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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민낯을 보라

아룬다티 로이의 르포르타주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등록 2018-05-03 06:15 수정 2020-05-03 04:28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택은? 영국 여왕 일가가 사는 버킹엄궁전을 제외한다면, 답은 인도 뭄바이의 27층짜리 주거용 빌딩 ‘안틸라’다. 세계에서 네 번째 자산가로 꼽히는 무케시 암바니는 아내와 자녀 셋을 위해 1조1천억원을 들여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집을 짓고 대서양에 있다는 전설의 섬, 안틸라로 이름 붙였다.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릴라이언스는 석유화학·석유 등 에너지산업부터 학교, 신선식품 소매업, 미디어산업 등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초국적 기업이다.

사회운동가이자 소설가인 아룬다티 로이는 이 화려한 건물 앞에 서서 “(안틸라가) 토양 속 양분을 게걸스레 빨아먹고 그것을 연기와 황금으로 바꾸어놓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런 상상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꿰뚫어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지난 20여 년간 인도는 많은 것을 민영화해 눈부신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부의 쏠림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지방자치단체(주정부)들은 ‘성장’ ‘개발’ ‘공익’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수백만 명의 토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해 경제특구·댐·도로·공장을 세웠고, 땅에서 밀려난 이들은 도시 빈민으로 전락했다.

인도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종교·민족·카스트 간 갈등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왔다. 2002년 무슬림 수천 명이 희생당한 구자라트 학살 사건의 경우 당시 주총리인 나렌드라 모디는 종교 갈등을 방치·조장함으로써 힌두교도의 지지를 등에 업고 2014년 인도 연방 총리에 당선됐다. 파키스탄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카슈미르는 군사 밀집도에서 단연 세계 으뜸인 지역인데, 군인들은 파키스탄에 대한 적대감과 공포를 이용해 주민을 약탈·성폭행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아룬다티 로이는 재단·문화사업·연구소·장학사업 등 대기업이 펼치는 각종 ‘선행’이 어떻게 민영화에 기여하고 풀뿌리 운동에 침투하는지도 통렬하게 꼬집는다. 록펠러·카네기·포드재단이 후원하는 외교협회는 ‘전 지구적 기업 지배’ 전략을 짜는 기관과 다름없으며, 외교협회는 월드뱅크·국제통화기금(IMF)의 이념적 지지대로서 세계화의 첨병 구실을 한다. 기업출연재단들은 사회과학·예술 부문의 자금줄로서 각종 강좌와 장학금을 미끼로 제3세계 엘리트들을 유혹한다. 인도 중산층도 이런 장학금 덕분에 자녀를 미국에 유학 보내고, 서방의 친기업주의 사고를 습득한 젊은이들은 관료, 경제학자, 기업 변호사 같은 엘리트로 자라나 인도 경제를 초국적 기업에 개방하는 데 기여한다.

(문학동네 펴냄)가 마무리될 때인 2014년은 ‘오큐파이(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미국을 뒤흔들 때였다. 지은이는 “우리 싸움의 목적은 체제를 수선해보겠다고 찔끔찔끔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갈아엎는 것”이라며 오큐파이 투쟁을 환호한다. 하지만 그 뒤 오큐파이는 별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고, 2년 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지은이의 바람은 헛된 꿈에 불과했을까? 옮긴이는 인도의 또 다른 여성 사상가 반다니 시바의 말로 답을 대신한다. “실패는 당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을 때, 그때 있는 거예요. 올바른 행위, 그것이 평화입니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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