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 포테이토’(hot potato). 직역·의역 논쟁이 얼마나 복잡한지 보여주는 관용 표현 중 하나다. ‘뜨거운 감자’로 직역할 것인가, ‘까다로운 문제’로 의역할 것인가. 핫 포테이토가 영어의 관용 표현임을 아는 사람은(이미 한국에서도 관용 표현이 됐지만) 뜨거운 감자의 의미를 한국이 아니라 영어권의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는 걸 안다. 간단한 문장인 ‘러브 브링스 해피니스’(Love brings happiness)는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로 번역하겠지만, 문장이 나타내려는 앞뒤 정황을 따지면 “사랑하면 행복하다”는 결이 다른 번역이 나올 수도 있다. 이처럼 번역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단순한 옮김이 아니다.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서 의미를 해석하고, 알맞은 단어를 골라내 문장과 문장 사이를 채우는 역할을 한다. 원작의 가치를 높이면서 문학적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아야 좋은 번역이다.
은 텍스트 뒤에서 숱한 고민의 밤을 지새우는 번역가의 일과 삶을 다룬다. 과학 분야를 주로 번역해온 노승영 번역가, 스릴러 소설을 주로 번역해온 박산호 번역가가 의기투합해 썼다. 노승영은 “단순히 이 언어를 저 언어로 바꾸는 것만이 번역가의 일이 아님을 밝혀두고 싶었다”면서 “번역을 하다보면 언어에 대해, 문화에 대해, 균형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노승영이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를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스미스의 번역을 “내용을 크게 누락하지 않으면서도 원문에 종속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한다. “아직 언어로 표현되지 않은 어떤 플롯을 한강은 한국어로 번역했고 스미스는 영어로 번역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어느 시점부터 작가와 번역가는 대등한 존재가 된다.”
번역가는 책의 가장 성실한 독자이자 열렬한 독자다. 자신이 다루는 텍스트를 읽고 또 읽는다. 박산호는 “작가와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하며 한 언어와 다른 언어 사이에 일어나는 간극을 메우기 위해 줄기차게 매달린다”고 했다. 노승영이 “번역은 복원”이라고 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번역은 텍스트에서 출발하지만 텍스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한다. 말하자면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상태, 인물과 사건과 배경이 존재할 뿐인 무정형의 상태에 언어의 옷을 입히는 작업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작가를 일종의 번역가로 볼 수도 있고 번역가를 일종의 작가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흔히 잘못된 번역을 지적하는 ‘번역투’에 대해서도 노승영은 생각이 좀 다르다. 충분한 고민으로 짜인 번역투는 한국어를 확장하는 실험 무대가 될 수 있다는 견해다.
번역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한다고 보는 만큼 인공지능 알파고 시대를 맞는 마음가짐도 다르다. 번역가들은 기술적으로 진보하는 기계 번역에 맞서 더욱 인간적인 번역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박산호 번역가는 다짐한다.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번역이란 아마도(?) 기계는 가질 수 없는 풍요로운 정서와 상상력을 갖춘 번역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더욱더 인간다워지기로 했다.”
김미영 문화부 기자 instyle@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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