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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첫 키스, 이거 실화냐?

웹소설의 매력에 빠진 팔선녀 기자 직접 웹소설 쓰기에 도전하다…

사고처럼 시작된 30대 후반의 사랑과 한국형 장르소설 열어가는 웹소설들
등록 2017-08-09 15:50 수정 2020-05-03 04:28
*소설은 그저 소설로 읽히길 바란다.

“기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써야 하는데~.”

마감날 오후,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옆자리 K기자가 “뭔데?”라며 호기심을 보였다.

“이번주 레드기획에 웹소설 쓰기로 했잖아. 며칠째 보고 있는데 진짜 야무지네. 한번 읽으면 나도 모르게 계속 읽게 돼. 약 빨고 썼나봐~. 기사를 이렇게 쓸 순 없을까?”

“재미 타령 그만하고 어서 마감이나 하셔~.”

K기자는 돌아앉았다. ‘마감은 본인도 해야 할 텐데~.’

난 자리를 고쳐앉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점멸하는 커서를 바라보는 눈은 어느덧 4년 전 이맘때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난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2013년 3월, 그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 졸업 뒤 곧바로 사내 자회사에 취업한 그는 새내기 직장인이었다. 180cm 넘는 키, 수려한 외모 때문에 여직원들의 눈길을 한 몸에 받았다. 그를 보고 반한 자칭 골드미스 A선배가 B선배를 통해 그를 소개해달라 졸랐다.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어렵게 마련된 자리. 와서 분위기 좀 띄워달라는 A의 부탁에 약속 장소인 홍대로 나갔다. 사실 그가 궁금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었다.

인도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 이자카야에 갔다. 우리의 짓궂은 장난에도 그는 손뼉을 치며 웃었다. 홀로 인도여행을 3개월 동안 다녀온 이야기, 거기서 장티푸스에 걸려 죽다 살아난 일, 갠지스강에서 발생했던 사이키델릭한 체험, 자신의 꿈과 희망 등을 그는 수줍지만 생기 있게 말했다. 그가 내뿜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술자리는 유쾌했다. 나와 B는 그날, 그의 팬이 되었다. 정작 그와의 자리를 원한 A만 시큰둥했다. 나이가 많다나~. 미친.

그 뒤로도 몇 차례 B와 함께 그를 만났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그와의 대화는 영화와 음악에서 시작해 정치와 역사를 넘나들었다. ‘대화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구나.’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누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내 맘속 버튼을 눌렀음을 직감했다. 미쳤어. 10살 차이가 얼마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그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지금 퇴근하세요?”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 지금 퇴근하세요?” 그가 웃으며 되물었다.

“네. 어느 쪽으로 가세요?”

“서울역 쪽으로요.”

“저도 그쪽으로 가는데 같이 가요.” 얄팍한 개수작만은 아니었다. 그와 난 서울역까지 운동 삼아 걷기로 했다. 막바지 장마로 서울의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전 지금도 처음 홍대 모임이 참 신기해요.” 그가 말했다.

“그렇죠. 모르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는데…. 다 A 덕분이죠. 그 인간에게 유일하게 감사한 대목이죠. 호호.”

그도 따라 웃었다.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 얘기가 끝나갈 무렵, 서울역 앞 버스정류장에 당도했다. 그의 집은 부천이었다. “저기 버스가 오네요. 그럼 먼저 가볼게요.” 그가 웃으며 돌아서고 있었다. 이렇게 헤어지긴 싫다는 마음과 이대로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저기… 우리 딱 한잔만 해요.” 무의식적으로 내 입이 말하고 있었다.

“… 좋아요.” 내 쪽을 돌아보며 그가 웃었다. 가슴이 마구 쿵쾅거렸다.

우리는 예전 YTN 사옥 부근 허름한 술집에 들어갔다. 가게에는 중년 남자 둘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가 고른 낙지볶음에 소맥을 추가했다. 홍상수 영화와 노무현, 콜드플레이에서 비틀스, 김연수 등을 안주로 그날 우리는 꽤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 내가 이 인간 저 인간 뒷담화를 깔 때마다 그는 크게 공감하며 박수를 쳤다. 계속 그의 호응을 받고 싶어서 평소보다 과하게 주책을 떨었다. 완전한 시간이었다. 웃고 떠들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갔다. 그의 막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일어날까요?”

“네.”

버스정류장은 길 건너편에 있었다. 큰길로 나가려 주유소 앞 골목을 걸을 때였다.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두 손으로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살포시 입을 맞췄다. 나 자신도 놀란 돌발 행동이었다. 내 맘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있었다. 그는 흠칫하더니 이내 거부하지 않았다. 심장이 요동쳤다. 멘솔담배 때문인지 그의 입술에선 민트맛이 났고 거뭇한 턱선에선 애프터셰이브 냄새가 끼쳐왔다. 꿈속을 거니는 느낌이 이런 걸까. 키스 뒤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저도요.” 그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어 보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막차는 가버리고 없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갑자기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했다. 부천 가는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섰다. 그가 백팩을 멘 날 뒤에서 가만히 안았다.

“앞으로도 안아줘.” 내가 말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의 답변에 난 몸을 돌려 그를 정면에서 껴앉았다. 그가 나를 힘껏 안았다. 다부진 그의 가슴이 느껴졌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에라 모르겠다. 난 그의 손을 끌고 근처 호텔로 향했다. 그는 말없이 따라왔다. 카운터에서 적립해둔 숙박업소 앱을 구동하는데 그가 말했다. “이건 제가 할게요.” 역시 여자를 아는 기특한 녀석. 너도 적립 좀 했구나. 호텔방은 쾌적했다.

“내가 먼저 씻을게.” 난 수줍게 말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가 침대 가운데에 대형 타월을 깔고 있었다. 나를 위한 배려였다. 난 달려가서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가 내 타월을 천천히 벗겼다. 나신이 된 나는 그의 입술을 갈구했다.

내 생애 가장 큰 길일 가운데 하나

서울역 앞에서 날카로운 첫키스로 시작된 그와의 연애는 3년 동안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우린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다. 완전히 헤어지자니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잘 맞았고 줄곧 만나기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헤어질 수도 계속 만날 수도 없는 관계였다. 올봄,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날도 우리 대화는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같이 있으면 그 자체로 족한 사람. 누군가를 이렇게 전면적으로 사랑해본 적은 처음이었다.

물론 사랑의 대가는 가혹했다. 문득문득 닥쳐오는 그리움에 밤새 뒤척이는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고, 멀리서라도 보고 싶어 복도를 자주 서성였다. 가장 무서운 것은 시간이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 내 마음은 다스릴 만한 것이 되었고 조금씩 그에게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를 처음 만난 2013년 3월 어느 날을 여전히 내 생애의 가장 큰 길일(吉日)로 생각한다. 내게 그는…….

“마감 서둘러 주세요.” 목요일 저녁, 편집장의 채근이 조용한 뉴스룸의 정적을 깼다. ‘헐~ 시간이 벌써.’ 난 꾸역꾸역 기사를 써내려갔다. 편집장은 “원고를 전면 ‘몰고’ 하려다 노력이 가상해 그냥 넘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팔선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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