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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신화 ‘MB 드라마’

이명박의 드라마 <야망의 세월> <영웅시대>와

이명박의 영화 <공범자들>
등록 2018-03-27 17:39 수정 2020-05-03 04:28
영화 《MB의 추억》의 한 장면. 스튜디오 느림보 제공

영화 《MB의 추억》의 한 장면. 스튜디오 느림보 제공

KBS 2TV에 이라는 이름의 화제의 주말드라마가 있었다. 1990∼91년에 방송된 이 드라마는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해 30대에 건설회사 사장이 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방영 당시 45%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이명박은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으로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명박을 모델로 한 드라마의 주인공 박형섭은 ‘개천에서 난 용’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노력파에 수재로 명문대학에 입학해 학생회장까지 한다. 그러나 학생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한 그는 중동 건설·댐 건설 등 굵직한 사업을 도맡아 이끌며 입지전적 성공을 거둔다. 그는 1970∼80년대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주역이 된다.

드라마에서 박형섭은 성공한 기업가이자 정의로운 영웅으로도 그려진다. 그 덕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호감이 크게 올라간다. 여기엔 박형섭 역을 맡은 당대 인기배우 유인촌씨의 공도 적지 않았다(박형섭의 아내 역은 전인화씨였다). MBC 농촌드라마 에 출연해 ‘국민 아들’로 급부상한 유인촌은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박형섭이라는 인물에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까지 불어넣었다. 이 작품으로 유인촌은 1990년 KBS 연기대상을 거머쥐었고, 이명박과 기나긴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오르자 서울문화재단 대표, 대통령이 되자 문화체육관광부 초대 장관에 임명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다.

과 샐러리맨 신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공기를 다룬 드라마 <영웅시대>(왼쪽)와 <야망의 세월>. 각 드라마에서 유동근과 유인촌이 이 전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MBC 제공/ KBS 제공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공기를 다룬 드라마 <영웅시대>(왼쪽)와 <야망의 세월>. 각 드라마에서 유동근과 유인촌이 이 전 대통령 역할을 맡았다. MBC 제공/ KBS 제공

은 1987년 시청률 70%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MBC 드라마 을 잇는 ‘야망 시리즈’다. 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박태준(남성훈)과 박태수(이덕화) 형제를 중심으로 남자들의 성공과 야망을 그렸다. 태준은 서울 일류대학에 다니는 수재형 엘리트고, 태수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굴지의 건설업체를 설립해 큰 성공을 거두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의 첫째 아들 태준과 둘째 아들 태수의 매력을 합쳐놓은 인물이 바로 의 박형섭”이라고 말했다.

의 주인공인 ‘야망의 남자’ 박형섭은 직장인들의 우상이 되었다. 이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은 요인을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인 ‘1990년대 초’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과 가난을 체험한 세대의 꿈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다. 오로지 성공이었다. 그런 성공 신화를 체현한 롤모델이 필요한 시대였다. 박형섭의 실존 인물인 이명박은 산업화 시대를 일군 ‘성공’의 표상으로 적합해 보이는 인물이었다.

“시청자는 드라마와 현실을 동일시했다”

이명박은 어떻게 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계간지 (2018년 봄호) ‘이명박’이라는 글에서 “1987년에 시작된 민주화의 소름 끼치는 두 얼굴이 나온다.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내가 할 일은 내 개인과 내 핏줄의 부귀영화이다. 그게 보장되는 사회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며 “그런 사회 안에서 각자 알아서 자기의 이익을 최대한 챙겨갈 수 있고 그를 통해 사회 전체가 잘살게 되는 게 1987년의 정신”이라고 썼다. 결국, 대통령 직선제라는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한국 사회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 연대하는 경제적·사회적 민주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각자도생과 무한경쟁이 사회의 이념이 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머물게 됐다. 이명박은 그 아수라장 속에서 가장 화려한 빛을 발한 성공의 화신이었다.

드라마 덕분에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된 이명박은 자서전 (1995)에서 이 드라마를 회상했다. “나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이 TV에 방송될 때의 일이다. 그 드라마에서는 내가 결혼 후에도 대학 때 만나던 여자를 계속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와 현실을 동일시해버렸다. ‘당신 남편이 저렇게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데 괜찮으냐?’라는 전화가 아내에게 심심찮게 걸려왔다.”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은 이명박에게 ‘야망의 시대’를 열어주었다. 그는 이후 ‘컴퓨터 달린 불도저’(컴도저) ‘샐러리맨의 우상’ 등으로 불리며 1992년 정계에 입문한다. 그는 이 무렵 내놓은 자서전 에 야간상고를 나온 가난한 학생이었던 자신이 거대 건설회사 대표에서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배고픈 MB의 끝없는 탐욕

또 한 편의 이명박 드라마가 있다. 2004년 MBC에서 방영된 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었다. 이 드라마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고도성장기 기업의 중심에 있던 이들의 삶을 다뤘다.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대철을 유동근이 연기했다. 박대철은 전 세기건설 회장이자 국회의원으로 나온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의 얘기지만, 중심축은 기업가 박대철의 활약상이었다. 방영 내내 실존 인물 미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00부작으로 기획된 는 70부를 끝으로 조기 종영했다.

이명박의 드라마 과 에 대해 한민 문화심리학자는 책 에서 “는 산업화의 영웅들을 그린, 10여 년 전 의 확장판이었다. 전작보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에게 ‘영웅’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하며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썼다. 두 번째 드라마가 끝난 지 3년 만에 이명박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 됐다. 도곡동 땅, 다스, BBK 등 그를 둘러싼 온갖 잡음이 이어졌지만, ‘경제 살리기’에 대한 대중의 높은 기대 속에서 대권을 잡았다.

드라마가 이명박 신화를 만들어냈다면, 영화는 그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명박을 다룬 첫 영화는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2년에 개봉한 김재환 감독의 《MB의 추억》이다. 영화는 ‘친서민 경제대통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선거 유세를 하는 2007년 당시 이명박을 보여준다. 영화엔 유세장에 지지자로 나온 유인촌이 “ 보셨습니까? 우리는 영웅이 필요합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에 자주 나오는 건 이명박이 먹는 장면이다. 반복해 “이명박은 배고픕니다”라는 내레이션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준다. 여전히 배고픈 이명박의 모습은 끝없는 탐욕을 의미한다.

김재환 감독은 “영화는 이명박뿐 아니라 그 인물에 투영된 우리의 욕망을 보여준다. ‘너희를 잘살게 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찍어줄 수 있고 받아줄 수 있는 시대였다. 우리 모두 그런 시대를 함께 살았다”고 회고했다.

희대의 캐릭터로 남은 이명박

2017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도 이명박 주연작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시작된 방송 장악 음모와 여기에 가담한 공범자들의 실체를 밝히는 작품이다. 영화는 주로 공범을 화면에 비추지만, 누가 주범인지는 우리 모두 안다. 주범은 영화 제일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영화를 만든 최승호 PD(현 MBC 사장)는 오랜 잠복 끝에 가까스로 마주친 이명박에게 “언론을 망쳤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라고 묻는다. 이명박은 물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최 PD가 “김재철 사장이 와서 MBC를 많이 망가뜨렸어요”라고 외치지만, 이명박은 “그건 그 사람한테 가서 물어보세요”라며 책임을 회피할 뿐이다.

샐러리맨의 우상에서 ‘탐욕의 결정체’가 된 이명박. 3월23일 새벽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되며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이름이 됐다. 한때 야망이었던 인물의 신화는 사라지고, 탐욕만을 좇은 희대의 잡범 캐릭터가 우리 곁에 남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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