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1921~1968)이 돌아간 지 올해 반백 년입니다. 그가 한밤중 버스에 치여 횡사하던 해,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해 이승복 등 일가족이 숨졌고, 신영복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일으킨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긴 옥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나라 밖에서는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 침공해 ‘프라하의 봄’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시는 나의 닻[錨]이다.” 어둡고 거세게 일렁이는 한바다 같은 세상에서 시인은 시라는 닻을 내려 무게중심을 잡고 파도를 버텨냈습니다. 닻은 바다의 밑바닥에 닿습니다. 바닥에 닿는 것, 한자말로 도저(到底)입니다. 김수영을 ‘도저한 시인’이라고 이르는 까닭입니다.
‘시인들의 시인’ 김수영의 전집(이영준 엮음, 민음사 펴냄)이 새로 나왔습니다. 1981년 초판, 2003년 개정판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전집은 점점 결정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시는 2003년 개정판 출간 뒤 발굴된 4편과 미발표작 3편, 미완성 초고 15편이 더해졌습니다. 시의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던 시인의 의도를 되살렸고 명백한 오기는 바로잡았습니다. 새로 찾아낸 산문 22편, 일기 21편, 편지 1편 등도 추가되었습니다.
‘시인들의 스승’ 김수영을 가리키는 말은 많습니다. 꼽아보겠습니다. 준열, 유연, 양심, 절규, 젊음, 감각, 현재…. ‘뜨거운 상징’으로 살다 김수영처럼 40대 후반 안타까운 나이에 돌아간 문학비평가 김현(1942~1990). 그는 김수영 시선집 (초판 1974년)에 실린 평론 ‘자유와 꿈-김수영의 시세계’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의 시가 노래한다고 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는 절규한다.” 김현이 보기에, 김수영의 시는 ‘자유’라는 구심력으로 모여 있으되, 자유 자체를 말하기보다는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여건’에 온몸으로 맞서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건’이란 국가권력은 물론 당대의 부조리한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전집에 새로 담긴 시·산문들에서도 김수영의 시혼(詩魂)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추려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불같은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밤만은 그러한 소리가 귀에 젖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불이 있다면/ 아니 저 등불이라도 마시라면/ 마시고 싶은 밤이다”(‘그것을 위하여는’, 1953년 10월) ““김일성만세”/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김일성만세(金日成萬歲)”’, 1960년 10월) “금강산은 너무 멀지 우리는 옆의 집도 못 가는데/ 식모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서울 안에서는/ 절망의 비어홀밖에 볼 게 없지 서울을 태백산으로/ 옮깁시다 바랭이 바랭이 참바랭이 들숲/ 속으로 옮깁시다 변절자나 패잔병들처럼/ 알제의 변절자나 태평양의 패잔병들처럼/ 소금만 핥고 사는 법을 배웁시다”(‘태백산맥’, 1966년 8월)
김수영이 내린 ‘닻’을 감아올리는 데 이 전집이 큰 보탬이 될 줄 믿습니다. 손 닿는 데 두고 틈틈이 펼쳐 볼 때, 김수영의 시와 산문은 훌륭한 ‘문학적 각성제’입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야말로 시인이라고 그는 보았습니다.
전진식 교열팀장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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