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기사 초고가…?” “내일 아침까지는….” “원고 잘 받았어요.” “읽어보시고 꼭 의견 주세요.” 2주마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과 나눈 말이다. 그는 글을 보내고 나서도 두세 차례 더 고치곤 했다. 세세한 사실을 바로잡기도 했지만, 글을 아우르는 주제의식을 늘 고민했다. 현직 기자를 충분히 부끄럽게 할 만한 태도였다. ‘정성’이다. 지난겨울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노숙택’으로 지낸 사진작가 노순택의 사진은 늘 눈동자를 붙들고 무언가를 호소하듯 절규하듯 속삭이듯 울어버리는 듯했다. ‘사랑’이다.
‘박점규가 쓰고 노순택이 찍은 우리 시대의 풍경’ (한겨레출판 펴냄). 노동자의 연장 24가지를 다룬 이 책이 가장 강렬히 전하는 것은 현실 직시다. “돈 많은 부모 만나 평생 건물 월세 받으며 골프나 치러 다니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개인을 넘어 국가 체제로 인식을 확장하면 현실 직시의 또 다른 측면이 드러난다. “조립공 출신 대한민국 민주노총위원장 한상균과 용접공 출신 스웨덴 금속노조위원장 스테판 뢰벤. 한 사람은 감옥에 갇혔고, 한 사람은 총리가 됐다.”
책은 2015년 8월부터 1년간 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최고급 요리를 만드는 칼’(요리사 고진수)부터 ‘끊어진 꿈을 땜질하는 용접기’(용접사 차홍조·양병효씨)까지. 연재 마감 뒤 두 사람을 인터뷰한 기사 첫머리를 기자는 이렇게 적었다. “노동은 예술이다. 예술이어야 한다. 예술이 아니라면, 기술에 머문다면, 한 삶은 얼마나 억울한가.”( 제1138호 ‘노동의 굴뚝에 긍지의 온기를’)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대던 대통령은 감옥에 갇혔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부르짖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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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그 자신 노동자이기도 한 두 사람의 정성과 사랑의 기록이다. 정성은 곧 묘사다. “오른발이 페달을 살짝 밟았다 뗀다. 실타래가 스르르 풀린다. 윗실은 흰색, 밑실은 옅은 회색이다. 바늘이 옷감 원단에 ‘자바라’를 박는다. 드륵드륵 드르륵. 손가락으로 원단을 밀어 올린다. 페달 윗부분을 지그시 밟는다. 드르르르르르르르르륵. 고급스런 무늬가 새겨진다.”(‘재봉틀은 40년째 잘도 돈다’) 사랑은 곧 공감이다. “노동을 귀하게 여기는 세상,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세상이 올 때까지 원길씨의 망치질은 계속될 것이다.”(‘그의 망치는 공간과 시간을 이어 세상을 짓는다’)
눈길 하나 더. 책의 사진 도판이 모두 흑백. 거기에 빛깔을 입히는 것은 결국 이 책을 읽는 노동자들의 몫이리라. 노순택의 말이다. “권력의 풍경은 달라졌지만, 노동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벼랑으로 내몰린 노동자의 죽음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유산이기도 하다는 뼈아픈 사실은, 지금 이 시대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연장전’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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