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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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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위하는 여자

<자밍아웃> ‘익스플로러 키트’ 등 여성 자위 다룬 영화와 안내서…

자신의 몸 탐구하는 ‘보디 페미니즘’
등록 2018-01-27 10:21 수정 2020-05-03 04:28

“할머니 자위해요?”

“젊을 때 했지.”

“언제 했어요?”

“할아버지가 해준 게 부족했을 때 했지.”

여성의 자위를 소재로 한 단편 다큐멘터리영화 의 한 장면이다. 81살 할머니와 ‘자위 토크’를 하는 손녀는 이 다큐를 제작한 김예지(24)씨다. 김씨는 이 다큐에서 “자위 경력 18년차”라고 당당하게 ‘커밍아웃’한다. “5살 때 자위를 하다 엄마에게 들켜 많이 혼났어요. 그때 기억이 아직까지도 나요. 그 뒤로 수치심과 죄책감, 자기혐오를 느끼며 자위를 몰래 했죠. 대학 들어가서야 (자위를) 해도 되는구나 알았어요.”

<font size="4"><font color="#C21A1A">“섹스 이야긴 해도 자위는…”</font></font>
여성의 자위를 소재로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영화 <자밍아웃>의 한 장면. 김예지 감독 제공

여성의 자위를 소재로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영화 <자밍아웃>의 한 장면. 김예지 감독 제공

김씨는 다큐를 만들며 가족, 친구들과 자위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나눴다. “친한 친구들과 섹스 이야기까진 해도 자위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저 혼자만 자위하는 여자인 줄 알았어요. (웃음) 할머니의 자위 경험을 듣고 무척 놀랐어요. 그런데 할머니도 증조할머니에게 들켜 혼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질감을 느꼈어요. (할머니와 나는) 대대손손 혼나는 놀이를 한 거예요. (웃음)”

김씨는 할머니와 친구들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얻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여성도 성욕이 있고 자위를 할 수 있는데” 할머니 때나 지금이나 여성의 자위는 툭 터놓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예지씨처럼 사회적으로 터부시돼온 여성 자위에 대한 금기를 깨는 또 다른 여성들이 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 박연진(26)씨는 지난해 텀블벅 크라우드펀딩에서 여성 자위 안내서 ‘익스플로러 키트: 내 몸을 탐구하는 시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익스플로러 키트’는 여성들의 자위에 대한 이야기, 자위 방법, 자위 기구 정보 등을 담은 책이다. 이 프로젝트에 목표금액의 681%인 2400여만원이 모였다. 후원에 참여한 이들은 1251명이다. 박씨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분들이 후원했다. 여자친구랑 보고 싶다고 한 남성도 있고 친구나 동생에게 선물하려고 신청한 여성도 있다. 다들 누구와 자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없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도 몰라 답답해했다”고 말했다. 더욱이 자신의 성기를 본 적이 없고 오직 여성에게 쾌감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클리토리스를 잘 모르는 여성이 너무나 많았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오르가슴 방정식 풀기 위해 꼭”</font></font>

박씨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위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그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여성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위를 한 내가 비정상인 줄 알았다”거나 “남자친구와 하는 섹스보다 자위가 더 좋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자위는 자신의 몸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오르가슴이라는 방정식을 풀기 위해 자위는 꼭 떼고 와야 할 구몬수학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요.”(27살 김모씨) “나 자신이 뭘 원하고 뭘 좋아하는지 알고 솔직하게 말하는 건 저 자신에게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도 분명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27살 정모씨)

자위하는 여성들은 유별난 소수가 아니다. 지난해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코리아가 서울과 6개 광역시에 사는 만 19~64살 성인 남녀 1천 명에게 조사한 ‘대한민국 자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여성의 70%, 남성의 98%가 자위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자위에 대한 인식은 성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자위에 대해서 응답자의 78%가 ‘이해되고 수용되는 분위기’라고 했지만, 여성의 자위는 70%가 ‘이해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사회적으로 남성의 자위는 자연스러운 성욕 표출이라며 묵인해주지만, 여성의 자위는 엄격한 성도덕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여성이 성욕을 드러내면 문란하고 밝히는 여자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이때 성도덕은 여성을 억압하는 장치가 된다.

여성학자 벨 훅스는 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성차별주의적 사고를 주입받는다. 즉 성욕과 성적 쾌락은 늘 그리고 오로지 남성의 전유물이며 여성으로서의 덕목을 지니지 못한 여성들이나 성적 욕구나 갈망을 드러내는 거라고 배운다. 성차별주의적 사고는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로만 구분하며 여성이 건강한 성적 자아를 구축할 만한 토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여성의 성을 억압하기 위해 아프리카 소말리아 등에서는 대부분의 소녀에게 사춘기 전후로 클리토리스를 잘라내거나 꿰매버리는 할례 시술을 한다. 어린아이를 ‘순결한 여성’으로 묶어두려는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자기 성기를 보고 그리기”</font></font>
손경이씨와 그의 아들이 자위를 이야기하는 ‘엄마와 아들의 자위 토크’ 화면(위). 엄마와 아들의 자위 토크 유튜브 화면 갈무리

손경이씨와 그의 아들이 자위를 이야기하는 ‘엄마와 아들의 자위 토크’ 화면(위). 엄마와 아들의 자위 토크 유튜브 화면 갈무리

‘익스플로러 키트’ 프로젝트의 감수 작업을 도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위촉 전문강사 손경이(50)씨도 자위를 커밍아웃한 여성이다. 그 덕에 붙은 별명이 ‘자위 대모’란다. 지난해 손씨와 그의 아들이 출연한 닷페이스의 ‘엄마와 아들의 자위 토크’ 영상은 유튜브 조회 23만 회를 넘겼다. 영상에서 손씨는 아들과 서로의 자위 경험을 이야기하며 아들에게 “집에 자위용 수건이 따로 있다” “크리스마스 때 자위 기구를 선물하자”고 제안한다. 손씨는 “아들이 6살 때부터 성교육을 했다. 우리 집에서는 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교육의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8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플레져랩’을 연 곽유라(30) 대표는 남성 중심의 음습한 섹스 토이숍이 아닌, 세련되고 감각적인 여성 친화적 성인용품 공간을 만들고 있다. 매장을 찾는 고객의 70% 이상이 20∼30대 초반 여성이다. “20대 때 외국의 섹스 토이숍을 갔어요. 그곳은 한국과 확연히 달랐어요. 여성들이 주요 고객이었고요. 한국과 외국의 차이가 커서 좀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업을 하며 여성도 성 주체로서 자신의 몸을 알고 성감대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성인용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처럼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탐구하는 것을 ‘보디 페미니즘’이라 한다. 보디 페미니즘이 퍼지며 지난해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으로 주목받는 생리컵 사용 후기를 이야기하고, 여성에게 흔한 질환인 질염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등 여성의 몸과 건강에 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보를 전하는 프로그램인 온스타일의 가 주목을 받았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과도한 성형이나 다이어트에 집착하게 하는 여타 여성 리얼리티 프로그램과는 질적으로 달랐기 때문이다. 이지윤 PD는 프로그램 내용을 모은 책 의 서문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갖고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건강을 찾는 것은 물론 자신감도 높아지고 자존감도 형성될 것”이라고 썼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도 “여성학 개론 수업 때 처음 내주는 과제 중 하나가 자기 성기를 보고 그리고 느낀 점을 적어오라는 것이다. 그게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시작점이 된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나’를 섬세하게 탐색하는 첫발</font></font>

부끄럽거나 죄스러운 것이 아님에도, 이제껏 입 밖으로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여성들의 몸과 성에 대한 이야기. 그 벽을 깨고 ‘난 자위하는 여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성들. 이런 의식의 변화는 ‘내가 내 몸의 주인’이라는 명제에서 시작된다. 여성들은 그렇게 ‘나’를 섬세하게 탐색하는 첫발을 떼고 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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