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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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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죽음’을 찾아서

‘죽음의 문화’를 한 단계 높이기 위한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등록 2018-01-27 14:46 수정 2020-05-03 04:28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은 말기 환자 ‘마그다’의 행복한 죽음을 다룬다. 심장이 멎기까지 그의 곁엔 정성스럽게 돌봐주는(cure가 아닌 care) 의사 ‘훌리안’과 새로운 사랑 ‘아르투르’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마그다의 주체적 태도와 피서지까지 ‘왕진’ 오는 의사의 헌신이었다. 저 정도면 죽어도 소원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마그다는 ‘존엄사’를 맞았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죽는 이가 28만 명. 이 중에 75%가 병원에서 죽는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다가 임종하는 환자는 매년 3만~5만 명이다. 사람들의 희망 사항과는 동떨어진 현실이다. 성인에게 여론조사한 결과(2014년) 병원에서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16.3%였고, 57.2%가 집에서 삶을 마감하기 원했다.

병원에서 죽는 이들의 비율이 높은 것은 유독 한국적인 상황이다. 미국은 9.3%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0년 리엔재단(싱가포르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이 발표한 ‘임종의 질’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위독한 환자가 의료기술 혜택을 누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들이 병원에서 죽다보니 고통의 기간을 늘리는 연명치료가 적용되는 일이 많아졌다. 좀더 많은 사람이 마그다와 같은 ‘이상적인 죽음’을 맞을 순 없을까.

30년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 허대석 의사는 에서 죽음을 둘러싼 환자-가족-의료진의 갈등, 법·제도와 현실의 괴리 등을 소개한다. ‘제발 죽게 해달라’며 대통령에게 편지까지 보냈던 전신마비의 프랑스 20대 청년. 아들의 소원대로 진정제로 안락사를 시키려는 어머니의 시도가 실패하자 결국 의사는 어머니를 도와 인공호흡기 전원을 끔으로써 ‘범죄자’가 돼야 했다. 미성년자의 경우 당사자와 가족의 판단이 엇갈릴 경우 어느 쪽을 따라야 하는지를 둘러싼 법적 문제도 있다. 죽기를 원하는 18살 난치병 환자가 미성년자라고 해서 부모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지 논란이 빚어진 미국 사례도 있다. 의료진의 판단이 가족 의견보다 중시되는 일도 있다. 지난해 영국에선 희귀병을 앓는 11개월 아기를 둔 부모가 생명연장 장치를 계속 부착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법원은 부모가 반대함에도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판단에 손을 들어줬다.

한국에서도 2월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됨에 따라, 말기 환자가 더 이상 치료로 호전되거나 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가 1명에게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 경우, 연명의료를 중단 또는 유보할 수 있게 됐다.

지은이는 말기와 임종기의 구분이 쉽지 않고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 등 연명의료결정법이 보완돼야 할 지점을 짚는다. 법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확보·존중하느냐의 문제다. 환자가 자신의 병 진행 상태를 잘 인지해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은이는 죽기 전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들려줄 메시지를 미리 녹음한 의사의 사례를 들며 “죽음이 삶의 완성이 되는 길”을 찾자고 말한다.

이주현 문화부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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