음 집을 샀을 때는 2층 천장이 평평한 천장재로 막혀 있었는데, 공사하면서 이를 뜯어내 본래 모습대로 천장을 높였다. 건축가는 맞배지붕 아래 콘크리트 보와 벽돌 일부를 그대로 노출하고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도료만 발라줬다.
2층의 재미는 책방 외에 다른 공간은 꼭꼭 숨어 있다는 점이다. 건축가들은 책방 한쪽 벽을 나무 합판으로 씌우면서 책방과 침실·드레스룸을 연결하는 문짝을 같은 나무로 감쌌다. 언뜻 보면 벽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손잡이가 달렸다. 붙었지만 숨어 있는, 벽이면서 동시에 문이다. 반전의 묘미가 있다.
침실 천장 역시 나무 합판으로 마감해 따뜻한 느낌을 줬다. 40년 전 쓰인 콘크리트·시멘트 등 옛 재료가 새 나무와 어울리는 모습이, 낡은 스웨터 팔꿈치를 근사한 천으로 덧대 더욱 소중해진 느낌이다. “재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책방에 스며든 책 고유의 냄새를 표현하고 싶어서. 창밖으로 숲이 바로 보이기 때문에 나무를 잘 쓰면 집 안과 밖이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 했지요.”(박재현)
곽현화는 자기 집과 잘 어울리는 책으로 를 꼽았다. 한적한 어촌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의 일상을 소박한 그림으로 담아낸 일본 만화책 는 팔달산 기슭의 이 집 분위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 주차장이 없어서 차도 버렸어요</font></font>[%%IMAGE5%%]“예전엔 집 안에 들어서면 뭔가 물건이 꽉 차 있어야 안락하다고 느꼈어요. 훨씬 큰 집으로 이사 왔지만 탁자·조명 같은 필수 가구와 소품만 빼고 많은 걸 버렸어요. 비어 있는 느낌, 바람이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요.”
주차장이 따로 없어 차도 버린 곽현화는 이제 서울에 갈 때면 광역버스를 타거나 수원역에서 기차를 이용한다. 이사 와서 가장 많이 바뀐 게 뭐냐고 물었다. “산책을 훨씬 많이 한다는 것, 잡일이 무척 많아졌다는 것. 아, 그리고 햇볕에 이불 말리는 재미를 알게 됐다는 거요.”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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