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다운 고찰에서 사색
완주군은 전주시와 이웃한다. 사방으로 품은 지형이다. 그렇다고 전주 옆에 붙은 여행지 정도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완주엔 숨은 보석이 많다. 그 가운데 화암사는 원석에 가까운 여행지다. 절집다운 절집이다. 스스로 돌아보거나 돌볼 시간이 필요할 때 아낌없이 권하고 싶다.
그 매력은 안도현 시인의 ‘화암사, 내 사랑’만 봐도 알 수 있다. 화암사에 반해 쓴 시인데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라고 끝맺는다. 그 아늑한 품에 안기면 절로 그런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가는 길을 안다고 찾아가기 쉬운 사찰은 아니다.
화암사는 완주군 북쪽 경청면 불명산 기슭에 있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부터 굽이굽이다. 가을 들녘과 시골 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주차장에 다다랐다고 끝일까. 거기서 산길을 정처 없이 걷고 계곡 옆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른다. 폭포 위쪽으로 돌아 한 걸음 더 디뎌야 비로소 화암사다. 땀 냄새 시큼한 길 같겠지만 그 반대다. 나무와 숲과 계곡에 몸과 마음을 씻는 여정이다. 그리 우화루가 보일 때쯤 뒤늦게 일주문 하나 없는 사찰이란 걸 안다.
극락전은 우화루 옆 돌계단을 통한다. 극락전과 우화루, 명부전과 적묵당은 ‘ㅁ’자 마당을 꽉 채워 둘러 안았다. 눈을 감고 바람과 풍경 소리 듣노라니 세상 시름은 역시 ‘속세’의 것임을 알겠다. 다시 눈을 뜨니 지붕 사이 파란 하늘은 부처의 미소인 양하다. 여유가 생기거든 극락전을 좀더 눈여겨보자. 우리나라 유일의 하앙식(下昻式) 구조다. 공포와 서까래 사이 긴 목재를 추가해 처마를 길게 뺐다. 일조량과 강수량을 고려한 설계다. 그러고도 쉬이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찾아가는 길조차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시인의 마음에 가닿은 것이다.
완주를 탐스럽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인은 마을 여행이다. 삼례읍 삼례예술촌과 비비정마을, 상관면 공기마을, 구이면 안덕건강힐링체험마을, 고산면 고산시장과 고산자연휴양림, 소양면 대승한지마을 등 저마다 색깔이 다르다. 한두 마을을 코스 삼아 한가위 연휴 내내 조금 길게 여행해도 좋겠다. 이 경우 전주 여행이 덤이다.
맛집 고산 쪽에 매운탕 잘하는 청수원가든(063-263-0101, 추석 당일 쉼)이 있다. ‘특허 받은 시래기’로 끓인 시래기매운탕이 별미다.
고산미소한우(063-261-4088, 10월4~6일 쉼)도 맛깔스럽다. 고산에 들렀다면 고산미소시장 구경도 추천.
전북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063-290-2621(완주군 관광체육과)왕릉 옆 미술관 하루 나들이
한가위 수도권 하루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교통체증이 고민이라면? 그럼에도 여행의 다채로움을 맛보고 싶다면?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으로 떠나보자. 융건릉과 용주사, 소다미술관이 삼각형을 이루는 여행지다. 각각의 거리가 2km를 넘지 않는다. 대중교통도 편하다. 수원역이나 수원시외터미널에서 10~12km, 지하철 1호선 병점역에서 5km 거리다.
‘안녕동’이라는 지명부터 흥미롭다. 융건릉과 관련 있다. 융건릉은 융릉과 건릉을 합친 말이다. 융릉은 ‘사도세자’라 불리는 장조와 헌경왕후 능이다. 건릉은 융릉을 이장한 정조의 능이다. 아버지가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한 정조의 효성이 스며 인근 마을이 안녕촌(安寧村)이다.
안녕동 여행 역시 융건릉을 구심점 삼는다. 융건릉은 정문 오른쪽이 융릉, 왼쪽이 건릉 방향이다. 재실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개자비나무가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숲길이 아름다운 능으로 손꼽는다. 건릉 가는 길도 아름답지만 융릉 쪽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가는 길부터 높게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가 시선을 빼앗는다. 압권은 낮은 고갯길을 내려설 때 눈앞에 펼쳐진 너른 솔밭이다. 도심이 줄 수 없는 푸른 위안이다. 부러 융건릉을 찾는 이유를 알 법하다.
소다미술관은 특이한 재생 건물이다. 이전에 찜질방을 짓던 자리다. 1층 벽체와 천장까지 마무리한 상태에서 폐허로 방치됐다. 소다미술관은 그 뼈대를 되살려 새롭게 탄생했다. 야외와 옥상에는 컨테이너를 설치해 색깔을 입혔다.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목욕탕과 불가마 등 옛 자리를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작품의 상상력까지 더해지니 구석구석이 흥미롭다. 아이의 창의력을 키우기에도, 연인이나 친구끼리 인증사진을 남기기에도 제격이다. 햇살 잘 드는 마당에서 한갓진 커피 한잔, 2층 옥상에서 전망을 누리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소다미술관 북쪽은 용주사다. 신라시대 고찰이었으나 정조가 융릉 원찰로 삼아 지었다. 용주사는 궁궐 특징을 눈여겨봐야 한다. 천왕문 자리에 삼문각이 있다. 왕이 다니는 문 외 좌우로 두 개의 문을 더 둔 형식이다. 좌우가 행랑채를 연상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웅보전에는 정조의 명으로 김홍도가 그린 후불탱화가 특별한 볼거리다. 템플스테이도 소문났다.
맛집 융건릉에서 멀지 않은 화성별궁(031-221-6700, 추석 당일 쉼)은 생갈비와 불고기가 맛있다. 2층 한옥 구조도 흥미롭다.
한가네손두부(031-225-5125, 추석 연휴 쉬는 날 없음)는 두부생태찌개가 유명하다. 얼큰한 국물을 원할 때 찾으면 좋다. 냉면이나 칼국수를 내는 융건릉 인근 분점 식당들도 무난하다.
융건릉: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031-222-0142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031-234-0040, www.yongjoosa.or.kr소다미술관: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 138-110, 070-8915-9127, museumsoda.org/ 10월 2~6일 휴관, 10월7~8일 일일 선착순 50명 2017 전시 초대권 증정슬로! 알차게 머무는 여행
한가위에 시골에서 며칠 살기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도심의 번잡함을 잊고 자연 가까이에서 ‘머무는 여행’ 말이다. 자연스레 ‘슬로시티’가 떠오른다. 허울 좋은 영예나 관광지의 다른 이름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그 취지를 고집스레 지켜가는 마을이 있다.
충남 예산 대흥슬로시티가 대표적이다. 대흥마을은 우리나라의 여섯 번째 슬로시티다. 입소문은 덜 탔지만 알짜배기다. 슬로시티 지정 뒤 겉모습에 큰 변화가 없다. 새로 지은 건물은 단층의 슬로시티방문자센터가 고작이다. 대신 오순도순한 마을 삶이 지속된다. 지레 무료한 머무름을 걱정할 까닭은 없다. 마을 등 뒤는 봉수산과 임존성이 있고 앞은 예당저수지가 있다. 임존성은 복신, 흑치상지 등이 백제 부흥군의 거점으로 삼은 성이다. 봉수산수목원 쪽으로 가벼운 산행이 가능하다. 숲길보다 물길이 좋을 때는 예당호중앙생태공원을 돌아보자. 물속에 잠긴 버드나무와 데크 산책로가 조화롭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밤새 서로의 곳간으로 볏단을 나르던 형제의 우애는 대흥마을 실화다. 대흥동헌 앞 이성만형제효제비와 의좋은형제동상이 증명한다. 대흥동헌은 예산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관아 건물이다. 대흥마을의 영화를 짐작하게 한다. 동헌마루는 망중한을 누리기에 으뜸이다.
대흥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시골 마을 산책이다. 방문자센터에서 느린꼬부랑길이나 손바닥정원길 지도를 얻어 돌아보면 편리하다. 느린꼬부랑길은 세 가지 주제가 있다. 특히 사랑길 600년 은행나무는 그 몸 안에 느티나무가 뿌리내려 150년을 함께 지내고 있다. 그래서 ‘사랑나무’라 불린다. 손바닥정원길은 정원이 예쁜 집들을 산책 코스로 이었다. 달팽이 인형이 있는 집은 개방하니 구경해도 좋다.
대흥마을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은데 그 사실을 지우면 다시 보통 시골이다. 실은 지도나 목적 없이 발길 따라 걷기를 ‘간절히’ 권한다. 구간구간 전망 좋은 지점이 들고난다. 예당저수지에 낚시를 드리우는 것도 재미다. 대흥마을 민박이나 펜션에만 머물기 아쉬울 때는 덕산온천을 코스 삼는다. 물론 수덕사도 같이 들러볼 일이다.
맛집 대흥마을은 예당저수지가 있어 민물고기 요리가 일품이다. 서하가든(041-332-0102, 추석 연휴 쉬는 날 없음)은 민물새우매운탕이 맛있다.
대흥식당(041-335-6034, 미정)에서 어죽 한 그릇 먹는 것도 좋다. 대흥마을과 이웃한 광시면은 광시한우타운이 있다.
매일한우타운식당(041-333-2604, 추석 당일 쉼) 등 한우 맛집이 즐비하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중리길 49, 041-331-3727, www.slowcitydh.com/ 책과 함께 즐기는 제주 여행
굳이 ‘효리네 민박’을 찾아갈 일은 없다. 제주는 보고 즐길 것이 넘친다. 최근에는 책방이 주인공이다. 독립책방이나 책방카페 등이 부쩍 늘었다. 남서쪽에는 ‘이듬해봄’과 ‘인공위성 제주’가 서로 다른 색깔로 매혹한다.
바다마을 대정읍 모슬포에는 이듬해봄이 있다. 찾아가는 길부터 남다르다. 우선 차는 큰길에 세워두고 걸어가야 한다. 하모리 골목을 돌고 돌아 막다른 길의 끝이다. 설마 이 길에 책방이 있겠어 하며 걷다보면 ‘설마’ 하는 그 자리에 ‘이듬해봄’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보인다.
이듬해봄은 파란 지붕의 농가주택을 개조해 꾸몄다. 책장의 구성과 공간에 주인장의 개성이 짙게 배어난다. 책은 해외아트북과 독립출판물 위주로 개성 있는 기성 출판사의 책도 다룬다. 어른과 아이를 위한 동화책도 있다. 외관은 부러 멋을 내거나 책방을 뽐내지 않는다. 바깥에서는 또 한 번 이곳이 책방이겠어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안으로 한 걸음 디디면 반전이다. 삐걱거리는 마루, 나이 먹은 나무기둥, 낮은 천장의 낡은 서까래까지 그 자체로 먼저 산 집의 시간이 느껴진다. 주인장의 손끝에서 이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옛집의 흔적을 간직한 채 다시 태어났다. 책장과 이웃한 오른쪽 끝방도 흥미롭다. 마치 다락방인 양 호젓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책 속에 들어온 듯하다. 홀로 책장을 넘겨도 좋겠다.
인공위성 제주는 단층 ‘양옥’과 창고를 개조해 꾸몄다. 위치 또한 바다를 벗어난 중산간 쪽이다. 이듬해봄의 공간이 클래식한 반면 인공위성 제주는 세련미가 넘친다. 책장보다 책을 읽거나 쉴 수 있는 카페가 중심이다. 그럼에도 ‘질문하는 책’이라는 콘셉트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인공위성 제주의 책들은 표지가 흰색 종이로 싸여 있어 제목을 알 수 없다. 대신 각각의 질문이 새겨 있다. 책을 기부한 사람이 던진 질문이다. 제주에서 받아든 하나의 질문은 ‘여행’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비교적 너른 공간이라 시간에 구애 없이 머문다.
이듬해봄에서 인공위성 제주로 가는 길 중간에 추사 김정희의 자취가 있다. 그가 유배 와 머물던 적거지와 건축가 승효상이 지은 제주추사관이다. 추사의 글씨가 남은 대정향교도 멀지 않은데 한 폭의 수묵 같은 장소다. 책 한 권 읽으며 머물기에 좋다.
맛집 이듬해봄이 있는 모슬포는 제주에서 맛집 많기로 소문난 포구다. 이맘때는 만선식당(064-794-6300, 10월3~4일 쉼)의 고등어회를 꼭 맛봐야 한다. 맛도 영양도 절정이다.
산방식당(064-794-2165, 10월4~6일 쉼)은 밀면을 잘하는데 부산 못지않다. 덕승식당(064-792-2521, 10월3~4일 쉼)은 여행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동네 밥집이다.
이듬해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백사로29번길 6-6, 010-6388-8037, 12:00~18:00, 일요일 쉼, 10월3~4일 쉼.인공위성 제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남로 123, 070-4147-0255, 11:00~19:00, 월요일 쉼, 10월2·9일 쉼.완주·화성·예산·제주=글·사진 박상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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