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은 달걀이 또 다른 달걀을 만드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가 1871년 에 쓴 이 문장은 다가올 현대 공장식 축산을 예고했다. 같은 의미로 젖소는 우유를 짜내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돼지도, 거위도, 기니피그도 각각 삼겹살과 구스다운과 백신을 만드는 방편으로 전락했다. 식탁에서 옷가게에서 약국에서 우리는 이러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방편들의 고통을 공감하기 시작하면, 동물 지배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도사믹스견 넘어 ‘슈퍼 개’ 등장?</font></font>‘나라’는 경기도 남양주에 살던 개다. 나라가 사는 곳은 개농장이다. 개를 방편으로 삼아 개고기를 생산하는 곳이다. 공장에서 연료를 투입해 기계를 돌리고 기술을 개발하듯이, 이곳도 마찬가지다.
개농장의 기본은 ‘뜬장’이라는 사육 장치다. 철제 막대로 얽어놓은 사육상자인 뜬장은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게 특징이다. 철망 사이로 개가 배설하는 똥과 오줌이 밑으로 빠지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야 청소가 쉽다. 여기서 태어나 평생을 살다 도살되는 개들은 대개 관절염을 앓는다. 몸의 무게가 고루 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새끼는 시시때때로 철망 사이로 발이 빠진다. 뜬장은 비좁다. 한 마리 개가 기지개를 켜고 한 바퀴 돌기에도 버겁다. 그래서 개들이 처음 뜬장 밖으로 나왔을 때 비틀거린다.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뜬장 속에서 개들은 짠밥을 먹는다. 개가 기계라면 짠밥은 연료인 셈이다. 주변 학교나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거저 얻어 만들므로 ‘저렴한 연료’다. 공장의 기계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최고 효율의 기계로 교체된다. 개농장에서는 품종교배가 혁신이다. 개 ‘나라’도 품종 교배로 태어났다. ‘맛 좋은’ 누렁이와 덩치 큰 일본 도사견을 교배한 ‘도사믹스견’의 후손이다. 전세계에서 대한민국 개농장에만 사는 이 ‘품종’은 덩치가 워낙 커서 40~50kg이 넘고 번식력도 월등하다. 나라의 나이는 두 살. 개의 임신 기간은 두 달 남짓인데, 그사이 벌써 서너 번 출산했다. 물론 도사믹스견이 품종으로 ‘고정’된 수준은 아니지만, 만약 개가 축산업으로 인정된다면 도사믹스견을 넘어선 ‘슈퍼 개’(super dogs)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런 개농장의 모습은 근대사회 이후 진화해온 공장식 축산의 초기 버전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탄생한 공장식 축산은 최소의 비용과 면적으로 동물을 빠르게 성장시키면서, 높은 질병 저항력과 번식률 그리고 뛰어난 고기 맛을 만들어내는 데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초기 공장식 축산에서 동물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았지만, 지금의 공장식 축산은 진화했다. 하루 뒤 잡아먹을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 동물의 삶의 질, 즉 ‘동물복지’를 고려한다. 한국을 포함해 대다수 나라에서 법과 제도로 동물복지를 규율한다. 닭이나 돼지를 도살하더라도 전기충격보다 고통이 적은 이산화탄소를 투입한다. 죽기 전 고통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배려’다. 소, 닭, 돼지 등이 사는 사육장의 마리당 면적도 법으로 정한다. 동물복지에 앞선 유럽연합은 알 낳는 닭(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을 일찍이 금지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스위스, 산 바닷가재 요리 금지</font></font>현재 동물보호의 핵심 논리는 ‘고통’의 경감에 있다. 맨 처음 동물의 고통에 주목한 학자는 200년 전에 살았던 제러미 벤담이었다. 공리주의자인 그는 쾌락 또는 고통이 없는 상태 자체를 선으로 받아들였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에게 사고할 능력이 있는가, 또는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 1789) 고통받는 존재를 해코지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얘기다. 영국이 일찍이 동물보호 제도가 발달한 것도 벤담의 선구적 사상과 관련이 깊다.
벤담을 계승해 현대 동물운동의 방아쇠를 당긴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철학자 피터 싱어다. 1975년 1판이 나온 은 현대 공장식 축산의 다양한 사례를 검토하며 공리주의 이론을 종차별주의 비판으로 발전시킨다. 개농장에 사는 ‘나라’와 비견되는 사례가 송아지 고기다. 근육이 발달하면 고기가 질겨지기 때문에 송아지를 칸막이에 나눠 가둬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철분이 든 먹이를 제한함으로써 고기의 색깔을 조정한다. 그러고서 송아지는 16주째 생을 마감한다. 피터 싱어는 송아지가 고통을 느낀다면, 우리는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고통을 받는 존재는 평등하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면 도덕적 공동체 안에 포함해야 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성과 흑인은 도덕적 공동체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흑인 노예를 회초리로 때려 고통을 주어도 불법이 아니었다.
피터 싱어는 고통을 느끼는 능력(감응력·sentience)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도덕적 지위가 결정된다고 말한다. 그럼 어떤 존재가 감응력이 있을까? 시인 안도현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고 했는데, 피터 싱어라면 연탄재는 발로 차도 괜찮다. 연탄재는 고통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은 물론 영장류, 개와 고양이 등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발로 차면 비도덕적 행위다. 더 파고들면 문제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물고기는? 아니면 바닷가재는? 바퀴벌레는 또 어떤가?
한국의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척추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중추신경계가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연탄재는 물론이고 문어(연체동물)나 바닷가재(절지동물)는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현대과학은 비척추동물도 고통을 인지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일부 국가는 최신 연구 성과를 법과 제도에 반영한다. 스위스는 최근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탈리아 법원은 산 바닷가재를 얼음물 속에 둔 행위에 벌금형을 내렸다.
동물보호의 이론과 제도는 이렇게 공리주의적 관점에 따라 발전해왔다. 생물학자들은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지표 호르몬을 살펴보면서, 감금 환경에서 동물의 고통을 측정한다. 전세계 동물실험실에서는 3R 원칙이 준용된다. 개체수를 줄이거나(Reduction), 고통을 완화하거나(Refinement), 아니면 다른 실험으로 대체함으로써(Replacement) ‘고통의 총량’을 줄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거울 뉴런’과 동물복지</font></font>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발은 2009년 쓴 에서 흥미로운 고찰을 했다. 우리는 줄타기 곡예사를 보면 똑같이 긴장한다. 주사로 팔을 찌르는 장면을 보면 내 팔도 근질근질하다. 유튜브에 올려진 동물 학대 영상을 보면 고통스러워 눈을 질끈 감는다. 프란스 드발은 개체와 개체 간의 감정 전이는 몸에서 가장 먼저 자동으로 이뤄진다고 말한다. 의식적으로 ‘결정’해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자동 공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최근 ‘거울 뉴런’의 발견으로 물리적인 우군을 얻었다.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실험실의 원숭이에게서 발견된 이 독특한 뇌세포는 나와 타자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이 뇌세포는 실험 대상 원숭이 자신이 땅콩을 받을 때뿐만이 아니라 다른 원숭이가 땅콩을 받을 때도 활성화되는 게 관찰됐다. 따라서 보는 것과 하는 것의 구분이 없다. 나와 타자 사이에 자동적 연결회로가 있는 것이다.
나는 현대 동물보호 체제를 ‘고통 공감의 체제’라고 생각한다. 동물의 고통과 부르짖음을 보고 고통받는 인간이 동물을 구조하면서 동물복지를 확장시킨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3R 원칙은 실험실에서 고통받는 쥐들의 비명이 연구원들에게 불편했기 때문에 확립됐다. 현대 동물원이 생태동물원으로 개선된 것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반복적으로 횡단하는 코끼리를 돌보는 사육사와 관람객이 불편해서다. 평화와 인도주의, 동물 권리 등 고매한 이상에 감복해 동물을 구원한 것이 아니다. 그냥 우리의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직 은폐된 동물 학대와 동전의 앞뒷면을 이룬다. 전근대사회에서 우리는 고기를 마을과 시장에서 구했다. 동물의 고통을 접할 수 있었고 자주 봐왔던 동물이 식탁에 올랐으니, 죄의식과 미안함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축산은 고기의 생산을 비가시권에 있는 공장식 농장으로 돌려놓았고, 우리는 불편함에서 해방되어 최대의 육식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통찰은 인간과 동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겉으론 인간이 동물을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물의 고통은 우리 몸에 내장된 ‘공감 회로’를 더욱 증폭해 종국에는 사회의 변화를 일으킨다. 현대 동물운동이 공장식 농장이나 동물실험실을 영상으로 찍어 폭로하는 것도 무력하거나 분노에 찬 동물의 눈빛이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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